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깐이라도 레이더를 놓으면 큰 탈이 나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tvN <리얼 키즈스토리 레인보우(이하 레인보우)>의 선생님, MBC <세상을 바꾸는 퀴즈(이하 세바퀴)>의 패널, MBC <우리들의 일밤>‘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매니저 등 화제의 프로그램마다 비슷한 듯, 또 다른 색깔로 제 몫을 소화해 내고 있는 방송인 지상렬을 만났다. (인터뷰 정석희 TV칼럼니스트)

정석희: 지상렬 씨를 눈여겨보게 된 계기는 꽤 오래 전에 방송 된 ‘몰래카메라’ 때였어요. 라디오 생방송 중 벌어진 돌발 사태였는데, 백번 짜증을 내고도 남을 상황의 연속임에도 동료인 노사연 씨를 끝까지 배려하며 평정을 유지하는 모습이 신사답더군요. 생방송을 사수하려는 프로 의식도 대단했고요. 몇몇 맞선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죠. 흔히들 즐겨하는 여자 출연자의 외모를 희화하지 않는 점이 보기 좋았어요. 호통개그가 유행할 때조차 차라리 자신을 깎아내리지 남을 비하하지는 않던데, 방송에 임하는 소신이나 철학이 궁금합니다.

지상렬: 맞습니다. 남을 깎아 내리는 건 되도록 피하는 쪽이에요. 제가 방송에서 하는 역할은 주로 이런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그램에서 신인이 한마디 던졌는데 별 반응이 없으면 얼마나 어색하고 무안하겠어요? 그걸 꼬투리 잡아 놀리기 보다는 ‘그러다 네 사진 앞에 향 꽂겠다’는 식으로 말해서 시선을 제 쪽으로 끌고 와 그 친구가 빠져 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이를테면 버스 정류장 역할이죠. 여자 출연자를 배려하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오락 프로그램에 손님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큰 용기였을 일반 분이 방송을 마치고 기분 나빠져 돌아가면 서로 손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기분 좋게 만들어 드리려 노력합니다. 사실 말도 길게 하는 것보다 압축해서 하는 편을 좋아해요.

정석희: 아, 그렇죠? ‘안습’ (안구에 습기 찬다) 같은 말도 지상렬 씨가 유행시킨 말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언어유희에 재능이 있는 것을 보니 의외로 책을 많이 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상렬: 솔직히 어렵고 긴 책은 잘 못 보고요. 간단히, 쉽게 요약된 책을 봅니다. 나름대로 책꽂이에 꽂아 놓듯이 기억 속에 넣어 두었다가 툭툭 던지는 거죠. 너무 어려운 단어는 좋아하지 않는데요, ‘넌 내 인생의 단백질이야’ 같은 표현을 처음 했을 때는 그 표현을 받아 칠 수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지만 요즘은 다들 받아 줘요. 예전에는 우스개로 제 말은 번역이 필요하다는 동료들도 있었어요.(하하)

정석희: <레인보우>를 보며 처음엔 노총각이 어떻게 이걸 맡을 생각했나 하고 걱정을 했어요. 나중에 문득 개를 많이 키우신다는 기사를 본 게 기억나더라고요. 아하, 그래서 아이들을 잘 챙기겠구나, 했죠.

지상렬: 열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요. 걔네들 밥 주는 것부터 목욕시키는 것까지 다 죄다 해왔으니 누군가를 돌보는 거 하난 자신 있습니다. 내 아이들은 없지만 조카들을 예뻐하다 보니 아이들의 심리를 잘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정석희: 지난 번 SBS <강심장>에서 왕영은 씨도 MBC <뽀뽀뽀>를 진행할 때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하더군요. 얼마나 힘든지 아이들에게 정이 잘 안 가더래요. 솔직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상렬 씨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지 관찰할 겸 <레인보우> 촬영 현장에 가 봤는데 감탄스러울 정도로 잘 해내시더라고요. 아이들과 함께 그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닐 텐데요?

지상렬: 저도 사람인지라 일이라는 생각이 앞서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70-80 퍼센트 이상은 되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한 번 촬영에 들어가면 여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열 시간 이상 촬영하게 되는데요, 열 시간 동안 계속 여러 대의 카메라가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감정이 화면에 드러날 수밖에 없거든요. 생긴 건 도둑놈 같이 생겼지만 저는 정말 아이들을 예뻐합니다. 찍고 나면 실제로 마음이 정화 되는 기분이기도 하고요. (하하)

정석희: 살짝 거짓말을 한 아이도 슬슬 달래 진실을 말하게 만들던데요. 윽박지르지 않고도 아이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더군요.

지상렬: 뭐 기술이랄 건 없고요. 그 때만큼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 진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임합니다. 사실 아이들은 이길수 PD님 이하 스텝들 얘기보다는 제 얘기를 훨씬 잘 들어요. 자신들의 편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일까요? 아이들은 매일 화내는 선생이 아니어야 말을 듣는데 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너무 산만해질 때나 ‘레인보우! (주목!)’하고 외치는 정도가 다에요. 역시 아이들과 교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정석희: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인가요?

지상렬: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라면서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본 기억이 없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화목했어요. 부모님의 남다른 교육 철학이 있다면 ‘남한테 나쁜 짓만 하지 말아라’ 하며 삼형제를 방목 하셨다는 거예요. (하하)

정석희: 웃는 모습이 의외로 예쁜데요, 어린 시절 지상렬의 모습은 <레인보우 유치원>의 아이들 중 어느 쪽이었어요? 저는 현서 쪽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브레인이라는 얘기는 아니고요. (웃음) 어쨌거나 그런 걸 생각해보면 재미있잖아요.

지상렬: (곰곰이 생각하더니) 좀 활발한 듯, 리더십도 있고… 그러나 가브리엘 같은 활발함은 또 아니었던 것 같아요. 대니얼은 착하고 도윤이는 점잖은데 저는 그 곳에는 없는 색깔이에요. 저보다 약한 친구들은 좀 보호해 주려고 했고 특히 약한 여자 친구는 꼭 보호해 주려는 어린이였습니다. (하하)

정석희: <레인보우>에 새로 합류할 어린이들을 뽑기 위해 오디션을 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상렬: 새 친구가 들어와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있어 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벌써부터 정들었던 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고민 입니다. 아이들끼리도 그렇고 저와 아이들, 또 여러 스텝들, 이젠 남같지가 않죠.

정석희: <나가수>에도 참여하셨잖아요, <레인보우>와 극과 극 아닌가요?

지상렬: 그래서 더 좋아요. 매번 비슷한 포맷이면 사람이 무뎌질 수 있는데 <나가수>와 <레인보우>는 비슷하면서도 극과 극인 프로그램이라 흥미롭죠. 비슷한 점은 잠깐이라도 레이더를 놓고 있다가는 큰 탈이 날 게 분명하다는 것. 아이들도 예민하지만 매번 최선을 다해 경쟁을 해야 하는 가수들도 예민하기는 매 한가지에요. 방송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도 세심하게 신경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사실 그 무게가 두 프로그램 다 만만치 않습니다.


인터뷰 정석희 TV칼럼니스트, 정리 최정은 기자


Epilogue
그리고... 따뜻한 남자

일산 MBC에서 만나 인터뷰를 마친 시각이 오후 여덟시 쯤. 뜬금없이 이동 경로를 묻더니 지금이 가장 차가 막히는 시간이라며 어느 길을 선택해야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강남 쪽으로 가시려면 차라리 의정부 쪽으로 돌아 나가시는 것이 더 빠를 수 있어요. 아니, 요새는 기름 값이 비싸 차가 막히지 않을 수도 있으니 강변 북로로 가시는 것이 더 낫겠네요.”

고맙다며 일어서는데 한 마디 덧붙인다.

“올림픽대로는 늘 막히니 피하시는 게 좋아요.”

선량한 기운의 남자답고 따뜻한 이 남자, 아직 싱글 이랍니다!


[사진=정명원,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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