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이 ‘명량’ 후속편에서 보완할 것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언젠가 비스마르크 호의 최후가 얼마나 멋진 영화 소재인지, 할리우드가 왜 그걸 모르는지 아쉬워하는 밀리터리 덕후 한 명을 만난 적이 있다. 자동적으로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할리우드 사람들이 모르긴 왜 몰라.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의 극적인 사건들은 대부분 그들의 데이터베이스 안에 들어있다. 제임스 카메론은 심지어 그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는데?

지금(60년대에 한 번 만들어진 적 있다) 비스마르크호의 최후가 할리우드 극영화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현재 트렌드에 맞는 시나리오를 짜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이들을 끌어가는 인간 드라마는 무엇이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인기 소재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관심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나 존 웨인 스타일의 전쟁영웅보다는 그 역사에 참여한 보통 사람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비스마르크 침몰 사건을 갖고 이런 내용의 각본을 쓰기는 힘들다. 개인의 의지와 행동이 펼쳐질 공간이 없는 것이다.

대화는 비교적 갑갑하게 흐르다 싱겁게 끝났다. 그는 끝까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건 거의 "기둥 뒤에 공간이 있어요" 수준이었다. 머릿속에 "비스마르크 침몰 = 멋짐"이 너무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그게 반박될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이게 덕후들의 한계이다. 좋아하는 영역만 파다보면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웃기는 건 필자 역시 비스마르크 침몰이 썩 좋은 영화 소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60년대 영국 영화 <비스마르크를 격침하라!>도 좋은 전쟁영화였다. 그 이후로 당시엔 아직 기밀 사항이었던 수많은 사실들이 밝혀졌으니 새로 업데이트된 버전이 나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니그마 암호를 푸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블레츨리 파크의 콜로수스는 1975년까지 기밀사항이었다.

이순신과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비스마르크호의 침몰에 대해 생각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지상 최대의 작전>이 나온 뒤 수없이 만들어졌던 6,7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대작 영화들에 대해 생각했다. 엄청난 스케일과 올스타 캐스팅으로 과거의 전쟁을 재현했던 세미 도큐멘터리 스타일의 전쟁 영화들. 사실을 말하자면 <명량>의 예고편을 보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도 바로 그런 영화였다.



비스마르크호의 침몰을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던 밀리터리 덕후가 <명량>을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부터 나는 앞에서 한 말들을 적당히 무시하고 딱 그 덕후의 입장에서 <명량>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우선 필자는 이 영화에 대한 일반 관객들과 감상이 조금 다르다. 전투 전을 그린 전반부가 재미없고 후반의 전투 장면이 재미있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인데, 나는 전반부를 보면서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전투 장면이 아쉬웠다. 사실 전반부나 후반부 모두 아쉽긴 했는데 그 이유를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지루해하거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미진함과 드라마의 부족으로 지루함을 설명하는 것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명량>은 영화 절반이 해상 전투 장면에 집중된 영화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전투 자체여야 하고 전반부는 그를 향한 전희여야 한다. 어차피 이순신과 같은 키 플레이어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굴러가기 시작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앞으로 닥칠 거대한 사건을 구성하는 톱니바퀴 역할로 만족해야 한다. 이 영화의 전반부가 할 일은 앞으로 다가올 전투에 대한 기대를 자극하고 필수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지 불필요한 캐릭터를 쌓거나 인간 드라마를 만드는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명량해전을 다루는 가장 이상적인 도구는 역시 세미 도큐멘터리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차피 이 영화의 목표는 관객들이 교과서에서 읽어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시각화한 적이 없고 교과서에 적힌 몇 줄의 정보만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짐작할 수 없는 사건을 스크린 위에 재현한다는 데에 있다. 이런 식의 유명한 역사적 전투가 대부분 그렇듯 의외로 극적인 요소가 약할 가능성도 있지만 다양한 인물과 세부사항 묘사로 최대한 충실하게 역사를 재현하는 것으로 이를 극복할 수도 있다. 결국 이게 '완벽한 명량해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어떤 관객들은 "<역사스페셜>을 보러 극장에 온 줄 아느냐"라며 영화의 전개에 불만을 표시했다. 나보고 대답하라면 "왜 <역사스페셜>을 극장에서 봐서는 안 되는 건데?"라고 하겠다. 세미 도큐멘터리는 훌륭한 극장용 영화의 토대이다. <지상 최대의 작전>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했다. 최근작으로는 히틀러의 마지막 날을 다룬 히르슈비겔의 <몰락>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들 역시 이런 것을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기대치를 맞추면 당연히 영화의 재미가 더 나아진다. <명량>의 <역사스페셜>스러움에 당황한 관객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의 머릿속엔 필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전쟁 영화의 장르가 하나 완전히 빠져 있었다.

슬프게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관객들도 고려해야 한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지상 최대의 작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극적 사건들을 재현한 수많은 영화들이 나왔지만 흥행성공작은 적었다. <명량>이 그런 위험을 짊어질 수 없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여러 시도들이 영화의 완성도를 계속 흔들고 있다는 건 부인하기 힘들다. 필자에게 명량의 해전 장면이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역사스페셜>스러웠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재현하려는 시도, 스펙터클과 드라마를 만들려는 시도, '백성파워'의 주제를 심으려는 시도가 계속 충돌하며 통제되지 못한 불협화음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역사를 보려고 온 관객들은 재미를 위해 왜곡된 부분에 실망을 하고 오락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무거운 역사에 눌린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이 성공한다면 이순신이 주인공인 다른 두 편을 더 만들어 삼부작을 만들 계획이다.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나로서는 그가 <명량>의 흥행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보다 '이상적인' 해전 영화에 도전해보길 바랄 뿐이다. 그건 비스마르크호의 최후를 그리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 있는 일이다. 비스마르크호 사건의 주인공들은 육해공 사방에 흩어져 있어 모으기가 힘들다. 하지만 김한민의 삼부작에는 이순신이 있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명량>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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