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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은 어떻게 허세 선입견을 날려버렸나
기사입력 :[ 2014-05-13 12:58 ]


‘밀회’, 원래 잘하던 유아인의 재발견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JTBC 월화드라마 <밀회>에서 유아인이 보여주는 연주는 여러 면에서 놀랍다. 물론 과거에도 유아인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남자의 불안을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연주할 줄 아는 배우였다. 물론 이 불안이란 감정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불안 안에는 떨림이나 설렘 같은 이제 막 꽃피는 아름다운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다만 주먹이 커지고, 점점 수염이 굵어지고, 욕설이 일상어인 그 시기의 남자애들에게 불안은 귀찮은 감정일 따름이다. 그래서 그 남자애들은 불안에서 벗어나려 투덜거리거나 여기저기로 도망 다닌다. 똥주에게 늘 쫓기던 불량하지만 알고 보면 방황하는 귀염둥이였던 “얌마, 도완득”이 그렇고, 풀어헤친 머리에 늦은 밤 담벼락을 넘어 성균관에 스리슬쩍 들어오던 걸오 사형 역시 비슷한 성격이다.

두 인물의 캐릭터에서 볼 수 있듯 유아인은 겉으로는 강단 있어 보이나 속은 여리고 불안한 남자애들을 연기하는 데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 더해 그 인물들이 이 세계의 중심에 속하지 못하고 주변을 떠도는 인물일 때 그의 연기는 더욱 빛난다. 유아인의 표정에서는 반항적인 아웃사이더의 얼굴과 처량하고 외로운 소년의 얼굴이 서로 공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SBS 드라마 <패션왕>의 강영걸이나 SBS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숙종 이순은 유아인에게 아쉬운 역할일 수도 있겠다. 두 인물 모두 유아인과 어울리는 이면적인 성격을 지닌 캐릭터들인 건 분명하다. 강영걸은 동대문 패션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강단 있고 악바리 같은 인물이다. <장옥정>의 이순 역시 기존 사극의 숙종과 달리 사랑에 대한 고뇌로 괴로워하는 절대군주에 더 초점을 맞춘 인물이다.



하지만 과연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인물들의 그런 성격이 제대로 구현되었는가는 의문이다. 안타깝게도 강영걸이나 이순은 유아인이 아닌 얼굴 잘생긴 평범한 배우가 연기해도 그럭저럭 괜찮을 법하게 혹은 그럭저럭 빤해 보일 법하게 흘러갔다. 유아인은 그 인물들에게 어떻게든 생생함을 불어넣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이긴 했다. 하지만 평면적으로 만들어진 이 인물들에 그의 감정 연기가 겉도는 상황이 종종 연출되는 일도 적잖았다. 그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종이인형 같은 그 인물들의 감정이 살아났으나, 또 어떤 경우에는 인물보다 배우의 감정이 더 넘쳐 보였다. 거기에 더해 유아인이 트위터에 올리는 글들이 인터넷 상에 떠돌면서 그에게는 허세 넘치는 배우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JTBC의 <밀회>에서 유아인은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를 연기하면서 그에 대한 이런 선입견들을 날려 버렸다. <밀회>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이제 배우 유아인이 연기하는 선재가 아닌 다른 선재는 상상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그건 비단 배우가 대단한 노력으로 마스터했을 피아노 연주장면의 생생한 표정연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그 나이 또래의 젊은 남자배우들이 사랑의 감정을 다소 느끼하게 포장해서 연기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연기한다. 사랑에 대한 다 아는 것처럼 허세 있게 구는 젊은 남자가 아닌 사랑을 잘 모르지만 자기감정을 어쩔 줄 모르는 남자의 진심을 보여준다. 즉, 사랑 때문에 불안해하는 남자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는 거다. 선재의 사랑이 아름다웠던 건 그가 멋있어서가 아니라 진실해 보여서다. 그래서 <밀회>의 14회에서 길거리에 주저앉아 맥을 놓고 오열하는 선재의 모습은 너무나 애틋하다. 사랑하는 여자의 위기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무 살 남자애의 눈물이 너무나 쉽게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실은 <밀회>에서 가장 작위적인 인물이 선재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클래식을 둘러싼 이익집단의 속물근성을 집요할 정도로 파고든다. 그런 세계에 선재라는 인물은 모든 긍정적인 아름다움을 다 갖춘 존재로 그려진다.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에다, 불우한 환경을 비관하지 않으며,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진심어린 우정으로 다가서며, 나름 효자에다가, 사랑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솔직하고 맹목적이다. 천사도 이런 천사가 없다.



하지만 유아인은 이 천사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천사를 땅 위에 발 딛고 서 있는 평범한 스무 살로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일상생활에서는 다소 어리바리해지는 말투, 낯선 사람들 옆에서 긴장하는 표정들,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격의 없는 모습 등을 보여줄 때 유아인의 연기는 꾸밈없이 담백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선재는 작위적인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아는 누군가처럼 다가온다. 안국동 아트선재센터를 지나가다, 아 피아노를 잘 치는 선재라는 애가 있었지, 라고 떠올릴 수 있을 법한 그런 친근한 순간이 이 드라마엔 존재한다.

<밀회>에서 이선재는 엄마가 일하러 문을 잠그고 나가면 혼자 골방에서 피아노하고만 놀던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자신의 재능으로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한다. 더불어 <밀회>는 선재만이 아니라 선재를 연기하는 유아인이 얼마나 매력적인 배우인지 확인시켜주는 드라마로 기억될 가능성이 꽤 크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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