자유 본능 꿈틀대는 댄스 마스터 돈 조반니가 던진 질문은?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1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내린 국립오페라단(단장 김의준)의 2014 첫 작품 <돈 조반니>는 현대인의 잃어버린 자유 감성을 되찾고 내적 치유를 일깨워주는 오페라였다.

정선영 연출의 <돈 조반니>는 조반니가 있어 위선과 사회적인 관습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으며, 조반니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가 관념의 틀을 깨고 자유로운 혁명을 이룰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첫 인상은 ‘주인공 돈 조반니란 캐릭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구나’란 느낌이었다. 그 외 인물 중에는 떠나버린 사랑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인물인 ‘엘비라’에게 또 다른 시선을 안배했다. 여타의 연출이 가장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인 ‘레포렐로’에 연민을 내보이는 것과는 다른 참신한 시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하얀 색 의상을 입은 <돈 조반니>는 더 이상 방탕함을 즐기는 호색한이 아니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숭고하게 자유의지를 실천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오히려 이리저리 눈치 보며 사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레포렐로가 어둡고 더러운 흙색에 가까운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마치 세상의 온갖 규범과 구속의 때가 묻은 이는 레포렐로였던 것. 이렇듯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의상과 새로운 캐릭터 해석은 관객을 흥미진진한 오페라의 세계로 안내했다.

김희재 무대디자이너는 커다란 기중기와 탐스러운 사과, 가스 배관 파이브를 오브제로 사용해 조반니의 자유의지와 창조성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돈 조반니의 분신인 기중기가 강력한 힘으로 물건을 들어 올리듯, 집단규범 안에 갇힌 채 꽁꽁 숨겨둔 많은 이들의 자유 의지를 끌어올렸다. 작품의 후반으로 가면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사과를 건져 올리고 그 위에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 조반니를 만날 수 있게 된다.



1막 후반 파티 장면은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연출가의 시선이 가장 많이 읽혀진 지점이었다. 조반니는 수경 및 오리발, 잠수복을 입고 그 누구도 상상 못한 열대어가 돌아다니는 해저에 자리한 파티장에 나타나 자유 분방한 춤을 춘다. 마치 놀이공원 기계에서 반짝이는 듯한 불빛이 기중기 몸체에 들어오기도 했다. 파티에 초대 된 돈나안나, 엘비라, 오타비오에겐 불편한 신발을 벗는 성스러운 의식까지 치르게 한다. 그렇게 코믹하면서도 자유로운 손동작이 가미된 자유 댄스의 마스터가 된 조반니는 온 몸으로 ‘자유를 즐길 것’을 권했다.

대중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간 뮤지컬스러운 연출, 위트 있는 번역 등도 돋보였다. 우선, ‘디지털 오페라’의 새로운 장을 펼쳤다. 시대를 현대로 설정한 탓에, 지금까지 돈 조반니가 만난 여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병풍처럼 펼쳐 보이는 유명한 레포렐로 아리아인 ‘카달로그의 노래’는 ‘휴대폰의 노래’로 불러야 할 듯 했다. 2천 명이 넘는 여인들의 이름이 아닌 사진이 휴대폰 속에 저장 돼 있었던 것. 석상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석상 대신 디지털 시계가 전면에 배치되기도 했다.

2막에서 객석까지 내려 간 돈 조반니가 세레나데를 부르자 객석은 술렁거렸다. 곧 아파트에 사는 어린 아이부터 아가씨는 물론 아줌마까지 모든 여성들이 자신에게 바치는 사랑 노래임을 알고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은 동감의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15명의 성악가는 오랜 시간 연습을 했음을 느낄 수 있게 치밀한 호흡을 선보였다. 바리톤 공병우ㆍ차정철 ‘돈조반니’는 여타의 오페라보다 액팅이 상당히 많은 이번 작품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한 모금 맛보면 피로감이 날아가는 카페모카처럼 달콤한 미소와 목소리를 선보인 공병우, 진한 커피를 우유로 감싼 카페라떼처럼 부드러운 매력을 뿜어 낸 차정철 모두 좋은 평을 받았다.

현재 독일 바이마르국립극장 전속 가수로 활동 중인 레포렐로 역 베이스 김대영은 국내 오페라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가창 면에서 바소 칸타빌레 그 자체로 명징한 보이스와 유연한 프레이징을 자랑했다. ‘돈 오타비오’ 역 테너 김세일의 첫 오페라 데뷔로 기대를 모았던 이번 무대는 주요 아리아가 나오는 장면만 놓고 봤을 땐 ‘감동적이다’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전체 그림을 놓고 봤을 땐 다소 미흡함이 보였다.

‘돈나엘비라’ 역 소프라노 이윤아ㆍ김라희(김상희), ‘돈나 안나’ 역 소프라노 노정애 ㆍ 홍주영은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해 열연을 펼쳤다. 가수들 모두 안정적인 가창을 선 보였으나, 보이스 컬러와 창법 면에선 모차르트 작품과 완벽히 어울리진 못했다. 레포렐로 역 베이스 장성일, ‘돈 오타비오’ 역 테너 김유중, ‘체를리나’ 역 소프라노 양지영ㆍ정혜욱, ‘마제토 ’역 베이스 바리톤 김종표ㆍ 박경태, ‘코멘다토레’ 역 베이스 전준한 모두 적절하게 배역을 소화하며 밀도 있는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지휘자 마르코 잠벨리와 호흡을 맞춘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활력 넘치는 연주를 들려줬다.



참신한 시각은 단연 돋보였지만, 국립오페라단의 <돈 조반니>가 온전히 장점만 갖췄다고 보기는 힘들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무대의 운용이었다. 실제 크기의 기중기가 무대 안으로 들어와 대부분 자리를 차지 한 것은 물론 파란색의 공사장 갑바천으로 만들어진 막을 내린 채 진행되는 장면이 많아, 답답한 인상을 갖게 했다. 지난 13일 공연에서는 무대전환 장치에 문제가 생겨 30분간 공연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조반니를 원작의 귀족인 아닌 현대의 사장님으로 설정한 것은 좋았으나 그 과정에서 인물들간의 신분 관계가 납득할만하게 설정되지 않은 점 역시 작품 이해에 혼돈을 일으켰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떠오르게 하는 오페라의 마지막 가스 파이프 장면은 생각 이상으로 강렬했다. 다만 이 장면의 해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는 불명확했다. 익히 알고 있던 무시무시한 석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먼 곳에서 지옥의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개인의 내적 자유와 사회 규범의 압박 사이에서 조반니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모든 무대 장치가 사라진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은 가스 파이프이다. 이 곳을 배경으로 조반니를 뺀 나머지 인물들은 노래를 부른다. 여전히 치열한 현재진행형의 혁명인가. 조반니가 사라진 것 빼고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우리시대의 모습인가.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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