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복수가 아닌 반성을 통한 용서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우아한 거짓말>은 <완득이>와 원작소설가와 감독이 같은 사람이다. 두 작품 모두 김려령 작가의 소설을 이한 감독이 스크린에 옮겼는데, 분위기나 메시지에 있어서도 공통점이 많다. 첫째, 요즘 청소년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느끼는 차별이나 소외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펴고 있으며, 둘째, 상당히 심각한 갈등을 다루면서도 따뜻한 시선과 희망적인 봉합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중견 연기자 김희애가 2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작품이자, 아역으로 호평을 받았던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 등의 출연작으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과연 김희애를 비롯하여, 고아성, 김향기, 김유정 등의 연기 호흡이 매우 좋다. 또한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란 역할을 한 천우희의 연기도 발군이다. 한편 <완득이>에서 주연을 맡았던 유아인이 조연으로 출연하여, 자칫 영화의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모습이 최근의 TV드라마 <밀회>와 겹치면서, 기묘한 정겨움을 자아낸다.

◆ 평온한 일상에 갑자기 닥친 중학생의 자살

영화는 마트에서 일하며 중학생인 두 딸을 키우는 싱글 맘(김희애)의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장면으로 시작된다. 작은 딸 천지(김향기)는 교복을 다리고, 엄마에게 계란 프라이가 예쁘게 부쳐졌다는 칭찬을 한다. 그리곤 MP3를 사달라는 말을 꺼냈다가, 엄마의 전세금 타령을 듣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 일과를 보낸 엄마와 언니 만지(고아성)는 MP3까지 사가지고 돌아오지만, 천지는 집에서 목을 맨 이후이다. 유서도 없이 떠난 천지로 인해, 엄마와 만지는 천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엄마와 만지는 천지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를 보듬으며, 씩씩하게 새 삶을 꾸리려 노력하지만, 꾸역꾸역 밀려드는 슬픔을 견딜 수 없다.

만지는 천지의 죽음을 탐문하기 위해 천지의 친구들을 만나본다. 천지는 학교에서 소위 ‘은따’(은근한 왕따)였다. 중학교 1학년인 천지에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처럼 붙어 다니면서 뒤에서 몰래 험담을 하고 따돌림을 가하는 화연(김유정)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이들은 화연의 행동을 알면서도 동조하거나 방관하였다. 미라만이 유일하게 천지를 돕고 싶어 했지만, 부모들끼리 얽히는 문제로 인해 천지를 멀리하였다. 천지가 죽고 난 후, 아이들은 천지를 죽게 했다는 이유로 화연을 따돌린다. 화연은 따돌림과 죄책감으로 위기를 맞는데...



◆ 복수가 아닌 반성과 용서, 그리고 화해

그동안 학교폭력으로 인한 청소년의 자살을 다룬 영화들은 꽤 많았다. <여고괴담-두번째 이야기><6월의 일기><돼지의 왕><명왕성> 등은 모두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을 그리면서, 그로 인한 처절한 응징과 인물들 간의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다루었다. <우아한 거짓말>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을 모티브로 삼지만, 그와 같은 전개를 따르지 않는다. 우선 <우아한 거짓말>이 다루는 폭력은 흔히 뉴스에 등장하는 집단폭행과는 결이 다르다. 육체적인 폭력보다 훨씬 섬세하고 정서적인 폭력인데, 영화는 무자비한 육체적 폭력만 아니면 심각한 폭력으로 느끼지 않는 안이한 문제의식에 경종을 울린다.

즉 학교폭력의 논의에서 자칫 간과되기 쉬운 일상적이고 정서적인 괴롭힘의 심각성을 보여주면서, 학교폭력의 문제를 훨씬 폭넓게 이해하려는 입장을 보여준다. 또한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이분하여, 선악으로 나누어 보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무관심과 방관의 영역을 폭넓게 사고한다.

영화는 천지의 죽음이후, 천지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들이 원망과 증오의 칼날을 서로에게 겨누기보다, 자신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다른 이에 대한 보살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해자인 화연에게 따지던 미라는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방관해 왔음을 만지에게 털어놓는다. 미라를 추궁하던 만지는 미라를 챙기는 언니 미란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미란처럼 좋은 언니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가슴 아파한다. 그는 자신이 미처 돌보지 못해 허망하게 보낸 천지 대신 가해자인 화연을 돌보겠다고 결심한다.

즉 피해자의 유족인 만지가 가해자인 화연이나 방관자인 미라에게 복수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먼저 깨닫고 그들을 용서하며 심지어 가해자를 돌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굉장한 사고의 역전이다. 천지의 엄마 역시 사과하려는 화연의 엄마에게 사과나 용서가 불가능함을 말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은 동료의 조카에게 먼저 말을 걸고, 미라 자매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 먹인다. 원한으로 인해 자아가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 열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청소년 왕따와 자살을 다룬 여느 텍스트들과 차별되는 <우아한 거짓말>만의 특별한 가치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오히려 사과의 불가능성을 말하고, 용서를 당위인양 설파하지 않으면서도, 통렬한 자기반성과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굳건한 의지, 그리고 이웃에 대한 올바른 관심과 연민을 통하여 어느새 용서와 화해의 한 지점에 도달해 있는 가족의 모습을 기적처럼 보여준다.



◆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천지가 무심히 뱉던 암시의 말들을 알아채지 못했던 만지가 꿈속에서 천지의 환영을 보는 장면이다. 천지가 자살하기 직전 그것을 눈치 챈 만지와 엄마와 달려가 자살하려던 천지를 껴안는 장면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못한 장면이기에 뼈아픈 통한을 안긴다.

천지가 겪었던 따돌림이 과연 자살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는지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폭력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천지는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이고, 따돌림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영화에도 등장하듯이, 그맘때 친구는 그것 자체가 세상으로 느껴질 만큼 큰 문제이다. 물론 천지도 그 시기를 잘 넘겼다면 아무 문제없이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천지가 마지막에 남긴 털실의 메시지 “지나고 나니, 별것 아니지?”라는 말은 훗날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신에게 남긴 말이다. 천지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자살이 해프닝으로 끝나고 그 털실을 풀어보는 순간이 오기를 염원했을 것이다.

천지는 죽기 전 여러 가지 암시의 말을 남겼지만, 엄마와 언니는 그것을 의미 있게 듣지 못했다. 천지가 죽은 후에야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돌이킬 수 없음에 슬퍼한다. 천지가 자살을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누군가 그의 심정을 눈치 채고 그의 말을 들어주고 도와 줄 수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 천지처럼 마지막 구조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우아한 거짓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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