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돌’ 주상욱·이민정 매력만으로는 부족한 2%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수목드라마 <앙큼한 돌싱녀>에서 주조연급 등장인물이 ‘파프리카’라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파프리카는 종종 단독샷으로 등장해 화면을 장악한다. 대부분의 주연급 출연자들은 파프리카와의 투샷을 경험한다. 남자주인공이 요리를 하는 장면에서는 빼놓지 않고 파프리카를 손질한다. 여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친구 역시 과일 먹듯 파프리카를 즐겨 먹는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이제 파프리카가 잊히려나 싶을 때면 어김없이 빨강, 노랑, 주홍 파프리카가 소품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드라마의 PPL인 파프리카의 과도한 노출에 그렇게 눈살이 찌푸려지진 않는다.

더구나 파프리카는 <앙큼한 돌싱녀>란 드라마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파프리카와 <앙돌>이 궁합이 맞는다는 이야기다. 컬러풀한 색깔과 앙증맞은 모양새 때문에 눈에 확 들어오는 파프리카는 고추과의 작물이지만 매운 맛보다는 단맛이 더 강한 작물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아삭하게 입안을 가득 채우는 식감 또한 상쾌하다. 또한 시금치나 딸기에 비해 4~5배 되는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다소 한물 간 장르처럼 여겨지는 로맨틱코미디인 <앙큼한 돌싱녀>가 제법 매력적인 이유 역시 비슷하다. 이 드라마는 그러니까 요리되지 않은 한 덩이 파프리카와 비슷하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기 위해 언젠가부터 드라마는 꽤 판이 커졌다. 과도한 노출, 과도한 폭력성, 복잡하지만 뚜껑을 열면 허술한 플롯까지. 스케일이 커진 드라마는 때론 감탄을 불러오지만 어떤 때는 눈과 마음을 피로하게 한다. 또 스케일이 작은 드라마는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인물들을 포진시키면서 보는 이들의 속을 쓰리게 한다.



<앙돌>은 이런 현재의 드라마와 비교해 보면 지극히 소박하고 간소하고 상냥하다. 갈등은 금방 풀어지고, 위기는 쉽게 해결되며, 악역으로 등장하는 조연들의 미운 짓 역시 타 드라마들에 비하면 애교다. 매운 맛이 있지만 맵기보다 달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에 비해 풍부한 것 있다면 그건 바로 비타민이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을 편안하게 쉬게 하고 활력과 웃음을 주는 그런 비타민 효과 말이다.

<앙돌>은 고시촌 천재 차정우(주상욱)와 고시촌 마돈나 나애라(이민정)가 이혼 후 다시 만나 오해를 풀고 사랑을 키워가는 스토리다. 여기에 차정우의 회사이자 나애라의 직장인 ‘돈톡’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이 코미디로 더해진다.

특이하게도 작가는 여주인공 나애라에게 특별한 성격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나애라는 과하게 청순하지도, 과하게 억척스럽지도, 과하게 매력적이거나, 과하게 궁상맞지 않다. 나애라는 드라마틱한 성격이 아니라 그 나이 또래에 어울리는 적당히 예쁘면서 적당하게 영리하고 또 적당히 속물적이다. 그리고 그 환경에 맞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흔히 친구들과 수다 떨 때 등장하는 옆집 살던 예쁜 여자애 시집가서 잘 살 줄 알았더니……에 등장하는 그런 인물인 거다.



드라마 상에서 나애라는 공무원이었던 남편 차정우가 사업 시작 후 4년 내내 바닥을 칠 때도 생계를 책임지며 남편의 뒷바라지를 한다. 하지만 생활고로 아이를 유산한 후 그녀는 결국 이혼을 결심한다. “너 뭐 착각했나 본데. 나한테 부부는 네가 나 먹여 살릴 때 부부인 거야.” 그렇기에 법원 앞에서 나애라가 남편 차정우에게 쏘아붙인 대사는 속물적이지만 그래서 속물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나애라가 이웃집 예쁜 여자애처럼 현실적이라서 사랑스럽다면 차정우는 비현실적이지만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벤처기업 ‘돈톡’의 대표인 그는 아내와의 이혼 후 벤처투자가 국씨 집안의 도움으로 승승장구 벤처신화를 이룬 인물이다. 이혼 뒤에 그는 나애라와 연애할 때처럼 더벅머리의 순박한 공대생이 아닌 슈트가 잘 어울리는 젊은 대표이사로 변해 있다.



성공한 슈퍼맨 같은 차정우는 그런데 여전히 클라크처럼 순박한 남자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나애라가 등장하고 두 사람 사이의 오해가 풀려가면서 차정우의 이런 순박한 모습은 더더욱 도드라진다. 더불어 언제나 신사적이고 묵직한 남자의 모습만을 연출했던 배우 주상욱이 보여주는 차정우의 아련하면서도 비루한 표정은 이 비현실적인 ‘순정남’을 정말 있을 법한 남자로 만들어준다.

이민정과 주상욱이 연기하는 두 주인공은 그렇게 한 쌍의 각각 색이 다른 파프리카처럼 사랑스럽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앙돌>이 맛있게 요리된 작품은 아니다. 배우들의 매력과 톡톡 튀는 대사, 재치 있는 유머코드로 승부수를 던지지만 큰 틀에서 드라마는 자주 삐걱거린다. 가끔은 뜬금없이 흐름이 끊기고 어떤 때는 지루한 장면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생각보다 <앙돌>의 시청률이 낮은 까닭 또한 편안하게 볼 수는 있지만 오래도록 끌어당기는 맛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타민이 풍부한 파프리카의 풍미를 부드럽고 산뜻하게 돋울 드레싱 준비에 소홀했다는 이야기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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