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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정도전의 최후 과연 자비를 구걸할까
기사입력 :[ 2014-06-21 13:03 ]


KBS 사극 부활 이끈 ‘정도전’의 치밀한 전략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본디 KBS 사극은 배우 유동근이 태종 이방원으로 출연했던 90년대 <용의 눈물>로 화룡점정을 찍은 지 오래라 하겠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넘어가는 역동의 시기를 힘 있게 붓질하면서도 그 인물들의 속내를 구구절절 아름답게 표현해낸 <용의 눈물>은 정치사와 인간사가 어우러진 가히 사극의 절경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하사극의 인기는 시들하였고 이 맛 저 맛도 아닌 ‘퓨-우-전’사극의 난립 속에 SBS의 사극 <대풍수>는 얼빠진 이성계가 등장하고 실소가 터져 나오는 엉성한 조선건국기를 보여주는 패착에 이른다. 무릇 한 나라의 기틀이 바뀌는 시기를 다루는 붓은 그리 가벼워서는 아니 되는 일이다.

KBS의 대하사극 <정도전>을 기대하면서도 우려하였던 까닭은 그런 연유에서 온 것이 적지 아니하였다.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고려 우왕, 최영, 하륜, 이인임, 정몽주, 정도전처럼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서로 물고물리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사극을 쓰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붓을 들고 싶은 절륜의 시기라는 것은 틀림없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지 오래이며 또한 아직도 <용의 눈물>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KBS의 야심작 <정도전>은 사극의 열혈 시청자들은 물론 사극을 고루하게 생각하던 젊은이들에게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정도전>은 우선 ‘퓨-우-전’이 아닌 정제된 사극의 맛을 오랜만에 안방극장에서 보여주었다. 더불어 기존의 사극들이 그 특유의 말투만큼 다소 진행이 더딘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면 <정도전>은 처음부터 말고삐를 움켜쥐고 박차를 가하였다.



KBS 대하사극하면 대중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르는 웅장한 전투 장면들 또한 과감하게 축소하였다. 거기에는 <정도전> 측의 치밀한 전략이 잊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 것이, 십여 년 전만하여도 사극의 전투 장면은 그 웅장함이 지대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극장에서 짝짝이색 선글라스를 쓰면 삼차원 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사극의 전투장면은 이제 무덤덤할 뿐이며, 오히려 사극하면 떠오르는 고루한 장면이 되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정도전>은 말을 타고,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전쟁이 아닌 그보다 더 무서운 정쟁, 즉 사람들의 세치 혀와 그 세치 혀의 힘을 통해 한 국가가 무너지고, 한 나라가 세워지는 역성과 대의의 광경을 속도감 있게 묘사하였다.

<정도전>은 그리하여 매번 등장인물들의 세계관이 부딪히고, 누군가는 그로 인하여 죽음을, 또 누군가는 그로 인하여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이야기가 자락자락 바지락 씻는 소리마냥 요란하게 펼쳐졌다. 여기에 옳고 그른 인물들이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의 내면에 구렁이와 독사는 물론이고 토끼 같이 여린 마음, 염소처럼 고집스러운 마음, 귀뚜라미처럼 구슬픈 마음까지 집어넣으니, 그 인간의 풍경을 감상하는 일 또한 흥미롭다 하겠다.



그리하여 때론 악역 이인임(박영규)이 한 시대를 풍미한 대인으로 느껴진다. 그리하여 우왕(박진우)이 왕이 아니라 한낱 저잣거리의 미친놈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시대의 발길질에 아랫배를 차여 그저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불쌍한 한 마리 토종견으로 보이는 것이다. 절개의 장군인 최영(서인석)이 가끔은 답답한 할아범처럼 여겨지는 순간에 이르기도 한다.

이것은 <정도전>의 큰 축을 이루는 이성계(유동근)와 정몽주(임호)에 이르러서도 크게 다르지 아니하다. 절개의 상징이었던 정몽주는 <정도전>을 통해 품격 있고 학식 높은 선비가 결국 세계를 보는 시야가 좁을 때에 어떻게 아집으로 오그라드는가를 보여준다. 이성계 또한 한 나라의 시조인 지엄한 인물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모순적인 인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는 다부지고 기개 있는 명장이면서, 자잘한 일들에 눈물을 쏟을 만큼 감정이 여린 인물이다. 또한 스스로 발 벗고 나서 왕권을 쥐려 나서는 대신, 속내를 보여주지 않고 돌부처처럼 앉아 다른 이들이 그에게 옥새를 올릴 때까지 입을 쑥 내민다. 사내면서도 가끔은 계집 같고, 어른이면서도 어린아이이고, 욕심쟁이이면서도 현자의 풍모를 지닌다.



그렇다면 <정도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정도전(조재현)은 어떠한가? <정도전>이 이성계나 이방원이 아니라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까닭은 이 사극의 정체성이 정도전이란 인물을 통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과거 사극에서 이야기의 흥미로운 진행에 불을 지피는 역할만을 맡은 정도전과 달리 <정도전>에 이르러 정도전은 드디어 색깔 있는 목소리를 얻는다. 고려의 유학자 정도전은 이 사극에서 끊임없이 대의를 말한다. 물론 그 대의는 왕에게 복종하기 위한 대의가 아니며, 그의 역성은 왕좌를 빼앗기 위한 역성이 아니다.

“산다고 다 사는 것입니까? 사람답게 살아야지. 그것이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대업이었습니다. 이 땅에 핍박받는 백성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다면, 우리의 대업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정도전은 이 사극에서 고려와 조선이 아닌 지극히 현대적인 인물로 다시금 태어난다. 그는 마음으로 우는 대신 머리로 사유하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또한 <정도전>은 정도전 자신의 입을 빌어 <정도전>이 사극 아닌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져오는 이야기의 눈속임을 능청스럽게 말한다.

“이건 정치니까요.”

과거 역사에서 태종 이방원에게 자비를 구걸하던 정도전의 최후가 어쩌면 <정도전>에서는 같은 순간 다른 방식의 최후로 묘사될 거란 기대는 거기에서 온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면, 승자의 기록 속에 감춰진 진실을 더듬는 일은 지금 이 시대의 몫일 테니 말이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정도전>은 가장 전통적인 사극인 동시에 그 어떤 ‘퓨-우-전’ 사극보다 더 현대적인 사극의 길을 걸어왔으니 말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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