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크로스’, 누가 가장 흉악한 절대 악인일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수목드라마 <골든크로스>는 현대사회의 악인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는 드라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드라마에서 악인은 매력적인 탐구대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SBS의 <추적자>의 대통령 후보인 강동윤(김상중)은 악인이지만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탄탄하게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 드라마다. MBC의 <하얀 거탑>이나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배우 김명민이 연기한 장준혁과 강마에 같은 인물들은 악인과 선인의 경계에 선 채 냉철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기묘한 존재들이었다.

KBS <골든크로스>에서 0.001%의 인사들이 모인 클럽 골든크로스의 상류층 악역들이 이들처럼 매력적인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강마에의 대사처럼 이 사회의 ‘똥덩어리’에 가깝다. 물론 그들이 이 사회의 거물급 인사이기에 황금똥으로 묘사되나 그렇다고 똥이 똥이 아닌 건 아니다.

그럼에도 <골든크로스>에서 대표적인 황금똥인 공안검사 출신의 신명의 파트너 변호사 박희서(김규철), 살인자이자 경제기획부 금융정책국장인 서동하(정보석), 세계적인 헤드펀드 업체의 한국지사 대표 마이클 장(엄기준)을 눈여겨 볼 필요는 있다. 그들은 각각 다른 이유로 악인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누가 절대 악인의 자리를 차지하는가를 관찰하는 것 역시 <골든크로스>를 보는 묘미다.

드라마 초반부 절대 악인으로 보였던 인물은 신명의 파트너 변호사인 희서다. 그는 강도윤(김강우)의 아버지 강주완(이대연)을 친딸 살해범으로 몰아넣는다. 희서가 악인이 된 건 무지 때문이다. 그건 희서가 People이란 단어를 복수가 아닌 단수로 사용해서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란 단어를 복수 아닌 단수로 사용하는 데 무지의 이유가 있긴 하다. 0.001%인 골든크로스에게 자꾸만 딴죽을 거는 평범한 사람들인 도윤이나 도윤의 아버지 주완은 희서에게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윙윙거리는 파리떼에 가깝다. 하지만 날아오는 파리들을 우리는 파리떼라 부르지 않고 대개 파리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희서에게 피플은 복수가 아닌 단수인 것이다. 즉, 그는 법에 대해서는 박식하나 사람에 대해서는 무지한 인간이다. 그의 이런 무지는 희서를 냉정하면서도 당당한 악인으로 성장하게끔 한다.

희서의 무지는 ‘피플’만이 아니라 ‘정의’라는 단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희서의 노트북에는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는 ‘정의’에 대해 <골든크로스> 초반에 설명한다.



“사실 진정한 갑은 우리 (법무법인)신명이지요. 우리 신명은 정권이 바뀌어도 영원하니까요. 그래도 신명이 바로 정의지요.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니까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정의로움에 무지했던 희서는 드라마 중반부에 이르면서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가 파리처럼 여겼던 인물들의 역습 때문이다.

희서가 무너지면서 절대 악인으로 등장하는 두 번째 인물이 바로 동하(정보석)다. 물론 드라마 초반에 동하는 스폰 관계였던 도윤의 여동생을 골프채로 내려쳐 살해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분노조절이 안 되는 도윤이 무의식중에 벌인 살인사건으로 묘사한다. 더구나 동하는 딸에게는 다정한 아버지요, 집안에서는 0.00001%인 장인과 아내에게 콤플렉스를 지닌 나약한 인간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도윤의 아버지에게 덤터기 씌운 사건이 이상하게 꼬여가면서 동하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동하는 병실에 누워 있던 도윤의 아버지를 직접 살해하고, 이어 어떻게든 그를 이기려는 도윤을 제거하려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심지어 본심을 속이고 도윤에게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그것도 즙이나 액처럼 억지로 짜낸 듯한 눈물이 아닌 보석처럼 영롱한 눈물을 뚝뚝.



동하가 이처럼 악인이 된 건 가면 때문이다. 그는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가면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경제국장일 때 냉정한 관료로, 딸 앞에서 다정한 아버지로, 집안에서 유순한 사위이자 남편으로. 하지만 그의 가면 아래 있는 진짜 얼굴은 부글부글 끓으며 일그러진 지 오래다. 더구나 그 가면 아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동하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윤과 싸운다. 더구나 동하의 딸이자 검사인 서이레(이시영)는 모든 진실을 알자 아버지인 동하를 살인범으로 구속하려 한다. 숨기려던 얼굴을 들킨 동하는 하지만 딸에게 ‘미안하다’라고 절규하며 용서를 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딸 앞에서 아버지의 가면 대신 여전히 선인의 가면을 쓰고 그의 무죄를 호소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악한 얼굴은 더욱 도드라질 따름이다.

<골든크로스> 후반부에 이르면서 동하 역시 도윤과 이레에 의해 점점 무너져간다. 정의감으로 뭉친 젊은이와 부녀간의 정보다 검사로서의 의무에 충실한 딸의 손에 말이다. 그래서 동하는 마이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드라마 초중반 마이클은 장난감이 아닌 돈다발을 갖고 노는 귀여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희서나 동하처럼 어딘지 모르게 구질구질하지 않고 쿨하다. 그는 동하를 골려먹기 일쑤였고, 심지어 도윤을 변호사로 고용해 힘을 실어주는 유쾌한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큰돈을 거머쥘 기회인 은행비리 사건의 실체를 도윤이 밝히려 들자 그는 쿨하게 모든 걸 제거한다. 도윤과 함께 일을 도모한 국회의원이 탄 엘리베이터를 폭파하고, 도윤의 정의로운 심장을 향해 총을 쏜다.

그런데 사실 마이클은 절대 악인이라기보다 어쩌면 매끈하게 잘생긴 현대 자본주의 사회 그 자체의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귀엽고 쿨하고 화려하고 유쾌하고, 당신이 힘들 때면 때론 손을 내밀어주지만, 당신이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순간 그 손가락이 싹둑 잘려나가는 그런 사회 말이다. 잘생겼다…… 잘생겼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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