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일일극, ‘뻐꾸기 둥지’ 위로 간 ‘고양이’ 신세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평일 저녁 7시50분부터 9시 전까지 KBS2와 KBS1을 돌려보는 시청자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다가 KBS2에서는 막장일일극 특유의 향만 풍길 뿐 감칠맛은 나지 않는 <뻐꾸기 둥지>를 방영하기로 결정했을까? KBS1에서는 왜 뜬금없이 고양이의 실종에 분개하는 여주인공이 난리법석을 부리지만 나른한 고양이 하품만 나오는 <고양이는 있다>를 방영하기로 결정했던 걸까?

<뻐꾸기 둥지>의 경우 어쩌면 이랬을 수도 있겠다. 타 방송국의 자극적인 일일극을 모방하고 싶던 KBS는 <인어 아가씨>와 <아내의 유혹> 일일극 두 편으로 복수의 여신이 된 장서희만 모셔오면 모든 일이 해결되리라 생각했던 건 아닐까? 더구나 <뻐꾸기 둥지>는 과거 다른 막장 일일극의 모든 클리셰를 모조리 동원해 판을 깔아주었다.

여기 의대생이었던 오빠의 사고사와 부잣집 자제였던 연인의 배신으로 상처받은 과거가 있는 레스토랑 여직원 이화영(이채영)이 있다. 그녀는 우연히 사업가 곽여사(곽희자)에게 자신의 며느리가 불임이니 아들의 대리모를 해줄 생각이 없느냐는 권유를 받는다. 고민 끝에 대리모가 된 화영은 하지만 정작 아들을 낳자 자식에 대한 그리움에 가슴이 매어진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알고 보니 화영이 낳은 아이의 부모가 될 부부는 자신과 악연을 맺었던 인물들이었다. 아이의 엄마가 될 백연희(장서희)는 과거 화영 오빠의 연인이었다. 또한 아이 아빠인 정병국(황동주)은 과거 자신을 버린 부잣집 아들이었다. 화영은 미국으로 떠난 뒤 복수를 결심, 그레이스 리란 이름으로 돌아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다. 물론 볼에 점을 찍진 않았지만, 모두들 그레이스 리가 화영이란 사실은 알지만, 복수에 불타는 그녀는 과거 착하고 올곧기만 했던 화영이 아니었다.

<뻐꾸기 둥지>는 현재 화영의 1차 복수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 <뻐꾸기 둥지>는 꽤 진행이 빠른 드라마라서 아마 일주일 후면 장서희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시댁에서 쫓겨날지 모른다. 그 후, 일주일 뒤에는 다시 복수의 칼을 갈며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비록 진행은 빠르더라도 희한하게도 <뻐꾸기 둥지>는 자극적인 일일극을 볼 때 느껴지는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그 기분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속도감 있는 이야기가 지루하게 다가온다. 이건 비단 여주인공 장서희가 복수의 칼을 꺼내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화영을 그려내는 여배우 이채영의 무뚝뚝한 연기 역시 걸림돌이지만 꼭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다(아쉽게도 아직까지 그녀는 데뷔시절 <천추태후>에서 보여준 우직한 호위무사 역할 이상의 매력을 못 보여주고 있다).



<뻐꾸기 둥지>의 가장 큰 단점은 타 방송사를 흉내는 내도 KBS 막장일일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뻐둥뻐둥거리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 SBS <아내의 유혹>의 매력은 빠른 진행만은 아니라 그 어설픈 유치함이 은근히 ‘병맛’스럽고 통쾌한 유머감각을 자극하는 데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MBC의 임성한표 일일극은 시청자들을 우롱하면서도 텔레비전에 앞에 잡아두는 기괴한 설정은 따라올 자가 없다. 하지만 공영방송 KBS는 자존심 때문에 이런 파격을 보여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대신 KBS일일극은 자극적인 설정을 위해 진상 부리는 인물들을 대대적으로 포진시킨다. <뻐꾸기 둥지>의 경우 화영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화영이 일하는 레스토랑의 직원들까지 이 진상의 대열에 참가한다. 그런데 이 진상 떠는 캐릭터들의 향연이 재미있기는커녕 지루하고 짜증만 치미니 문제가 있다. 슬프게도 <뻐꾸기 둥지>는 <오로라공주>급의 설정을 들고 나왔지만 감각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걸려 있다. 그러니 아무리 정서희가 눈을 부릅뜨고, 오뉴월 서리 씹듯 대사를 아작아작 씹어도 얼마나 흥미로울지 고개가 갸웃거려질 따름이다.

한편 KBS1 일일극이 <고양이는 있다>를 선택한 까닭은 전국의 모든 어머님들을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재미없어도 어쨌든 20~30% 사이의 시청률은 나온다는 KBS1 일일극이니 말이다. 더구나 <고양이>의 시도 자체는 참신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빤하디 빤한 KBS1 일일극의 패턴이 아니라 애완동물 고양이를 등장시키고 그 고양이 때문에 벌어지는 인간사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엮어보려는 계획이었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이 드라마는 사납고 요란한 일일극이 아니라 ‘착한’ 일일극을 지향한다고 한다. 하지만 담백한 맛과 맹탕은 다르다. <고양이>는 담백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테지만 사실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재료들은 많으나 맛은 맹탕이다.



<고양이>가 담백함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더 정교하고 세밀한 장치가 이 드라마에 필요하지 않았을까? 낯선 설정이지만 시청자들이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양이>가 보여준 모습은 재미없는 청소년드라마나 일일시트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KBS1 일일극을 배신하지 않았던 어머님들이 채널을 돌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 듯하다.

아마 KBS에서 일일극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을지 모른다. 무엇을 보여주든 기본적인 시청자들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두 작품은 시청률은 나쁘지 않아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고양이처럼 어딘지 맥락 없고 지루하다.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잔잔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던 <일말의 순정> 같은 KBS 일일시트콤이 오히려 더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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