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노블아트오페라단(단장 신선섭)이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사흘 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 <라보엠>은 로맨스 보다는 ‘시대극’에 방점이 찍혔다. 1830년대 프랑스 시민혁명과 7월 혁명 이후 펼쳐지는 혼란의 시기를 살아 낸 젊은 예술가들의 고뇌 그리고 우정과 사랑이 마임이스트(현대철)의 막간 설명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오페라였다. 오페라 공연에서 막을 내리고 진행되는 무대 전환 시간은 객석의 집중을 깨뜨리기 쉬운 데 반해, 이번 <라보엠>은 무대 전환 시간에 마임이스트를 등장시켜 짧고 굵게 오페라를 예습하는 시간을 선사했다. 2014년 한국 무대에 올려 진 푸치니의 혁명적 오페라로 부를 만 했다.

김숙영 연출은 격동의 시대, 사실적이고 치열했던 삶을 살았던 젊은이들의 사랑과 희망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항상 미미와 로돌포의 가슴 시린 사랑에 무게 추가 놓였던 여타의 <라보엠>과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로돌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게 중심이 실리지 않았던 음악가 쇼나르, 철학자 콜리네의 내면 및 의식 세계에 대해서도 관객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쇼나르는 반동적인 7월 왕정에 항거하는 청년이었으며, 콜리네는 ‘외투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만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시대에 맞선 연설가의 기질 역시 지녔음을 알 수 있게 했다.

무대 장치(무대디자인 손지희)에서 눈길을 끄는 장면은 전방에 배치된 로돌포의 2층 다락방이었다. 항상 무대 뒷 편에 있었던 로돌포 다락방 계단이 앞으로 나와 ‘우당탕’거리는 로돌포 친구들의 모습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또한 미미가 어떻게 계단을 올라가는지, 어떤 마음으로 로돌포의 방문을 두드리게 되는지 알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미미 역시 집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을 피해 도망을 갔으며, 로돌포의 친구들이 사라지자 바로 로돌포의 방문을 두드렸다는 점이다. 그 결과 미미와 로돌포가 첫 눈에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닌, 이미 미미가 마음 속에 점 찍어 둔 남자 로돌포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했음을 알게 했다.



‘그대의 찬손’ 아리아가 흘러나오는 로돌프와 미미가 어두운 다락방에서 만나는 유명 장면에도 연출가의 시각이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깜깜한 밤, 촛불도 꺼지고 두 남녀만 남게 된 상황에서 어스름한 달빛이 비치고 길거리 가로등이 하나 둘 점등 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불빛이 로돌포의 창가를 비추면 달빛과 함께 두 남녀의 사랑과 희망이 따뜻한 기운으로 퍼져나간다. 김 연출이 시인 로돌포로 빙의 돼 무대에 서 있다는 인상 역시 받았다.

입체적 회전 무대는 다락방과 까페 모뮈스로 자유자재로 변신했다. 특히 로돌포와 미미가 화려한 까페 모뮈스로 가기 전 사랑의 밀어를 주고받는 장면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했다.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 두 남녀의 희망에 찬 표정은 여운이 강했다. 다만 회전 무대 위에 다락방을 놓기 위해 무대가 너무 후방으로 밀려 가 성악가들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몇 번 발생했다. 또한 3일간의 공연 중 성악가들의 볼륨이 제 각각으로 들려 장치적인 부분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3쌍의 로돌포와 미미 커플은 각자의 색을 달리하며 매력을 발산했다. 오은경 김동원 커플은 사랑이 충만했고, 강훈 박명숙 커플은 희망이 가득했다. 이승묵 김인혜 커플은 미미스럽고 로돌포스런 진한 음색이 잘 어울렸다. 미미와 로돌포의 마지막 감정선을 집중력 있게 끌고 간 팀은 오은경 김동원 커플이었다. 1막의 계단 장면에서의 밀도감 있는 호흡과 동선이 가장 설득력 있었으며, 로돌포와 미미가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는 애절한 이중창, 마지막 ‘미미’를 품에 안으며 울부짖는 로돌포의 감정선 까지 관객을 함께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이는 첫날 무대를 책임 진 소프라노 오은경과 테너 김동원이었다.



무대 첫 장면을 장식하는 마르첼로 역 바리톤 정승기·박태환은 시원한 성량과 액팅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정승기는 모뷔스 까페 씬에서 무제타와 벌이는 신경전을 보다 디테일하게 보여줬다면, 극적인 재미가 더했을 것 같다. 바리톤 임희성과 소프라노 강민성은 자잘한 액팅 실수가 보이긴 했지만, 볼륨 있는 힘찬 가창이 좋은 인상을 갖게 했다. 소프라노 김순영 무젯타는 화려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자신감 넘치는 포즈와 소리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소프라노 김은경(무젯타), 바리톤 성승민(쇼나르), 베이스 박준혁∙ 임철민(콜리네), 베이스바리톤 장철유 ∙ 주영규(알친도르/베누아) 테너 심요셉(파르피놀) 모두 제 몫을 해 냈다. 메트오페라 합창단, 한양초등학교 어린이 합창단의 존재감도 빛났다.

오페라 <라보엠>에서 중요한 건, 음악·연출·밀도감·호흡이다. 구태의연한 연출이 아닌 장면 장면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치밀한 연출, 가수들의 다양한 템포를 신의 경지라 부를 정도로 유연하게 맞추는 장윤성 지휘자의 내공이 가미된 서울 필하모닉의 음악적 완성도, 가수들의 밀도감 있는 호흡은 현실은 힘들지만 꿈을 잃지 않는 젊은이들의 희망 노래인 <라보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들었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 노블아트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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