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히스토리보이즈’ 배우 박은석 이재균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이 시대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배움'과 '성숙'에 대한 이야기, '지식의 전달'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연극 <히스토리보이즈>(작가 앨런 베넷, 연출 김태형)의 두 배우 박은석과 이재균을 만났다.

<히스토리보이즈>는 1980년대 영국의 한 공립고등학교에 다니는 8명의 영재반 학생들 이야기다. 그 속엔 ‘사람이 아닌 인생’을 위한 수업을 목표로 다소 자유로운 수업을 펼치는 문학교사 헥터와 오직 '옥스브리지'(옥스포드+캠브리지) 입학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교장, 그리고 오로지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고용된 옥스포드 출신의 젊고 비판적인 역사교사 어윈이 함께한다.

이재균은 어려 보이는 외모와 수줍은 성격을 가진 유태인 소년 포스너로, 박은석은 준수한 외모에 자신감 넘치는 데이킨으로 열연 중이다.

■ <히스토리보이즈>의 이재균 포스너에 대해 궁금한 것들

-초연보다 ‘포스너’로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배역이 저랑 잘 맞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유사한 내면이나, 여지껏 살아왔던 경험이 최대한 많이 활용 됐을 때 캐릭터가 살아나고, 좋은 효과가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물론 저랑 맞는 역할만 할 순 없지만. 이 작품이 성장의 기회가 된 것 같아요. 라디오에 나와서 대본만 읽어줘도 정말 좋은 작품이죠. 모든 면들에서 전보다 많이 섬세해지고 그 때보다 더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사회성이 늘었어요.”

-사회성이 늘었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뭔가?
“제가 사람들하고 말을 잘 못해요. 자기 세계가 강하다고 할까요. 밝게 살아왔다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봐요. 형들과 오래 작업을 하다보니, 배우는 것도 분명 있어요. 예전에 <닥터지바고> 처음 했을 땐 말을 너무 안 해, ‘전미도, 김지우 배우가 선생님보다 제가 더 불편하다’는 말을 할 정도였거든요.’ 제 나이가 25세인데, 어린 나이죠. 사회성을 기르려면 형들에게 재롱도 부리고 해야 하는데, 작업하면서 그런 것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포스너는 계속 수첩에 뭔가를 적는다. 왜 수첩에 기록을 하나? 친구들이 헥터 선생님의 대화 방식에 따라 메타포적인 대화를 한다면, 포스너는 그렇지 못한다. 왜 그런가?
“수첩에 기록하는 건 제가 스스로 했다기 보다는 헥터 선생님이 제가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해 준 거라 생각해요. 포스너가 어리고 겉도는 느낌이 있는데, 그렇게 임무를 부여하면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되니 그렇게 해 줬다고 봐요. 그것 때문에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돼요. 메타포적인 이런 대화를 하기에 포스너가 덜 성숙하다고 말 할 수 있고, 사실 조금 놀림거린 건 맞죠. ‘데이킨 좋아한다’ 말하니 놀리잖아요. 지금은 한 살 차이가 크게 동생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는데, 느낌 자체가 어린 느낌을 주고, 조금 감정적이고 솔직한 느낌이 강해서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포스너만 그 대화에 끼지 못하는 건가?
“그렇다기보다는, 포스너는 자기만의 장난을 치고 있어요. 수업시간을 장난꺼리 삼아 선생님을 놀리는 거라 볼 수 있는데, 포스너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아닌 아이들을 놀리면서 장난을 치고 있어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헥터 선생님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은 거죠. 또 다 ‘빨간 색이야’ 라고 말 할 때 ‘아니야, 노란색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김태희 예쁘다’고 말할 때 ‘아니다. 별로다’ 라고 말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데 궁금한 게 있다.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을 때, 교장선생님은 왜 포스너에게 쪼그려 앉아서 사진을 찍게 하나?
“의자에서 내려 와 쪼그려 앉으라고 하는 건 일종의 유머 아닐까요. 다른 극에선 매 장면을 굉장히 감동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데, 저희 작품은 그 흐름을 깨는 유머가 쏙쏙 들어있어요. ‘너네들 너무 감동하지 마’ 그런 생각이요. 데이킨 대사에도 있듯 진부한 걸 무시하진 않지만 유머를 던져놔요. 어떤 슬픔 순간에도 헥터가 위트있는 대사들을 칠 때가 있어요. 아무리 비극적이라 느껴도 남들은 신경 안 쓰고 설거지 하고 있어. 그런 대사가 있는데, 인생이 원래 그런 거죠.”

-나중에 어윈을 찾아간 포스너는 책에 사인을 받을 때 포스너가 아닌 ‘데이빗’으로 써 달라고 한다. 그 이유는?
“어윈에게 데이빗으로 써 달라고 하는 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건, 포스너가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다고 말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성인 대 성인으로 마주하고 싶었던거죠. 왜 데이빗으로 사인을 받았냐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왜 어윈에게 사인을 받으러 갔느냐가 중요하죠. 포스너가 신경 쇠약까지 가게 된 이유가 어렸을 때 생각한 이상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봐요. 포스너에겐 그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는데 ‘나도 너랑 같은 사람이다’는 말 한마디에서 얻게 되는 위안이 있는데, 그 사람은 아직도 날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데이킨 나도 좋아했어’ 그걸 듣고 싶어 갔는데 어윈은 끝까지 벽을 쳐버려요. 다시 사인해달라 간 건, 끝까지 어윈에게 ‘말해주세요’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벌어졌던 유태인 대학살 ‘홀로코스트’ 토론 장면에서 포스너는 유태인으로서 슬픔도 있지만, 데이킨과 어윈에 대해 화난 마음도 들어있는 건가?
“작년에 이미 유태인에 대한 다큐 영화도 굉장히 많이 봤고, 유태인인 포스너로서의 감정도 있겠죠. 어떤 남자가 우리 가족을 죽였는데, 그럴 수 있을까? 그런 느낌까지 상상해보기도 해요. 하지만 토론 인만큼 이성적으로 하려고 하는데, 점점 도가 지나치고 있어요. 물론 그 장면에선 ‘데이킨이 정말 나를 생각하지 않는구나’ 그런 데이킨에 대한 마음이 굉장히 섭섭하고 가슴 아프고 그래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니까 더 그래요.”



■ 박은석 데이킨의 흥미로운 ‘터닝포인트’를 짚어보다

-초연 <히스토리보이즈>를 보며 ‘데이킨’이란 캐릭터에 대해 매력을 느꼈다고 들었다. 구체적인 이유를 물어본다면?
“‘연극을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란 생각을 하게 돼요. 배우들이 많이들 그렇죠. 그렇게 데이킨의 역할에 흥미를 느꼈어요. 무슨 캐릭터지? 데이킨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뭔지 한번 파악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전 연기를 하면서도 과거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번 작품은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 때 그 시절 기억 속에서 소스 아닌 소스를 받았어요. 공연 관련 평론가들 글이나 여러 정보들도 찾아보고 하면서 데이킨이란 인물의 아웃라인을 잡았어요. 그 뒤에 제 경험으로 채워 나가는 그 작업이 재미있었어요.”

-<히스토리보이즈>엔 음악, 시, 희곡, 역사 등 엄청난 정보들이 나온다. 관련 자료를 스터디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시나 노래를 스터디 하는 건 의도를 알면 되니 괜찮았는데, 2차 세계대전이나 1차 세계대전 같은 역사적인 사실 전체를 이해하는 게 힘들었어요. 적어도 내 대사는 알고 해야 하는데, 전체 역사를 암기할 순 없잖아요. 그런 점들이 힘들었죠. 시나 노래와 관련해서 잠깐 잠깐 인용구 던지는 건 어떤 의미에서 서브 텍스트를 던지는 건 알겠는데, 어윈의 나에 대한 반응들이 힘든 면도 있어요. 한국인지만 영국학교 학생으로서 모국인들의 반응을 내재해서 보여줘야 하는 건데 쉽지 않죠.”

- 연극 안에서 특별히 흥미롭게 다가오는 시가 있다면?
“데이킨이 어윈을 유혹하는 장면에 나오는 오든의 시요. 오든이 자기 학생이랑 연애 한 걸 가지고 교묘하게 데이킨이 말하죠. 자기 마음이 반영된 시니, 어윈보고 들으라고 하는거죠.”

-데이킨은 어윈을 3번 유혹한다. 그 중에서도 담배 장면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구체적인 사건으로 보면 3번 맞아요. 그런데 데이킨은 계속 어윈을 유혹해요. 어윈의 엉덩이를 보기도 하면서. (칠판에 붙어있는 남자 엉덩이 사진도 그런 의미인가) 그건 무대 디자이너가 선택한 사진이라 구체적인 것 까지는 모르겠어요. 그 담배 장면은 기본적으로 학생이 아닌 성인으로 데이킨을 인정해 준거잖아요. 또 선을 넘어간 거에 대해 인정한 거죠. 어윈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혼냈다면 넘어가지 않았을텐데, 어윈이 여지를 안 준 것처럼 주니, 그 공간을 이런 마음을 가지고 확 밀어붙이게 돼요. 그래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요. 어윈에게 담배를 건네줬을 때 커넥션이 생겨요. 어윈이 선을 넘은 내 마음을 받아들인 거죠. 그렇게 어윈이 내 마음을 받아들인 것에 확신이 생기죠. 그리고 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펼쳐졌겠죠.

-담배를 나눠 핀 거니 간접적이나마 어윈과 키스를 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나
“그 장면에서 하나의 담배를 나눠 피운 것 보다는, 데이킨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다가가 어윈 손에 내 입술을 갖다 대요. 마치 ‘당신도 나에게 굴복을 할 것이다’는 생각으로요. 제가 그런 게 아니라, 데이킨이 이상한 아이죠.(웃음) 명행 배우가 작년보다 훨씬 섬세하게 연기해 재미도 있죠.”

-2막에 데이킨이 어윈에게 자기가 쓴 에세이 제출하는 장면, 즉 역사가 여러 가능성을 두고 덜컹거리는 순간, 전환점, 터닝 포인트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터닝 포인트’라는 것은 어윈을 만나기 전에는 데이킨이 가지고 있었던 지식의 방향성은 아니었죠. 어윈은 항상 반대로 생각하라고 해요. 모든 게 교과서적으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닌, 무조건 팩트만 먹는 게 아니라는거죠. 전환점, 거기를 파기 시작하면서 데이킨은 어윈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리포트를 써요. 사실 데이킨은 어윈을 만나기 전에는 교장 비서인 피오나와 관계를 제대로 진전시키지 못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데이킨이 매일 어윈 이야기만 하니 겁나하며, 거부했던 섹스도 차라리 하게 돼요. 거기서 계속 다른 시각이 열리죠. 원래도 똑똑한 애가 그러한 소스를 통해서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평상시에 내가 알고 있던 모든 문제 중에서 제기를 하게 돼요. 선생님과 학생의 사랑? 왜 학생이라서 안돼? 같은 인간인데 안 돼?, 그런 깡다구가 생기죠. 그래서 어윈이 말하는 터닝포인트가 내가 어윈과의 관계에서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요. 교통사고가 또 다른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요.”



■ 박은석 “어윈이 데이킨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준 것”

-포스너는 물론 헥터(최용민), 어윈(이명행) 선생 모두 데이킨을 좋아한다. 데이킨은 늘 사랑만 받아온 아이인가?
이재균: 데이킨은 엄청난 남자죠. 다음 시즌엔 데이킨을 하고 싶어요. 군대 갔다 와서 해 보려고 해요.

박은석: (다음 시즌엔 은석 데이킨이 포스너가 되는건가)포스너도 괜찮지만 전 어윈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데이킨은 선생님들도 좋아하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아요. 그런데 린톳(추정화) 선생님은 데이킨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데이킨은 사랑을 받은 아이라기 보다는, 세상을 살면서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던 아이입니다. 그 점이 자신감과 우월함으로 표출되는 거겠죠. 살아오면서 상처를 받지 않았으니,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죠.

-똑똑하고 잘 생기고, 인기도 좋은 데이킨에게 부족한 건 뭔가?
이재균: 그게 없잖아요. 겸손함이요. 겸손이 우리나라에서만 미덕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데이킨은 남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죠.

-재균 배우는 데이킨 만큼 엄청나진 않더라도 자신감이 있는 편인가?
이재균: 자신감이요? 포스너랑 비슷한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데이킨보다는 포스너랑 닮은 면이 많지 않나요?

-은석 배우는 데이킨 그대로 자신감이 넘치는가?
이재균: (박은석을 가르키며)이 분은 제가 봤던 분 중에 제일 거만한 분이죠. (또 다른 데이킨 역)김찬호 형은 모든 면이 다 뛰어나요. 공부도 학창시절에 정말 잘 했고, 외모도 운동도 다 뛰어나요. 그 사람은 잘 난거고, 은석형 은 잘났지만 자신감이 뛰어나요.(박은석 데이킨과 김찬호 데이킨의 잘난 점이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난감해하며)그렇게 물어보시면 말 할 수 없죠. 계속 작품에서 만나야 하는 형들인데.

박은석: 인간이라면 누구나 작아질 수 있어요. (인터뷰 장소에 앉아있는 모습도 자신감이 넘친다) 공연 끝나고 바로 인터뷰를 해 아직 캐릭터에서 못 벗어났나봐요.(웃음)

이재균: 은석 형은 대표님 만난 자리에서도 이런 자세였어요. 처음엔 톱스타도 아닌데 이런 포즈로 앉아있어 놀랐는데,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형 때문에 밝아진 게 많아요. 안 좋은 것도 배우기도 했지만 운동도 함께 하고, 자신감도 많이 가르쳐 주고 있어요.

-어윈(이명행) 선생님을 두고 데이킨과 포스너는 삼각관계를 이룬다. 데이킨은 어윈 선생님에게 왜 매력을 느꼈을까?
박은석: 어윈이 나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준 거라 생각해요. 왜 모든 사람들이 오른 쪽으로 가라고 할 때, 왜 왼쪽은 안 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어윈이 그런 사람이죠. 새로운 시각으로 모든 걸 보게 해주니 데이킨 에게는 딴 세상이 열렸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어윈에게 매력을 느꼈을거라 봐요.

-데이킨에겐 헥터 선생님과 어윈 선생님이 어떻게 다른가?
박은석: 헥터의 보금자리에서 늘 먹던 밥만 먹고 있었는데 새로운 맛있는 게 나타난 거죠. 예를 들면 늘 같은 사료만 먹고 있는데 어윈이 처음 맛본 고깃덩어리를 던져줘요. 헥터 선생님이 사료를 나에게 더 많이 줬고, 날 더 사랑했지만 어윈의 그 말에 넘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보면, 어윈은 (제일 좋은 지식을 뽑아내는) 공장이라고 생각하면 헥터는 (마음대로 펼쳐져 있는 지식을 넘겨주는) 밭이죠. 그 맛이 달라요.

■이재균 “먼 훗날 포스너는 현실적으로 위로해주는 문학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포스너 입장에선 어윈에게 질투심을 느끼나? 아님 또 다른 감정인건가
이재균: 어윈이 가르치는 방식 그런 것들에 대해 동질감도 느끼고, 굉장히 매력적이다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질투를 할 수도 있겠죠. 질투를 하면서도 ‘데이킨이 저런 사람을 좋아해?’ 이런 심정이 아니라 ‘저 사람은 좋아할 수 밖에 없겠다’라고 생각하죠. 포스너는 그래서 오히려 어윈에게 다가가요. 질투의 마음일 수 있겠지만 ‘난 같은 동성애자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과연 뭔데 뭔데‘ 하며 어윈의 마음을 직접 듣고 싶어해요.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한 켠에 있어요. 포스너는 어윈에게 다가갔는데 어윈이 그 끈을 끊어버려요. 극 안에서 어윈은 속마음을 감추고 있지만 아마도 포스너의 순수함이 크게 다가왔겠죠. 그래서 포스너를 밀쳐낼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이재균 포스너는 데이킨을 쳐다보는 시간보다 어윈을 쳐다보는 시간이 더 많다고 느껴졌다. 데이킨과 어윈의 반응을 번갈아가며 지켜보고 있는 건가?
이재균: 포스너의 시선이요? 데이킨을 보고 데이킨을 쳐다보고 있는 어윈의 반응을 보고 있는 게 많아요. 데이킨이 뭘 하는지 하나하나 행동을 보는 게 아니라, 어윈의 행동을 보고 ‘저 사람도 동성애자구나’. 그걸 보는 거죠. 데이킨을 보고 데이킨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윈이 있어요. 어윈의 상태를 살피다가 데이킨을 봐요. ‘데이킨이 딴 짓을 하고 있을 때 어윈이 어디를 보고 있나?’도 보는거죠. 또 데이킨이 어윈의 엉덩이를 툭 치고 가면 어윈은 계속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 시선들을 보면서 느끼는 거죠. 극 안에서 내가 데이킨을 보고 있으면 어윈하고 눈이 자주 마주쳐요.

-늘 자신감 넘친 데이킨은 성인이 돼서도 잘 살아갔을까? 반면 포스너는 ‘행복하지도 않지만 불행하지도 않아요’ 라로 말하지만, 사회적인 잣대로 보면 잘 살지 못했을 것 같다.
이재균: 잘 모르겠어요. 뭐가 잘 사는 건지, 뭐가 나쁘게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 작품을 하고 있으면서, 보는 사람에게 뭘 강요하면서 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물론, 포스너는 나중에 그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게 해결이 되지 않아, 미래에 안 좋은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어요. 포스너는 데이킨을 가볍게 좋아하는 게 아니거든요. 자기 딴에는 오래전부터 정말 좋아했어요. 일단 내가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포스너가 연극에 나와 있진 않지만, 보이는 것보다 좀 더 수줍고 더 낯을 많이 가린 아이였다고 봐요. 그런 포스너가 데이킨을 봤을 때, 데이킨은 자신과 다르게 아이들과 너무 잘 어울리고 리더십도 있잖아요. 동경이나 질투, 그런 마음에서 데이킨에 대한 감정이 시작 됐을 것 같아요.

박은석: 데이킨은 나중에 세금 변호사가 됐다고 하는데 보기와 달리, 되게 외롭게 살았을 것 같아요. 데이킨의 제일 큰 단점은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거거든요. 모든 게 재미있는 아이죠. 어윈도 재미있고 가정법의 역사도 재미있고, 여자도 재미있고, 그렇지만 단 한 가지, 진실한 사랑을 몰라요.

이재균: 포스너가 신경 쇠약을 앓고 있다고 나오는데, 정말로 끝까지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진 않아요. 분명 불행한 그 시기는 있었겠지만 또 극복 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자신과 같은 이들을 현실적으로 위로해주는 문학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요? 포스너가 청소년기엔 그런 문학 작품이 많이 없었겠죠. 문학 작품이 ‘지나갈거야’ 어윈도 ‘지나갈거다’ 말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나가지 않아요. ‘지나가지 않을거야’라고 말 하는 그런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보다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요즘 시대의 소설가 한 명이 됐을 것 같아요.



■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존재 ‘헥터’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헥터 선생님은 포스너랑 더 교감하는 것 같은데, 막상 좋아하는 건 데이킨이다. 왜 그러나?
박은석: 헥터가 왜 나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는데요. 그건 용민 선생님 생각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마도 데이킨이 제일 유머감각이 있고, 잘생기고 모든 그룹의 리더였으니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헥터 선생님이 오토바이 뒤에 태우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 중에 포스너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재균: 헥터 선생님만 아시겠지만 포스너가 남자로 안 보일 수 있고, 헥터 성생님 취향이 아니라 성적 매력이 없을 수도 있겠죠. 또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그러고 싶진 않았을 것 같아요. 진부하게 말하면 내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니까요.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있겠지만 취향이 아니었던거죠.

-데이킨의 성격이라면 동성애를 감추고 있는 헥터 선생님에 대해 한마디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는다.
박은석: 데이킨은 헥터의 그런 동성애적인 행동을 암묵적으로 동의 해줘요. 헥터는 어윈과 다른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존재요. 헥터가 우리를 존중 했으니 우리도 존중해줘야 하는거죠. 헥터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은 마음이 커요. 직접적으로 말하면, 상처를 받을 걸 알기 때문에요.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내가 이야기를 했을 때는 상처가 더 크겠죠. 물론 애들끼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헥터에겐 그 이야기가 들리지 않게 조심하죠. 그런 동맹의식이 우리에게 있는 걸 아니까 재미있고, 함께 놀고 하는 데, 선을 넘진 않아요.

-1막 마지막 헥터와 포스너가 시와 언어를 통해 형성하는 공감대가 감동적이다.
이재균: 포스너가 하디의 시 ‘북치는 소년’을 낭송할 때, 처음엔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읽어요. 선생님이 읽어보라고 하니 시가 가지고 있는 느낌을 가지고 읽었겠죠. 그 뒤 헥터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해보고 시에 담긴 의미를 다시 알게 돼요. 헥터 선생님과 큰 교류가 있고, 다시 읽었을 땐 다른 느낌으로 읽죠. 하디의 시에도 굉장한 위안을 받지만 헥터의 말에서 굉장한 위안을 받아요. 그리고 포스너가 헥터에게도 굉장한 위안을 주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전 헥터 최용민 선생님이 어려웠어요. 술도 많이 못 먹으니 가까워질 기회도 많이 없었어요. 극 안에서 헥터랑 포스너는 많이 친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이 저에게 장난을 치지 않아요. 너무 장난스럽고 익숙해지면 포스너와 헥터가 (연극 속)그 공간 안에서 섬세함을 느끼기 힘들거든요. 이 공연 끝나면 좀 더 친해지고 싶어요. 선생님이 작년보다 더 헥터 같다는 걸 느껴요. 공연 중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이 울어요.

박은석: 용민 선생님이 무대 인사할 때 가장 감동스러워요.

이재균: 저희들도 <히스토리보이즈>를 좋아하지만, 선생님이 이 공연을 가장 좋아하세요.

박은석: 제일 마음에 남는 건 헥터가 말하는, ‘시험이 끝났을 때도 인생은 계속 된다’ 그 대사요. 그 안에 뿌리가 탄탄한 게 있다는 느낌을 받죠.

■ 이재균, “‘히스토리보이즈’가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히스토리보이즈>학생들 중 주인공은 포스너일까?
“스크립스(안재영)일 수도 있고, 팀스(황호진)일 수도 있고, 크라우더(이형훈) 일수도 있죠. 누가 주인공이다 생각하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 <히스토리보이즈>입니다. 연습할 때도 누가 주인공이단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대본도 누구 한명만의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해 놓지 않았어요. 맨 마지막에도 각자 독백들을 해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물론 헥터 어윈 포스너 비중이 크다고 볼 수는 있어요. 전 사실 럿지(임준식)를 보면서, 럿지가 면접관에게 이야기 한 그 부분에서 감동을 받아요. 우리가 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민감하게 생각하는 거 있고, 그걸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저 아이들에겐 다른 게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해요. 감동적이죠. 재미있는 게 툭툭 답을 던져주지 않고, ‘넘겨줘’ 하면서 끝나는 작품입니다. 이 점이 이번 작품의 매력이지 않나.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겁한 것일 수도 있고, 공연을 해야 하는 입장에선 어려울 수도 있는데, 내가 찾아낸 것으로 소통할 수 있고,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이 작품이 배우 인생에 굉장한 전환점이 됐어요.

-“받아서, 느껴보고, 넘겨주라"란 이 작품의 주제에 빗대어 재균 배우는 뭘 넘겨주고 싶은가?
“누군가가 나이 50이 되고 60이 돼 어떤 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겠죠. ‘이렇게 살아야 돼’ 말하지 않고 그대로를 말하겠죠. ‘힘들지? 원래 힘든 거야’ 이런 식으로 뭔가 답을 내려주지 않고 싶어요. 엄청나게 지혜로운 사람이 말해주는 것도 답이 아닐 수 있잖아요. 네가 불행하다고 해서 불행하지 않을 수 있어. 맨 마지막에 졸업사진을 찍고 ‘받아서 넘겨줘’ 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히스토리보이즈> 이후 엔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순호로 돌아오는 이재균 배우는 인터뷰를 마치며, “연극이 현실을 잊게 해주고, 또 현실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했다.

“정말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순간 순간 진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TV나 영화와는 다른 진실이죠. 제가 평상시에 그렇게 크게 울어본 적이 없는데 연극을 보고 운 적이 있어요. 가장 크게 운 연극이 <멧밥 묵고 가소>란 작품인데, 그 작품을 보고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어요.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겐 그런 기대감도 있지 않을까요. 요즘 힘든 현실을 많이 잊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연극에서만 가능한 현실을 깨닫게 하는 매력이 좋아요.”



■ 배우 박은석, 인간 박은석을 말하다.

이재균 배우는 데이킨과 닮은 박은석을 보고 “그게 마치 타고 난 듯이, 뭔가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신감이 표출된다. 사람 보는 곳에선 연습 안하고 집에서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맞아요. 남들 앞에서 약점을 보여주기 싫어 집에서 연습해요. 집에서 될 때까지 연습을 해요. 그러다 극 안에서 많이 감정을 나눠가져야 하는 어윈 역 명행 형이랑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 형은 ‘그 때 어떤 감정으로 주세요’ 이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아요. 그건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어떤 감정으로 하냐’ 고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상대의 명확한 서브 텍스트 방향을 알고 있으면 내 집중이 깨져요. 전 옆에서 계속 관찰만 하려고 하죠. 내가 방향성을 줄 때도 일차원적으로 주지 않으려 해요. 최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을 때 그걸 많이 가져오려고 하죠.”

-<옥탑방 고양이>,<트루웨스트>,<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햄릿> 등을 거치며 계속 발전하고 있는 배우다.
“<햄릿>은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었던 공연이고, <트루웨스트>는 만족보다는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작품이고,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재미있게 했는데 춤도 못 추는데 댄스 강사를 했던 작품이죠. 연극은 그 날 그날 배우들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게 있어요. 그 사람의 리액션이 달라져있으면, 그 상태에서 얼라이브가 느껴져요. 그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사실 상대 배우는 매 순간 뭘 주고 있었는데, 내가 캐치를 못했던 것 일 수도 있죠. 그런데 내가 여유가 생기니 변화를 일으키고 표정이나 추임새가 나갈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리딩 했을 때 가졌던 것과는 차원이 달라지는거죠. 그 뒤에 2D, 3D로 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연극이 재미있어요.”

-오랜 미국 생활을 했다. 일부 관객은 은석 배우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7살 때 미국에 가서 22살에 한국으로 왔어요. 사실 제가 외국에서 살다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몰라요.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보는 사람은 트집을 잡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겠죠. 물론 제가 부족한 것일 수 있는데,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연극에서 언어가 중요하고 배우로서 정확한 딕션과, 발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감정을 전하는 거라 생각해요. 그래야 마음이 전해지는거니까요.”

-연극 <에쿠우스>의 알런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시즌 <에쿠우스>도 봤나
“얼마 전에 지현준 안석환 배우가 나오는 공연을 보고 왔어요. <에쿠우스>는 그 전부터 하고 싶었던 작품이구요. 역시 좋았어요. (노출 장면에 대한 부담도 있을텐데)쓸데없는 노출은 아니었고 예술적이었요. 거기게 합당하니 하라면 할 수 있어요. 알런이 여리긴 한데, 제가 조금 더 늙기 전에 해야죠. 주름들이 더 생기기 전에 하고 싶어요. (날 보러와요 할인 이벤트가 화제가 됐다)김준원 형이 여럿이 사진 찍어갔다면서, 자기 포토 존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하던데요. 서로 도와줘야죠.”

-<히스토리보이즈>이후 계획이 있다면?
“아직 부족하지만 앞으로 연기를 계속 하고 싶어요. 7월엔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무대에 오르는 노네임씨어터의 신작에 출연하게 됐어요. 마이크 바틀렛의 <컥>(더 컥 파이트)이란 작품입니다. 국내에선 이선균 전혜진 배우가 주연으로 나온 연극 <러브러브러브>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죠.

박은석 배우는 인터뷰를 마치며 “공연을 보며 잠시 육체를 쉬고, 영혼이 따라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요즘 사는 것이 너무 바쁘다 보니, 우리의 영혼이 움직이기 전에 육체가 앞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살아가는 데 있어 정답은 없어요. 다 불안정한 상태죠. 공연이든 책이든 이런 게 모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죠. 문학적으로 양식을 보상받는 것이요. 나에 대한 투자죠. 저도 작품 하나 하면서 많은 걸 느끼고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되게 매력이 있는 것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극장에 와서 똑같은 것(공연)을 접하게 됐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거죠. 그게 연극의 매력이겠죠.”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노네임씨어터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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