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아. 내가 이상하다는 거. 결혼 못해서 안달 날 나이도 아니고, 아직 결혼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어. 근데 걘 결혼 했어. 난 안했는데 걘 결혼 했다? 걘 결혼했는데 난 안 한 게 못 견디게 싫어. 난 걔보다 나은 점도 있는데, 따지고 보면 내가 더 나아. 근데 걔 앞에서 내가 못 나고 너무 부족한 거 같아서 그게 미치겠어.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이 이해를 못하겠대.“



- 비현실·비공감 ‘내거해’의 문제점들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SBS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 결혼을 하고 싶으면 결혼을 하지 왜 사기를 치느냐, 상대방 쪽에서 고소 들어온다는데 이제 어쩔 거냐고 아버지(강신일)가 다그치자 공아정(윤은혜)이 울먹이며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런데 이렇게 공감이 안 가는 대사가 또 있을까? 보통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말에는 마음이 찡해져야 옳은데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예닐곱 살짜리 애가 다른 친구들은 다 짝꿍이 있는데 나만 혼자라며 울고불고 하는 꼴이지 뭔가. 차라리 어린 애라면 귀엽기나 하지.

처음엔 배경이 한 이삼십년 전인가? 했다. 그 시절엔 여자들이 이십대 중후반을 넘기면 의당 결혼을 해야 마땅한 분위기였으니까. 그런데 2011년, 요즘의 일인데다가 공아정은 스물여덟 된 처자란다. 그것도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5급 공무원이라나? ‘걔’보다 낫다고 강조하는 대목이 바로 행시 패스 얘기다. 행시까지 붙은 내가 왜 자기 일도 없는 ‘걔‘도 하는 결혼을 못한 거냐고, 원통하다고 투정을 부리는 거다.

하기야 원대한 꿈이 있었던 게 아니라 좋아하는 선배 천재범(류승수)에게 걸맞은 여자가 되기 위해 행시에 도전했다는 공아정이니 뭘 기대하겠느냐만 3년 전 고등학교 동창 유소란(홍수현)에게 천재범을 빼앗긴 게 분해서 저 난리법석이라는 사실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현직 공무원이지만, 그것도 사무관이라는 직책에 있지만 자신의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공아정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문화체육관광부라는 곳은 신의 직장이지 싶다. 휴가를 전화로 통보하듯 내도되고 옷차림이 지나치게 자유분방해도 태클 거는 사람 하나 없으니 말이다. 모처럼 사무실 책상에 붙어 앉아 뭔가 하고 있기에 오늘을 일 좀 하나보다 했더니 아뿔싸, 그러면 그렇지. 집들이 식단 짜는 중이었다.

집들이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어쩌다 실수로 결혼했다는 거짓말을 한 것까지는 그나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자신의 첫사랑을 가로챈 소란이에게 포한이 맺혀서 그랬다니 그 점은 이해해주고 넘어가자. 하지만 3년 내도록 단 한 번도 교류가 없었던 고교 동창생들이 집들이를 하라고 부추긴다고 거기에 말려들어 전전긍긍한다는 게 말이 되나? 게다가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애당초 곁에서 램프의 요정 노릇 해주던 현상희(성준)는 물론 결혼 루머의 주인공 현기준(강지환)까지 가세해 연극을 벌인다는 것도 현실성 없는 일이다. 이게 모두 공아정의 자존심 회복을 위한 깨춤 한판이라니 원.





“유소란 그 기집애가 내 남편이 현기준이라니까 기를 못 피더라. 나 걔 그러는 거 처음 봤다? 현기준이랑 결혼했다는 것만으로도 게임이 안 된다고 생각한 거겠지.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어찌나 통쾌하던지. 그래, 복수. 내 잃어버린 3년에 대한 복수. 분해서 미치겠어. 너무너무 분해서 나 3년 동안 아무 것도 못했어. 연애도 사랑도 결혼도, 난 아무 것도 못했어. 나는 결혼하고 싶은 게 아니야. 결혼한 여자가 되고 싶은 거야. 지금 당장,” 술이 취해 늘어놓는 공아정의 한탄에 마음이 움직인 현상희는 아정을 적극적으로 돕기로 마음먹는다.

어쩌면 공들였던 사랑을 잃은 아정의 처지에 사랑하는 여자가 형의 약혼자였던 자신의 애끓는 처지가 오버랩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현상희가 세운 작전에 따라 현기준도 공아정과의 혼인 상태를 당분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참으로 황당무계한 전개다. 누군가 나에게 주인공 둘이 왜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냐 묻기에 설명해주다가 중간에 그만 두고 말았다. 말을 하다 보니 너무 말이 안 돼서.

그러나 가장 공감이 안 가는 건 역시 난데없는 키스신이다. 벚꽃 아래의 첫 번째 키스도 어안이 벙벙했다. 동생 상희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연인 오윤주(조윤희)를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는 현기준이 왜 갑자기 술 취한 공아정에게 키스를 하느냔 말이다. 집들이 때 공아정의 어머니가 일찍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아연실색, 멍하니 바라보던 기준의 표정 또한 헛웃음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조실부모한 현기준인지라 두 사람 사이에 비로소 공감대가 생겼다는 설정일 테지만 그 분위기가 열정적인 키스로 이어진다는 건 그야말로 오버다. 벌여놓은 사태들이 어떻게 수습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결말이 궁금하지 않은 드라마는 또 처음이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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