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산일기’ 1만명은 ‘써니’의 400만명과 같다”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생생인터뷰] 한국 부의 상징인 강남 압구정 한복판에서 <무산일기>같은 작품을 보는 것은 기묘함을 넘어서 불편함까지 느끼게 하는 일이다. 여기는 무산계급이 낄 공간이 아니다. 이들은 무산자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무산계급의 존재 자체를 알기나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영화가 끝나자 극장 안은 뭔가에 경도된 느낌으로, 심지어 후끈 달아오른 듯한 기운이 감돌 정도였다.

2시간을 훌쩍 넘는 러닝 타임 동안,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마음을 꽉꽉 눌러대는 그 우울함과 답답함의 시간동안, 사람들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모습이었다. 우리가 과연 제대로 살아왔는가. 우리 역시 우리사회의 무수한 무산자들을 괴롭혀 온 무리의 공범이 아니었던가. <무산일기>는 어쩌면 압구정동에서 상영되는 것이 역설적으로 맞는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무산일기>는 외형적으로는 탈북자 전승철의 고단하고 남루한 삶을 그린 영화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나왔지만 남한사회에서는 더욱더 철저하게 버림받게 되고 소외받게 되는 존재들. 탈북자의 삶은 세밀하게 그려진 지옥도의 풍경들이다. 남한에서의 탈북자들은 자본의 억압구조에서 결코 탈출하지 못한다. 그들은 어디선가 탈출했지만 또 다시 다른 감옥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영화 속 주인공 전승철은 실존인물이었고 아깝게 몇 해 전 위암으로 사망했다. 이 영화는 그런 전승철을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영화로나마 위로하려고 했던 박정범 감독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박정범은 연세대 체육교육학과를 나와 이창동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웠다. 전승철은 박정범의 학교 후배였다. 박정범은 이 영화를 연출한 것외에도 각본과 주연, 프로듀서 등 1인4역을 했다. 영화 속에서 박정범은 진짜 탈북자같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4개월 동안 철저하게 전승철로 살았다. 북한에서나 남한에서나 철저하게 억압받았던 밑바닥의 밑바닥 계급인 탈북자로 행세했다.

국내 영화시장에서 <무산일기>처럼 어둡고 우울한 영화는 올바르게 대접받지 못한다. 단관 수준의 적은 스크린에서 개봉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제영화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무산일기>는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필두로 올해는 로테르담영화제, 미국 뉴욕의 트라이베카 영화제, 그리이스 데살로니키 영화제, 러시아 타르코프스키 영화제 등등에서 대상에서 심사위원상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수상을 이루어냈다.

“해외 영화제에서 만난 어떤 노인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게 그랬다. 자신도 영화 주인공처럼 젊은 시절 혹독한 경험을 많이 했다고.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나서 혼났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은 어디나 비슷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할아버지의 말이 그 어떤 수상 트로피보다도 내겐 더 귀중한 것이었다.”

국내 관객들은 느리지만, 점점 더 뜨거운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무산일기>는 이런 류의 영화가 달성하기 어려운 관객 1만 고지를 넘어섰다. 이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무산일기>의 1만은 <써니>의 400만과 같은 의미의 수치다.

-관객 만명을 넘어섰다. 솔직히 나는 그렇게까지 기대하지 못했다.
“그런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한 2천명 정도 모으지 않을까,라고들 하셨다. 영화가 조금 어두우니까. 한두개 스크린 정도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는 배급환경에서 1만명의 관객이 와주신 건, 내겐 백만명 같은 느낌으로 다가선다. 고맙고 영광스럽다. 영화의 진정성을 공유해 주신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안 그런 것 같지만 우리사회엔 여전히 지금의 시대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해외영화제에서 이런저런 수상을 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탈북자의 얘기지만 탈북자 얘기가 아니다. 우리시대 모든 무산계급의 얘기다.
“맞다. 영화 속 탈북자들의 모습은 우리시대가 안고 가야 하는 무산계급의 자화상들이다. 탈북자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살아가는 모든 헐벚은 사람들이 사실은 탈북자와 같다. 탈북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려진 모든 무산계급을 대변한다.”

-당신이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탈이념의 문제다.
좌우가 대립하는 것, 서로 옳다고 싸우는 것은 생존이란 문제 앞에 서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 영화의 인물들 대부분이 탈북자이지만 남북문제나 이념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와 관한 한 이념이 낄 틈이 없다. 그건 일종의 사치다.”

-탈북자들이 모여 소주를 먹는 장면이 기억난다. 한 탈북자 등 뒤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고, 그 뉴스에는 남측에서 북측으로 기구를 통해 삐라를 살포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 뉴스를 보고 두 탈북자가 말싸움을 한다. 남쪽에서 자꾸 저렇게 북쪽 신경을 건드리면 안된다고 누가 말하고, 또 다른 누가 그럼 김정일은 잘한 게 뭐 있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은 미국 도색잡지 허슬러를 보며 낄낄댄다. 한 탈북자가 말한다. 사진 속에 있는 금발 여자처럼 가슴이 커지려면 얼마나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는지 아느냐고. 탈북자에겐, 가난한 사람들에겐 남북간 이념대립이나 섹스가 궁극적인 관심이 아니다. 그들의 절대적 관심은 고기다.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생각을 많이 해서 찍은 장면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진짜 탈북자들인 것 같다.
“그 중 몇은 진짜 탈북자다. 자신들의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도록 했고 잘 따라와 줬다. 전승철의 친구인 경철 역의 진용욱씨가 정말 잘해줬다. 그는 탈북자지만 탈북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모두 치를 떨었을 만큼 리얼한 연기를 했다.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연극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배우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대해 얘기들이 많다.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 백구의 사체를 보면서 주인공 전승철은 오랫동안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 장면을 원씬 원컷, 롱테이크로 찍었다. 그런데 왜 한번도 카메라가 전승철의 등뒤에서 앞으로 오지 않았는가? 왜 등뒤에서만 찍었는가.
“대답은 단순하다. 난 백구가 누어있는 모습에서 전승철의 죽음을 봤다. 그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가난하고 고단했던 전승철의 아픈 삶을 기억해 냈다. 그때 난 전승철을 연기하지 않고 있었다. 난 그냥 박정범이고 백구가 전승철이었다. 카메라가 앞으로 오면 펑펑 울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았다. 그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보여주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영화적 멘토는 누구인가. 당신은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
“직접적인 멘토는 당연히 이창동 감독이시다. 그분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진정한 멘토는 영화 그 자체다. 나는 영화를 통해서 세상을 배웠다. 세상의 진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자세를 배웠다. 영화는 늘 현실을 올바로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현실의 얘기를 회피하는 영화, 아니면 그것을 왜곡하는 영화를 찍으면 안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쉽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안다. <무산일기>처럼 어렵게 어렵게 만드는 영화를 계속할 것이다.”

박정범을 알게 되면서 놀라게 되는 것 몇 가지는 그가 꽤나 달변이라는 것, 그래서 그가 어눌한 이미지를 선보였던 영화 속의 모습은 철저한 연기라는 것이다. 그만큼 연기력도 빼어나다는 얘기다. 또 한가지로 놀라운 것은 <무산일기> 속 남루한 모습과는 달리 그가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삼, 영화는 의지의 산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존재가 계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당파성이 자신의 계급을 결정해 준다는 것도 깨닫게 한다. 박정범은 이 영화를 단돈 5천8백만원에 찍었다.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며 돈,돈,돈 한다. <무산일기>가 보여주는 ‘무산주의’를 배울 일이다. 적어도 영화를 보고 반성이라도 해야 할 일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저작권자ⓒ'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