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SBS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은 판타지 스릴러로 16부작 중 14부가 방송되었다. 드라마는 유괴로 아이를 잃은 엄마가 아이가 죽기 14일 전으로 돌아가 아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을 담는다.

강력범죄와의 전쟁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이 당선된 가운데, 강남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이 터지고, 범인을 공개 수배하는 TV 생방송 도중 방송작가인 수현(이보영)의 딸이 연쇄살인범에게 유괴된다. 대통령의 범죄정책을 조롱하는 범인의 전화내용이 전국에 생방송되면서,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내려지고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지만 며칠 후 아이는 저수지의 주검으로 돌아온다. 딸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엄마는 저수지에 투신하지만, 마침 그곳에 던져지던 전직형사 동찬(조승우)이 그녀를 구한다.

저수지에서 나온 두 사람은 아이가 죽기 14일 전으로 시간이 돌아간 것을 알고 놀란다.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아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 직접 범인을 추적해나간다. 그런데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용의자가 나타나는 반전이 거듭된다. 드라마는 계속되는 반전과 차츰 드러나는 인물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망을 통하여 애초의 구도보다 훨씬 거대해진 사건의 얼개를 보여준다. 드라마는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복잡하고 정교한 구성을 통하여, 만만치 않은 정치적·철학적 함의를 들려준다.

◆ 사형제도라는 뜨거운 감자

<신의 선물-14일>은 처음부터 사형제찬반에 대한 논의를 깔고 출발한다. 수현의 남편 한지훈은 인권변호사로 사형제 반대 논객으로 TV토론에 나와 대통령후보와 맞선다. 토론에서 그는 범죄피해자의 인권을 말하는 대통령 후보에게 사형집행자의 인권은 왜 생각지 않냐고 묻지만, 토론은 지리멸렬해진다. 이것은 인권을 중심으로 사형제 찬반을 논하는 것이 그다지 실효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사형제 반대의 논거로 가장 구체성을 지니는 ‘오판의 가능성’을 들어 치고 들어간다.

동찬의 형인 동호는 지적장애인으로 10년전 무진에서 동찬의 애인 수경을 비롯하여 세 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였다는 부녀자 연쇄살인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동찬은 동호가 수경의 사체를 저수지에 유기하는 것을 목격하여 증언하였고, 동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범행일체를 자백하여 살인수법도 다른 두 건의 살인사건의 혐의까지 뒤집어쓰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 사건의 검사였던 사람이 한지훈이다. 무진에서 두 명의 여성을 죽인 진범은 10년 후 강남 부녀자 연쇄살인범이 된다. 한편 수경의 죽음에 가담한 이들은 유력자의 아들들이다. 강력한 권력자는 하수인을 이용하여 수사팀장과 한지훈을 협박하고, 수현과 동찬에 의해 밝혀지는 용의자들을 차례로 죽여 진실을 막는다. 또한 하루빨리 동호의 사형을 집행하기 위하여, 한지훈의 딸을 유괴하여 사형집행 쪽으로 여론을 몰아간다.



현재 대한민국은 사형선고는 내려지고 있지만, 1997년 12월 이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이 폐지된 국가에 속한다. 드라마에서 대통령은 강력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공약으로 삼아 당선되지만, 이후 연쇄살인사건 등이 일어나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하여 사형집행을 집어 든다. 하지만 사형집행을 비롯한 강성형사정책은 실질적으로 범죄 예방효과를 지니는 것도 아니며, 범죄피해가족들의 치유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드라마는 범죄피해가족이 한지훈에게 토마토를 던지거나 권력자의 하수인이 되어 범죄자 응징에 이용되거나 사형집행을 관철시키기 위한 범죄에 동원되는 모습을 통해 범죄피해가족들이 일반적으로 사형제를 찬성하는 것처럼 묘사하면서도 대통령 초청만찬장에 온 범죄피해가족이 “우리는 가해자의 목숨보다 진정한 참회를 원한다”고 말하는 모습을 사려 깊게 담는다.

<신의 선물-14일>에서 사형제는 대통령이 분노하는 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강한 정부’라는 이미지를 위하여 활용하는 정치적인 카드로 그려진다. 대통령은 여론무마용으로 사형제를 빼들면서도 사형제에 대해 본질적인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비난여론이나 무역마찰을 고민한다. 그리고 가장 추악하게도 대통령과 비서실장 등이 사형제를 원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는 사익과 관련이 있다. 드라마는 사형제를 강하게 원하는 사람들이 진실의 규명을 원치 않는 사람들임을 보여주며, 사형제가 지닌 가장 큰 맹점인 오판의 가능성을 여러 각도로 조명한다.



수현과 동찬이 해결한 사건 중에는 아들의 범죄를 말기 암인 아버지가 뒤집어쓰고 사형선고를 받은 사건도 등장한다. 동호의 자백 역시 동생을 위한 것이었다. 부족한 증거와 자백에 의존한 현재의 수사체계에서 오판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는데, 사형제는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다. 드라마는 대단히 복잡한 얼개를 통하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서리치게 체험시키며, 사법제도가 항상 명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사형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도록 한다.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신의 선물-14일>은 타임워프를 통해 14일전으로 돌아간 수현과 동찬이 사건을 막으려고 하지만, 일어난 사건들은 미세하게 변주될 뿐 거의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무수한 가능성의 갈림길들이 가지를 치지만, 그 수많은 가능성의 길들이 다시금 필연으로 얽혀 수렴되는 기묘한 시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존재론도 흥미롭지만, 드라마는 단지 14일전으로 왔을 뿐인데 이전에 알고 있고 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인식론적인 진풍경을 보여준다.

한지훈은 검사출신의 인권변호사로 ‘미스터 저스티스’로 불리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수현의 후배와 불륜관계였으며, 권력자에게 협박을 받아 진실을 조작하고, 유괴자작극을 벌인다. 그가 1인 시위까지 해가며 사형선고를 받아내던 검사에서 사형제를 반대하는 인권변호사가 된 것은 자신의 치부와 관련이 있다. 동찬에게 갑자기 엉겨 붙은 하릴없는 영감탱이(신구)는 엄청난 재산가이자 10년 전 무진에서 수경의 죽음에 가담한 자의 아버지로 동찬 형제의 진실을 알고 있으며 사형제 반대를 지지하는 재단을 운영 중이다.



수사팀장은 수현의 첫사랑이자 법무부장관의 아들인데, 범죄피해가족에게 인질로 잡힌 동찬의 조카 영규에게 총을 쏘아 지적장애인으로 만든 자신의 행위를 동찬에게 덮어씌운 뒤 그 치부를 가리기 위하여 권력자의 끄나풀이 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복잡한 사연을 지니고 있으며, 서로 미세한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맞물린 채 어느 것 하나 무관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웃집 도우미 할머니나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모두 각자의 목적에 의해 사건에 가담하거나 영향을 준다.

수현이 14일전으로 돌아가 알게 된 복잡한 관계망들은 이를테면 ‘신의 시선’에서 조망한 조감도에 해당된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과 많은 욕망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한두 가지 변수가 생긴다고 해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완전히 일어나지 않게 되는 건 아니다. 드라마에서 타임워프라는 판타지는 신의 시선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사고 실험적 설정이다. 타임워프가 일어나기 전 수현이 가지고 있던 일면적인 인식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이다.

신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이토록 복잡한 관계망 속의 인간이 극히 표면적인 인식만으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인식을 가진 인간이, 그것도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지도 못한 사법제도를 통하여 밝히고 결론내리는 진실이 어떻게 100% 진실일 수 있으며, 그러한 사법제도에 의한 피해자가 결국 동호와 같은 사회적 약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지 드라마가 묻는다.



(본래 전혀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지만) 걸핏하면 소모적인 감정논리에 빠지고 마는 인권 논쟁에서 벗어나, 오판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현실적인 사형제 폐지논의를 개진해야 한다는 드라마의 촉구는 매우 유효하다. 인간의 인식과 사법제도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최소한 돌이킬 수 없는 사형제도만이라도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가장 직관적으로 와 닿는 사형반대의 논거이기 때문이다.

<신의 선물-14일>은 지나치게 복잡한 줄거리가 다소 흠결로 작용하고, 한 사람의 용의자에서 다른 용의자로 옮아가는 과정에 치밀함이 부족하다는 점이 약간 불만스럽지만 상당히 완성도 높은 스릴러물이다. 더욱이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는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조승우의 연기는 괄목할 만하다. 서울 출신이라는 그가 과장되지 않은 사투리 톤을 구사하면서 전라도 사람 특유의 유머와 능청이 살아있는 연기를 소화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긴장과 완급을 조절하면서 골치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준다. 조승우의 연기 덕분에 극도로 복잡한 드라마의 피로감을 견디며 녹록치 않은 정치적·철학적 메시지를 음미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사형이라니!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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