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인사이드 잡’에 해답이 담겨 있어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새 영화가이드]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작품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개봉 상영중인 찰스 퍼거슨 감독의 <인사이드 잡>은 보기가 녹녹한 작품은 아니다. 일단 어렵다. 신문의 경제 지면을 매일 꼼꼼이 챙겨보거나 종합지보다는 경제지를 먼저 집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다큐멘터리가 분석하는 2008년의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를 100%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사이드 잡>의 포커스는 외형상으론 일단,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최대 보험사 AIG의 몰락이 왜 일어났는지에 맞춰져 있다. 이들이 망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3천만명이 직장을 잃었고 5천만명이 극빈자로 전락했다. 이른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해 서민들 대다수가 집을 잃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영화는 중간중간, 전문적인 경제학적 지식을 다양하게 펼쳐 놓긴 하지만 굳이 그걸 다 따라 오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이 모든 일이 사실은 상위 1%의 탐욕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그리고 그 상위 1%는 월가의 금융가들, 백안관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가들, 그리고 이들을 도와 혹세무민의 이론들을 설파하는 하버드와 캠브릿지 같은 대학의 경제학자들로 구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 정경유착의 밀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양측간 네트워킹이 정교하게 구축돼 있어 사태가 2008년에야 터진 것이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고매한 경제학자라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 전대미문의 금융사기극에 있어 단순한 동조자나 공범이 아니라 거의 주역에 가까운 것이었다. 영화는, 미국 경제가 향후에도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음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갖가지 금융 파생상품에 의해 주도되는 미국식 자본주의 혹은 세계 자본주의는 점점 더 끝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다큐멘터리지만 이 영화가 공포영화 장르에 가까울 만큼 전율과 소름이 끼친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영화가 전편에 걸쳐 핵심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금융규제 완화’다. 그런데 은행을, 자본을 규제하지 않았을 때 어떠한 악행이 벌어지는 가를 낱낱이 목도하게 한다. 자본은 양화일 수 없다. 생태적으로 악화이며 그래서 적절한 통제와 규율이 밑받침 되지 않으면 저 스스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 예컨대 부시 전 대통령 같은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금융 규제를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금 감면도 그가 늘 입에 달고 다녔던 얘기였다. 미국의 경제위기를 일으키고 그걸 전 세계로 이어지게 했으며 그래서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이처럼 팍팍하게 만든 이는 바로 부시와 같은 이기적이고 親자본가적 위정자다.

버락 오바마도 그와 같은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영화 속 한 인터뷰 대상자가 냉소적으로 내뱉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는 오바마가 당선 전에 반드시 금융개혁을 실현시키겠다고 약속한 것을 애초부터 믿지 않았다며 그 이유에 대해 ‘지금의 미국 정부는 월가의 정부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오바마 정부의 경제 부처 혹은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수장들, 예컨대 벤 버냉키 미국연방준비위원회 위원장이나 래리 서머스 같은 백안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등은 문제가 됐던 골드만 삭스나 리먼 브라더스, 메릴린치, JP모간 등등에 직간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이들 투자은행에 지분을 갖고 있는 고위직들이어서 왜 미국 정부가 그 동안 규제 완화를 소리 높여 외쳐 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가 결코 남의 일인 것처럼 절대 느껴지지 않은 것은, 지금 이 땅에 그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정치인들이 실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예측 가능한 경제위기 상황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길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셈이라는 얘기다. 이 다큐멘터리가 개봉 초기부터 알게 모르게 사람들 인구에 회자되며 비교적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유다.

영화는 두 가지 지점에서 약간 놀라게 하는데, 다큐멘터리치고 꽤나 블록버스터급이라는 점이 그 하나다. 전세계 경제위기의 현황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슬란드부터 중국, 싱가폴 등 비교적 여러 나라를 탐방하고 다닌 것은 기본이다. 불안한 세상을 표현하려는 듯 다큐멘터리치고 유난히 고공촬영, 항공촬영을 감행한 것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할리우드 스타 맷 데이먼을 캐스팅해 내레이션을 맡긴 것은 이 영화가 저예산 공법으로 소수에게만 보여지고 읽혀지기 보다는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하기를 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사이드 잡>은 <캐러비안의 해적>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포문이 시작된 요즘의 극장가에서 매우 이색적인 작품이다. 영화를 통해 종종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학습되고, 경제적으로 교육되며, 사회적으로 조직된다. 영화는 ‘의식화’를 위한 훌륭한 기제이기도 하다. 지금의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란다면, 세상의 부가 지금보다는 공평하고 올바르게 분배되기를 원하고, 그것이 후대의 삶에 올바른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면, <인사이드 잡>을 봐야 할 것이다. 영화관람이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인사이드 잡>은 그렇게, 꼭 봐야 되는 작품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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