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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를 관음증처럼 엿보는 우릴 흔드는 것
기사입력 :[ 2014-04-30 12:56 ]


‘밀회’, 김희애와 유아인만 모르고 있는 사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JTBC 월화드라마 <밀회>의 첫 회에서 퀵서비스 직원 이선재(유아인)는 아트센터에 배달을 왔다가 검은 장막 너머로 어떤 세계를 엿본다. 그 세계는 선재가 꿈꾸지만 차마 꿈꿀 수조차 없던 우아하고 교양 있는 세계다. 피아노가 있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선재 또래의 음대학생이 있고, 그 학생을 지도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 선재는 후에 알게 되는데 바로 전직 피아니스트이자 아트센터의 실장인 오혜원(김희애)이다.

<밀회>에서 선재의 시선은, 곧 카메라의 시선이 되고, TV를 보는 우리들의 시선으로 연장된다. 우리는 선재를 따라 아름다운 여인 혜원이 중심에 있는 세계로 들어선다. 물론 혜원이 머무는 세계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선재와 카메라와 우리의 시선은 각각 달라진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피아노에 놀라운 재능을 지닌 청년 선재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가 선망하던 우아한 세계는 실은 고급예술과 대기업의 자본이 서로를 탐닉하며 ‘밀애’를 나누고 있는 세계다. 하지만 우리가 짐작했던 것보다 단단한 자아를 지닌 청년 선재는 그곳에 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머무는 남루한 방보다도 그곳이 어쩌면 더 남루한 내면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는 걸 알아간다. 그래서 선재는 그 세계의 한가운데 있는 여인 오혜원에게 처음에는 동경을, 이후에는 사랑을, 그녀의 현실을 알아갈수록 연민의 감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밀회>의 주인공 선재와 달리 <밀회>의 카메라는 오혜원을 연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 <밀회>의 탈색되어 더 현실적으로 여겨지는 화면처럼 그녀를 샅샅이 훑어간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초반부 혜원이 깜빡하고 코트 속에 스커트 없이 슬립만 입은 채 출근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값비싼 코트로 자신을 가렸고, 즐겨 입는 화이트셔츠처럼 교양 있어 보이지만, 실은 그녀의 내면은 속옷 차림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 그걸 지적해 줄 때까지 속옷차림으로 그 세계에 서 있다는 걸 혜원은 깨닫지 못한다.



선재와 혜원이 가까워질 때까지 그녀의 인생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동창들에게 혜원은 비록 피아니스트의 길은 접었지만 아트센터 실장으로 자리 잡아 성공한 인생이다. 남편에게 혜원은 음대교수이자 우유부단한 그를 대신해 앞길의 여러 문제들을 청소해줄 사람이다. 그들은 혜원과 가깝지만 진심으로 혜원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걸 알아버리면 그 비참함에 대해 생각하면 오히려 자신들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한편 그녀를 아트센터 실장의 자리에 앉혀준 서필원(김용건) 회장의 서한 그룹은 혜원과 밀착되어 있다. 서필원의 후처인 한성숙(심혜진)이 서한아트재단의 대표이며, 혜원의 동창이자 친구인 서영우(김혜은)가 아트센터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서필원과 한성숙은 서영우처럼 혜원을 하녀 대하듯 깔아뭉개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중한 인재이자 친밀한 가족처럼 대한다. 필원은 혜원에게 네가 남자라면 사위를 삼고 싶다하고, 성숙은 해외에서 돌아올 때 혜원을 위해 값비싼 보석을 선물로 챙겨온다. 심지어 두 사람은 가족에게 하지 않을 법한 은밀한 이야기까지 혜원에게는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건 혜원을 진정 인간으로 여겨서는 아니다. 오히려 구린 냄새 나는 화장실에 앉아 홀로 자신의 속내에 대해 털어놓는 것과 비슷하다. 혜원이란 그들에게 그런 존재에 불과하다. 더구나 혜원은 필원과 그의 후처인 성숙의 구린 일들을 도맡아 처리해주는 입장이다. 혜원은 성숙의 안주머니를 위해 뒷돈을 불리는 일에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다. 필원이 마음에 품고 있는 국밥집 아주머니와 엮어주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혜원의 지적인 판단능력과 우아한 교양은 그렇게 돈과 욕망이 넘실거리는 천박한 세계에 하찮게 이용당한다.



혜원은 하지만 미개한 천박의 밀림 같은 세계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고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카메라는 그런 그녀를 여전히 냉정하게 쫓는다. 하지만 그때 그녀를 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피아노에 대단한 재능을 지닌 천재 청년이자 마음까지 단단한 선재의 사랑이 그 원인이다.

<밀회>에서 혜원은 사랑에는 관심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더구나 혜원의 주변 인물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권력을 휘두르는 도구나 아니면 성공을 위한 담보물 정도로 변질된 지 오래다.

단 한 사람, 혜원의 동창이자 아트센터 대표인 영우만이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그 사랑 역시 혜원이 보기에는 지극히 천박한 것이었다. “돈 주고 사는 사랑이 뭐 좋다고.” 혜원은 친구의 입장에서 영우에게 그렇게 일갈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우는 화를 내는 대신 허무한 삶을 아는 소녀처럼 나직하게 대답한다. “나도 좋진 않아. 그런데 위로는 돼.”



이런 혜원에게 놀랍게도 선재의 사랑은 위로 이상의 것으로 다가온다. 바로 그녀의 삶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여전히 냉정하게 혜원을 관찰하지만 이제 선재의 시선은 혜원을 뒤흔든다. 선재에게 흔들리던 혜원은 친구와의 식사자리에서 어느 날 울먹이며 말한다. “한창 사랑할 나이에. 머리만 더럽게 굴렸다. 어떻게든 벗어나야지. 영우한테 묻어서 유학가야지.” 그리고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덧붙인다. “근데, 그 오늘 참…… 뭔지 모르겠다.”

그 후, 혜원은 선재 앞에서 처음으로 본인의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털어놓는다.

“우아한 노비?”

혜원의 씁쓸한 독백은 어느새 <밀회>의 세계를 관음증처럼 들여다보는 우리를 흔든다. 그건 바로 늦은 밤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 거울 앞에 선 퀭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한때 선재였던 적이 다들 있었다. 열정 넘치는 재능과, 자신이 믿는 사랑에 대한 무모함과, 그 모두가 그저 순수하게 빛났던 그런 시절이.

<밀회>의 사랑이 애틋하기보다 금방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운 것은 찬란했던 시절을 기억할 순 있지만 돌아갈 순 없다는 걸 우린 모두 알기 때문이다. 다만 카메라의 시선에 포착된 두 주인공 선재와 혜원만이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드라마 <밀회>의 카메라는 여전히 냉정하게 비극의 지하실로 한 걸음씩 내려가는 혜원의 뒷모습을 쫓아갈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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