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상에게 연기감을, 박유천에게 기본기를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아이돌가수로 활동하던 스타들이 연기자 겸업을 선언하거나 연기자로 전향하는 일은 이제 흔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성공적인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구나 주조연급 연기자 군단으로 자리를 잡은 여자아이돌 출신 스타들에 비해 남자아이돌의 경우는 그 폭이 더 좁다. 그러다보니 남자아이돌들 자체가 드라마의 양념 역할로는 종종 쓰이지만 자신의 면면을 고스란히 드러낼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동방신의 박유천이나 지오디의 윤계상은 신화의 에릭 정도를 제외하면 성공적으로 주연배우에 안착한 거의 유이한 롤모델에 속하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윤계상과 박유천 모두 아직까지 배우로서의 폭이 넓은 편은 아니다. 여자 아이돌스타 출신의 배우들과 비교하자면 윤계상은 박정아 혹은 유진과 박유천은 윤은혜 혹은 황정음과 각각 비슷한 장점과 단점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두 사람이 각각 출연하는 KBS 월화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와 SBS 수목드라마 <쓰리데이즈>는 두 배우의 장점과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들이다.

윤계상은 사실 배우로서는 썩 괜찮은 하드웨어의 소유자다. 체격조건도 좋을뿐더러 여백이 있는 미남의 얼굴이라 어떤 유형의 인물에도 잘 어울린다. 지극히 평범한 이웃집 청년에서 어딘지 섬뜩한 인상의 범죄자, 남자답고 호탕한 인물까지 두루 커버할 수 있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다가 적진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 정세로(윤계상)는 윤계상의 마스크로 보여줄 수 있는 이 모든 장점을 고루 지닌 인물이다. 윤계상은 이 모든 인물들을 다 연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방점이 찍혀할 부분은 ‘노력한다’다. 아무리 봐도 윤계상은 배우로서 타고난 감이 좋다기보다 ‘노력하는’ 내신형 유형이 아닐까 싶다. 윤계상이 아이돌스타에서 배우가 되기 위해 다져놓은 기본기는 탄탄하다. 그가 대형 스크린의 영화 안에서도 껄끄럽지 않았던 건 그 덕분이다.

<태양은 가득히>에서도 윤계상의 지극히 일상적인 연기에서는 어색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사와 표정, 시선처리 모두 훈련된 배우의 그것처럼 자연스럽고 깔끔하다. 다만 윤계상이 유독 어색해지는 지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감정을 폭발시킬 때와 급작스레 달라지는 감정선들을 연결할 때다. 윤계상은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하는 듯 하지만 폭발의 지점은 때로 너무 과하고, 종종 달콤한 얼굴에서 분노의 얼굴로 변하는 순간은 너무 급작스러워서 당황스럽다. 모든 재료를 꽉꽉 담아 정성스럽게 만 김밥이 마지막에 옆구리가 터지는 격이랄까?



물론 워낙에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정세로가 감정선이 널뛰기가 심하기는 하다. 더구나 보통의 드라마에서는 유약한 남자가 복수를 꿈꾸며 강해진다. 하지만 <태양은 가득히>의 정세로는 유약한 남자가 복수를 꿈꾸기 위해 강한 척하려 했으나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여전히 유약하다. 고로 그 동안 윤계상이 연기했던 인물에 비하면 너무나 복잡한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 인물이다. 이 인물의 맥을 잡으려면 대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감정의 호흡을 적절하게 잡아내는 ‘감’이 필요하다. 같은 드라마에 출연중인 조진웅이나 김영철, 김유리에 비해 윤계상에게는 아직 그 감이 살짝 부족해 핀트가 엇나갈 때가 있다.

<쓰리 데이즈>에서 박유천이 연기하는 수행팀 경호관 한태경 역시 만만한 캐릭터는 아니다. 드라마 초반부에 박유천은 이 드라마의 거대한 규모에 의기소침해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건 의외의 모습이긴 했다. 사실 아이돌 출신 배우로서 박유천의 가장 큰 장점은 화면 안에서 ‘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뻣뻣한 연기는 사실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탓도 있다. 특히 SM의 아이돌스타들에게 이런 부분들이 더 도드라진다. 하지만 똑같이 SM 소속이었던 박유천만은 이 틀을 벗어나 있다.

대표적인 성공작인 <성균관 스캔들>이나 <옥탑방 왕세자>에서 박유천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꽤 자연스러운 감정연기에 성공했다. 박유천은 주어진 과제를 퍼즐처럼 즐기고 풀어가는 수능형 학생처럼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즐기는 듯 보일 때가 있다. 더구나 박유천은 인물이 보여줘야 하는 슬픔이나 기쁨 같은 극적인 감정을 잡아채고 보여주는 ‘감’이 좋다. 이 감이 좋아서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쉽게 박유천이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에 동화된다. <쓰리 데이즈>에서 박유천이 가장 빛났던 부분 역시 대통령을 다시 만난 뒤에 오열하며 아버지의 죽음과 팔콘, 대통령 사이에 얽힌 비밀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었다.



다만 기존에 박유천이 해왔던 소소한 멜로나 로맨틱코미디와 달리 <쓰리 데이즈>는 덩치가 큰 작품이다. 더구나 장르물의 배우는 튀는 감정연기보다 주어진 캐릭터에 철저하게 충실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박유천은 <쓰리 데이즈>에서 감정소모가 큰 장면이나 몸의 움직임이 큰 액션장면은 그럴듯하게 보여주면서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연기가 필요한 부분에서 어색하게 화면에 잡힐 때가 있다. 혹은 평범한 대사를 평범하게 풀면 되는 부분을 발음이나 발성이 완벽하지 못해 뭉개는 경우도 있다.

그 동안 배우로서 쌓아온 장점들이 삐걱거리는 건 이런 사소한 부분들 때문이다. 노른자가 가운데 오도록 계란프라이를 잘 익혀놓고 뒤집는 순간에 살짝 노른자가 새어나와 얼룩덜룩 일그러지는 격이랄까? 그가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손현주나 장현성, 윤제문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화면을 장악하는 배우가 되려면 사소한 기본기를 다져가는 과정이 아직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

공교롭게도 두 배우가 연기하는 작품 모두에서 주인공들은 극 초반 아버지를 잃는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정글인 자본의 세계와 정치판에 내던져진 아버지 없는 고아 같은 아들이 풀어가는 이야기가 두 드라마의 주요 줄거리다. 그건 어쩌면 과거의 아이돌스타라는 거대한 백그라운드가 사라진 채 오롯이 배우로서 평가 받는 현재 그들의 운명과 비슷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극 초반에 사라진 배우 이대연이 연기한 각기 다른 아버지상은 두 사람이 앞으로 배워야 할 연기의 교본으로 다시 살아난다.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아버지상은 사기꾼이지만 사람은 좋은 껄렁껄렁하고 자유로운 유형이다. 한편 <쓰리 데이즈>에서의 아버지상은 대통령을 수행하는 자기 직분에 충실한 지극히 교과서적인 유형이다. 그리고 윤계상, 박유천 모두 사라진 아버지를 통해 각자의 연기를 다시 들여다볼 시기에 와 있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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