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18일 충무아트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첫 인상은 신과 맞서 싸우는 영웅 헤라클래스와 인간이 되고자 했던 노예 검투사 영웅 스파르타쿠스의 흥미진진한 만남을 뮤지컬 무대로 불러온 듯 했다. 프랑켄슈타인 안엔 헤라클래스의 야망과 투지가 넘실거렸고, 반란의 괴물 속엔 스파르타쿠스의 인간에 대한 통찰과 외침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넘버 ‘남자의 세계’는 결국 물고 뜯는 ‘인간의 세계’와 창작자의 머릿속을 스펙타클하게 펼쳐 낸 장면으로 볼 수 있겠다.

제대로 허를 찔렀다. 영국의 천재 여성작가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동명 소설을 왕용범 작가 겸 연출이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지 궁금했던 관객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했을 터. 인간과 괴물의 대결, 생명 창조의 윤리에 초점이 맞춰질 거란 쉬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진 않았지만 마지막 결말을 이끌어내기까지 과정이 상당히 설득력 있었다. 무엇보다 캐릭터와 드라마에 숨결을 불어넣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 전개가 돋보였다.

이성준 음악감독이 직접 지휘하는 라이브 연주는 서곡부터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빅터의 내면을 제대로 드러낸 ‘나는 왜’, ‘위대한 생명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괴물의 핵심 넘버인 ‘너의 꿈속에서’ ‘나는 괴물’ 넘버 외에도 리 프라이즈 되는 ‘살인자’와 ‘행방불명’의 긴장감 넘치는 음악들이 3시간 내내 극 속에 함께 동참하게 만들었다. 창작자의 야망과 꿈이 제대로 담긴 창작 뮤지컬이 탄생한 것.

작품은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당시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전쟁터에서 ‘죽지 않는 군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신체 접합술의 귀재 앙리 뒤프레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생명을 진화의 연장이라고 보는 앙리와 우연의 소산물로 보는 빅터의 세계관은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곧 앙리는 빅터의 일생 일대의 과제인 생명창조의 실험에 동참하게 된다. 함께 꿈을 꾸는 동지가 되고자 한 것.

원작이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만들고 시작한다면 뮤지컬의 키포인트는 주인공 프랑켄 박사가 다시 살려낸 괴물은 그가 가장 믿고 사랑했던 친구 ‘앙리’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것. 실제 앙리의 몸으로 되살려 낸 괴물은 처음엔 울부짖는 짐승의 모습과 다를 바 없지만 곧 인간보다 더 완벽한 존재가 된다.



1막은 빅터의 야망과 신념을 그려낸다면, 2막은 빅터의 손에서 탄생한 괴물의 야망과 신념을 그리고 있다. 브릿지 장치를 도입해 1막에선 빅터를, 2막에선 괴물을 브릿지 위에 올려 놓고 상대를 내려 보게 만든다. 빅터가 바라본 인간 세상과 괴물이 바라본 인간 세상이 한 작품 안에 다 담긴 것. 굳이 구분하자면, 1막의 주인공은 빅터이고 2막의 주인공은 괴물인 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피 냄새부터 맡고, 저주를 목에 걸고 나온 괴물은 혼돈과 상처 속에 살아왔다. 그리고 3년 뒤, 짐승만도 못한 누군가의 괴물이, 살인자가 되어 인간 괴물 앞에 나타난다. 작품 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괴물이 사람(까뜨린느)을 살려 주자, 괴물이 더 이상 괴물이 아닌 ‘돈’이 된다는 점이다. 강력하게 주의를 환기시키더니 작품은 바로 과도한 욕망과 욕심으로 인해 유혈이 낭자한 격투장으로 전환된다.

내가 키운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힘 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오면 괴물(박은태 한지상)이 객석을 집어 삼킨다. 극 안에서 ’개‘의 존재는 다음 사건을 예견하는 복선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린 빅터가 되 살려낸 줄리아의 개가 어떤 짓을 하는지 눈여겨보면, 나중에 벌어질 빅터의 실험 결말을 예견할 수 있듯이 말이다. 앙리가 단두대에 끌려가기까지의 사건 전모를 그림자로 살려 낸 장면은 깔끔한 장면 전환으로 기억 될 듯하다.



1인 2역을 훌륭히 소화해낸 <프랑켄슈타인> 배우들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광기의 야망이 돋보인 유준상 빅터는 엄마 같은 누나 엘런과의 마지막 장면이 눈물 나도록 애절했다. 저주의 신보다 위대한 번개 같은 신념을 불태웠던 류정한 빅터는 희망과는 다른 굳건한 신념이 흔들리며 스스로 멸절하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살려냈다. 2막 자크로 변하는 격투장 장면은 빅터의 모성을 갈구하는 여성스런 모습 외에도 또 다른 내면의 연장선상에서 캐릭터를 해석한 점 역시 인상적이다. 지옥의 문턱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 특별한 길을 선택한 이건명은 세 명의 빅터 중 가장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앙리와 괴물 역을 온 몸을 내던져 소화한 배우 한지상 박은태는 이 작품으로 한 단계 성장했음을 알게 했다. 감정 소모가 많은 괴물 역을 두 배우는 방향은 같지만 미묘하게 다른 해석을 해 색다른 관극의 재미를 선사한다. 두 괴물의 창조주와 그들이 홀로 3년을 보낸 곳은 분명 달랐을 것 같다. 인간쓰레기 격투장에서 인간의 모든 것을 경험한 한지상 괴물은 창조주에 대한 더러운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인간 괴물 이었다. 반면 인간말종 격투장에서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에게 물어뜯긴 박은태 괴물은 인간에 대한 그 어떤 희망도 품지 않는 고귀한 괴물로 다가왔다.

‘인간 행세 하지마’란 인간의 말, ‘너도 크면 인간 행세 하면서 살아가겠지’란 괴물의 말이 강한 여운을 남기며 슬픔을 몰고 온다. 번개와 함께 저주를 몰고 오는 괴물은 불행하게도 악하다. 하니 불행하게도 ‘슬픔’이 뭔지를 아는 인간이었다. 북극에서의 마지막 해후가 괴물의 가장 처절한 복수였을까. 아니면 저주를 반쪽 씩 나눠 갖는 자, 그도 아니면 슬픔을 나눠 갖는 자인 친구의 마지막 도리였을까.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허영옥, 충무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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