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킹’, MBC 호텔 드라마 명성에 먹칠을 하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주말 특별기획 <호텔킹>의 시작은 화려했다.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미스터리와 멜로, 거기에 코믹한 요소가 섞인 유행하는 복합장르였다. 거기에 누가 씨엘 호텔을 차지하느냐를 두고 뺏고 뺏기는 기업물의 요소까지 안고 시작했다. 잘만 만들면 현대판 <선덕여왕>처럼 선덕거리며 지켜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싸움판이 될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여주인공인 호텔 상속녀 아모네 역시 캐릭터만 잘 구축되면 매력적인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아버지의 호텔을 되찾으려 돌아온 상속녀가 호텔을 좌지우지하는 탐욕스런 꼰대들과 싸우는 드라마니.

하지만 무궁화 다섯 개짜리 호텔처럼 시작한 <호텔킹>은 현재 지지부진하고 지루하게 결말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중이다. 백미녀로 분한 김해숙이 마지막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만, 차재완(이동욱)이 흘리는 눈물이 너무 처연해서 그 순간에 연민의 감정을 자극하지만 그뿐이다.

물론 경쟁작 KBS 대하사극 <정도전>의 종영 이후 반등효과 등으로 시청률이 오르긴 했다. 하지만 호텔 씨엘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열정적인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이제 많지 않을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더구나 MBC는 두 편의 성공적인 호텔 배경 드라마를 선보인 곳이었다. 90년대 후반 방영된 MBC 미니시리즈 <호텔>은 한석규의 마지막 MBC드라마 주연 작품이자 당시 톱스타였던 이승연이 상대역으로 나왔던 드라마였다. 한석규의 <호텔>은 백화점을 배경으로 한 <사랑을 그대 품안에>처럼 화려한 공간을 배경으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트렌디드라마의 전형처럼 생각되기 좋은 구도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호텔>은 호텔을 둘러싼 경영권 암투를 진지하게 그리면서 꽤 그럴듯한 기업물 드라마로 흘러갔다. 여기에 멜로의 주인공으로 등장해도 언제나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한석규라는 배우의 존재감도 한몫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히려 호텔을 배경으로 한 트렌디적인 요소만 놓고 보자면 2천 년대 초반 MBC에서 방영된 <호텔리어>가 깔끔하게 잘 빠진 작품이었다. <호텔리어>는 <구가의 서>, <제빵왕 김탁구> 등을 통해 통속적이지만 깔끔한 재미가 있는 드라마들을 쓴 강은경 작가의 작품이었다. 또 지금은 한류의 신화처럼 되어버린 욘사마 배용준 주연에 송윤아, 김승우, 송혜교 등의 당시 톱스타가 함께한 작품이었다. 드라마 자체도 로맨틱코미디를 바탕으로 깔고 거기에 기업물의 성격을 적절하게 녹여내면서 마지막까지 발랄함과 긴장감 모두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의 <호텔킹>에는 발랄함과 긴장감을 모두 놓친 지 이미 오래다. 대신 <호텔킹>은 아무리 흥미진진한 요소를 펼쳐놓아도 적절하게 섞지 못하면 지루한 작품으로 그려진다는 교훈을 주는 드라마로 기억에 남을 것 같긴 하다.

더구나 <호텔킹> 특유의 자극적인 장면들은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 외에 아무런 의도가 없어 보인다. 이 드라마는 특히 차재완의 생부 이중구(이덕화)와 백미녀(김해숙)를 절대적인 악인으로 묘사한다. 그 바람에 드라마는 아비가 아들을 구렁텅이에 몰아놓고, 어미가 아들의 숨을 죄는 불쾌한 구도로 흘러간다. 드라마가 주는 불쾌함은 재완이 친아들임을 알고 회개한 미녀가 재완의 친부 중구에게 납치되는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감금된 미녀는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두려움에 벌벌 떤다. 그녀 앞에서 아들 재완은 얻어맞고 피 흘리고 쓰러진다.

이 장면에서 김해숙과 이동욱, 심지어 드라마 내내 붕 떠 있는 것 같던 이덕화의 연기까지 모두 삼박자가 맞지만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감동은 없다. 쓸데없이 양념만 강하고 맛이라곤 없는 삼류 예식장 피로연장의 뷔페처럼 피로감만 줄 따름이다. 미녀가 뜬금없이 기억상실에 빠지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볼 때는 집중되지만 보고나면 위장 아닌 마음이 더부룩해지는 그런 기분이 드는 장면들이 <호텔킹>에는 이어진다. 물론 그나마 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한 군더더기 장면들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여주인공 모네 역시 처음에만 그럴 듯 했을 뿐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민폐형 여주인공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지배인 재완을 비롯해 씨엘의 모든 호텔리어들이 모네의 뒷수습을 위해 존재하는 인물들처럼 다가온다. 여주인공이 사랑 받지 못하는 드라마는 대개 악녀인 조연들에게 관심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호텔킹>에서 모네의 연적인 송채경(왕지혜)은 존재 자체가 지루한 인물이었고, 미녀(김해숙)는 비밀스럽고 카리스마 넘치는 마녀형의 인물을 작가가 공들이지 않을 경우 얼마나 궁상맞아 보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전형적인 예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남은 것은 남녀주인공 재완과 모네의 애절한 사랑이었지만 이 역시 두 배우가 과거 <마이걸>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운 어울림에 기댄 바가 더 크다. 더구나 <호텔킹>의 의도는 절절한 멜로가 주가 되는 그런 드라마는 아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굳이 배경을 호텔로 잡을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호텔이 배경이라면 화려한 스케일에 무언가 남다른 비밀스럽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길 사람들은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종영이 얼마남지 않은 <호텔킹>은 더욱 입맛이 쓰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재미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제목이 호텔 ‘킹’인데. 시작의 기대감은 무궁화 다섯 개였건만 그 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무궁화 한 개짜리 호텔이라니.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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