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절’ LTE시대에 호출기 드라마의 매력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절>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속도감을 지녔다. 이 드라마는 최근 몇 년 동안의 KBS 주말연속극들에 비해 흐름이 느리다. 몇 분 간격으로 누군가 고함을 지르거나 몇 분 간격으로 시청자들의 화를 돋우지도 않는다. 혹은 ‘시월드’ 같은 톡톡 튀는 대사로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끄는 것도 아니다.

그렇더라도 <참 좋은 시절>은 요즘 드라마답지 않게 참 심심하다. 드라마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사투리를 쓰며 시끌벅적 떠들어도 그다지 소란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야기 자체가 상당히 소소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폭탄이 숨겨진 것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스토리가 아니라 어딘가에 보물이 있으니 그걸 천천히 찾아가겠다는 흐름이랄까?

물론 <참 좋은 시절>이 <내 딸 서영이>와 <왕가네 식구들> 사이에 끼어 시청률과 작품성 모두 이렇다 할 소득을 내놓지 못했던 아이유 조정석 주연의 <최고다, 이순신>처럼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분명 <참 좋은 시절> 안에는 <왕가네 식구들>에 질린 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장점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정적인 운치, 사람과 사람 간의 따스한 인간미, 잠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곱씹어보게 하는 어떤 교훈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드라마에 기대하는 착한 미덕을 지녔다는 뜻이다.

그런 미덕은 이 드라마의 주연급 인물인 강동석(이서진), 차해원(김희선), 강동희(택연)가 아니라 오히려 조연급 인물에게서 더 잘 드러난다. 특히 이제는 평범한 드라마에서 기껏해야 사고뭉치나 골칫거리로 묘사되는 ‘짠내’ 나는 사내들에 대한 시선이 바로 그러하다. <참 좋은 시절>은 그 사내들의 담배냄새 풀풀 풍기는 따스한 가슴팍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특히 동석의 맏형인 강동탁(류승수)은 이 드라마를 살리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듬직한 장남이 아니라 사고뭉치인 장남이지만 언제나 형제에 대한 사랑만은 넘치는 이 인물은 <참 좋은 시절>에 있을 법한 그리고 우리들의 유년시절 추억에 있을 법한 ‘우리 형’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편 대머리 쌍둥이삼촌으로 등장하는 강쌍호(김광규), 강쌍식(김광호)의 호흡 역시 어린 시절 우리 곁에 있던 친근한 삼촌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면서 잔재미를 준다.



그렇지만 <참 좋은 시절>을 상징하는 인물은 무엇보다 “나 똥 쌌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뒷방 늙은이,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동석 집안의 할아버지 강기수(오현경)다. <왕가네>에서 왕수박을 연기했던 미스코리아 출신 여배우 오현경이 아닌 80년대 KBS 드라마 'TV손자병법'에서 만년과장을 연기했던 노배우 오현경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사실 반갑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오현경이 연기하는 강기수는 단순한 양념급의 노역이 아니라 의외로 큰 존재감을 보여준다. 허리를 다쳐 십 년 째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인 강기수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동석의 대가족 모두에게 사랑 받는 인물로 그려진다. 심지어 가족들과 다시 함께 섞여 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동석마저 할아버지의 눈물과 심통, 단식투쟁 때문에 다시 대가족의 일원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어쩌면 이 드라마의 <참 좋은 시절>의 ‘참 좋다’가 상징하는 바는 옹고집에 가끔은 심술궂어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 노인 강기수가 모든 가족에게 사랑받던 그 시절을 의미하는 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참 좋은 시절>의 문제는 여전히 속도다. LTE 시대를 사는 대중들에게 사진하나 뜰 때까지 인내심이 필요했던 PC통신 속도의 느린 이야기 전개는 외면받기 십상이다. 더구나 <참 좋은 시절>의 이야기 구조는 곧바로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휴대폰의 방식이 아니라 호출기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수많은 이야기의 밑밥을 던지고, 시청자들에게 조금씩 맛보기로 그 밑밥의 진행사항을 알려준다.



과거 가난한 집안의 소년이었던 동석과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던 해원(김희선)의 어긋난 사랑 이야기가 회상으로 포개지고, 두 집안 사이에 얽힌 악감정이 들어가며, 대가족인 강동석 집안의 복잡다단한 가족사가 또 숨어 있다. 한편 예전에는 부유했으나 지금은 망해 버린 해원 집안의 뒷이야기가 커다란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커다란 규모의 이야기를 보따리처럼 머리에 얹고 드라마는 옛날 할머니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인내하며 따라가는 몫은 고스란히 시청자가 해야 할 일이다. 호출기와 공중전화와 기다림이 함께 있는 그 시절의 연애처럼 그렇게 드라마를 지켜보고 읽어내고 이해해야 한다. 다만 그만큼의 사랑을 받을 만큼 <참 좋은 시절>이 매력적인지는 아직까지 의문이다.

더구나 이 드라마의 배경 자체가 지금 이 순간 현재라는 걸 깨닫게 되면 종종 의아해지기도 한다. <참 좋은 시절>의 인물들 자체는 지금이 아니라 호출기가 있던 시절에 존재했을 법한 인물들의 감성과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참 좋은 시절>은 그 배경을 지금이 아닌 90년대 경주로 잡았다면 오히려 추억을 환기시키면서 더 생생한 활기가 감돌았을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90년대를 휘어잡았던 스타인 김희선과 김지호가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인물로 등장하는 90년대 배경 드라마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까닭은 사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현재여야만하는 강력한 이유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굳이 찾아보자면, 이 드라마 카페 장면이 등장할 때 마다 들리는 배경음악이 거의 대부분 동희로 나오는 옥택연의 소속사인 JYP 소속 아이돌들의 히트곡이라는 것 정도랄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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