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 나영석 PD 프로그램 개입 부쩍 잦아진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 “이게 오줌 누지 말라고 그러는 거래.” 나영석 PD가 골목 한 켠에 기묘한 각도로 타일을 붙여 놓은 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스페인 세비야에 도착한 tvN <꽃보다 할배> 이서진과 나영석 PD가 주차 때문에 함께 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나영석 PD의 이 한 마디는 난데 없는 ‘초딩 대화’를 이끌어낸다.

“여기다 오줌 못 눠?” 이서진이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며 묻자 나영석 PD는 이순재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이순재 선생님 말씀은 오줌을 누면 자기한테 다 튄다는 거지.” 심지어 입사각이 어떻고 반사각이 어떻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자 이서진은 대뜸 나영석 PD에게 해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황당해 하며 “형이 해봐”라고 맞받아치는 나영석 PD. 이서진이 투덜댄다. “난 좀 아까 눠서 없어 지금. 그럼 하루 종일 먹은 것도 없는 데 뭐가 나오겠냐 내가.” 그리고 붙는 자막. ‘이게 뭔 초딩들의 대화인가.’

이 짤막한 장면에는 나영석 PD가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만일 나영석 PD가 그 순간에 ‘오줌 논쟁’의 화두를 꺼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장면에서 이런 마치 만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뭔 초딩들의 대화인가’라는 자막은 이 짧은 순간에 촉발된 이야기를 한 마디로 정리해준다. 이처럼 현장에서 출연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때론 자극을 주는 방식은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이 왜 밋밋한 순간 없이 자잘함 속에서도 뾰족한 재미를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준다.

“여기 앞치마 형 이따 요리할 때 필요하지 않아?”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가게에서 앞치마를 보게 된 나영석 PD는 또 이렇게 이서진에게 툭 던진다. 요리하는 게 싫다고 그토록 얘기하던 이서진을 마치 골려주겠다는 식으로 약간은 깐족대는 것을 즐기는 듯한 목소리. 그러자 예상한대로의 반응이 이서진에게서 나온다. “이따 요리를 왜 해 내가.” “한 몇 번 더 할 거 같은데 이번에.” 나영석 PD의 이 말은 결코 그냥 지나치는 농담이 아니다. 의외로 이서진이 요리할 때 재밌는 장면들이 연출되는 걸 나영석 PD가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영석 PD는 ‘현장에서의 자극제’가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아무 연출이 안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되면 그게 그냥 여행이지 방송 프로그램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어쩌다 보니까 그게 제 스타일로 자리를 잡았는데 저희는 대본도 없고 미션도 없는 대신에 보이지 않는 그런 자극 같은 걸 하죠. 내버려두면 지나칠 것들을 일부러 이서진씨한테 찔러보고 꺼내놓는 거예요.” 나영석 PD가 굳이 방송 한 가운데 들어오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최근 더 프로그램 속으로 깊게 들어온 이유에 대해 나영석 PD는 이렇게 말했다. “1박에서는 강호동씨처럼 MC가 있었는데 지금은 특별히 MC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잖아요.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의 특징은 묻기 전에 대답을 안해요. 예능인들은 묻지 않아도 먼저 말을 하고 더 크게 부풀려 가고 이렇게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제가 옆에서 툭툭 건드리는 거죠. 대놓고 질문을 하면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어떤 말이 나오게끔 현재 상황을 자기들이 알아서 설명하게끔 물꼬를 터줄려고 옆에서 자꾸 이렇게도 찔러보고 저렇게도 찔러보고 하는 거죠.”



그렇다면 나영석 PD는 그 상황이 어떻게 재미있을지 없을 지를 알아차리는 걸까. 거기에 대해 나영석 PD는 자신도 100% 확신할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건 시청자도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 대신 자신만 믿지 않고 주변에 물음으로써 좀 더 객관적인 조언을 들으려 한다고 한다. 그 역할을 하는 인물이 이우정 작가라는 것. 늘 한 발 더 뒤에서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 못했던 부분까지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는 제가 나서서 말을 나누지만 그 중 50%는 뒤에서 오는 말이에요. 이우정 작가가 예를 들어서 아까 보니까 이런 상황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 한 번 물어봐 주거나 끄집어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미처 제가 생각 못했던 부분이라도 일단 하죠. 믿으니까.” 그냥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제로서 기능하는 나영석 PD. 그리고 그 과정까지 그대로 프로그램으로 보여주는 연출. 이것이 <꽃보다 할배> 같은 어찌 보면 소소한 여행의 일상을 마치 모험처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내는 힘일 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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