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립오페라단 ‘오텔로’ 카시오 역 맡은 김기찬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왜 관객들이 오페라를 보면서 감동 받지 못할까? 오페라도 하나의 극인데 시선처리, 소리의 방향, 몸의 움직임 등이 다 불안한 성악가를 보면 그 성악가가 아무리 소리가 좋아도 감동 받지 않는다. 우리는 ‘한’과 ‘흥’, 그리고 ‘끼’가 겸비된 성악가를 보면 감동 받지 않나. 나 역시 그런 성악가로 기억되고 싶다.“

베르디가 대본가 아리고 보이토와 함께 완성한 <오텔로>는 기존 이탈리아 오페라에 바그너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오페라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다. 국립오페라단은 11월 6일부터 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베르디가 6년의 장고 끝에 완성한 오페라 <오텔로>를 선보인다. 카시오 역에 캐스팅 된 테너 김기찬을 만났다.

■ 선과 악, 빛과 어둠의 관계에 대한 서사를 들려주는 오페라 <오텔로>

<오텔로>는 희대의 악역 이아고와 열등감으로 인해 파멸하는 영웅 오텔로의 모습을 통해 가장 잔인한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

폭풍처럼 몰아치는 서곡부터 오텔로의 비극적인 죽음까지 그 어느 오페라보다 격정적인 오페라이다. 영국 연출가 스티븐 로리스는 “<오텔로>는 우리에게 선과 악, 빛과 어둠의 관계에 대한 서사를 들려준다. 그 관계는 오페라 <오텔로>의 시작을 알리는 폭풍우 장면에도 잘 드러나 있는데, 이 폭풍우는 우리가 선이라 믿고 지키려고 하는, 인생의 임무이자 과제 같은 자연의 순리가 엉망으로 뒤집힌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장엄한 비극이 펼쳐질 이번 무대는 오텔로(테너 클리프톤 포비스▪박지응)를 중심으로 한 주요 인물들의 심리상태 및 갈등과 파국에 중점을 뒀다. 신임 키프러스 총독으로 부임하게 된 흑인 장군 오텔로를 상관으로 모시게 된 이아고는 오텔로를 파멸시키고, 카시오를 파면 당하게 하고자 한다. 이아고의 간계대로 오텔로의 의혹은 하나하나 커져만 간다.

극중 카시오는 베네치아의 장교이자 오텔로의 부관이다. 오텔로의 조종자이자 야심가인 이아고는 이 모든 작전을 카시오의 잘못으로 돌리기 위해 교묘하게 술을 권한다.

김기찬은 “카시오와 이아고와의 심리적인 싸움, 즉 누가 더 머리를 잘 쓰나? 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오텔로는 카시오를 충직한 신하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아고의 말을 듣고 카시오를 의심하게 된다. 또한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카시오가 이아고가 권하는 술에 취해 성격적인 면을 내보이게 되고, 한편으로는 망가지게 된다. 카시오 입장에서는 오텔로가 카시오를 믿었던 부분이 흔들리지 않게, 이아고와의 심리적인 싸움에 좀 더 무게 중심을 실어 보여주고자 한다.”

이아고 역 바리톤 고성현은 최근 정명훈의 지휘로 오랑주페스티벌에서 <오텔로>를 공연을 마친 후 ‘오텔로보다 더 강렬한 이아고’라는 극찬을 받은 성악가이다. “고성현 선생님과 작업이 너무 편해서 좋다. 더 이상 말 하지 않아도 이 캐릭터가 뭘 말하는지, 상대 역 가수가 뭘 원하는지를 정확히 간파하고 연기를 하신다. 사실, 오페라 무대에 많이 서도 이렇게 호흡이 일치하는 성악가를 만나긴 힘들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 로리스 연출이 마음에 들어 했다.”



■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성악가

2010년 국립오페라단 <룰루>로 국내 무대에 데뷔했지만 김기찬의 진가를 제대로 드러낸 작품은 오페라 <박쥐>였다.

스티븐 로리스 연출과 국내 관객과의 인연은 2012년 국립오페라단 <박쥐>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의 단골 레퍼토리 <박쥐>의 흥행메이커인 스티븐 로리스는 한국의 관객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유머를 가미한 위트 넘치는 ‘코리언 <박쥐>’를 선보여 호평 받았다. 그 중심엔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은 아름다운 고음, 파바로티 분장과 치밀한 연기로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 테너 김기찬 ‘알프레드’가 있다.

“<박쥐> 출연 제의를 받고 고민 없이 바로 하겠다고 했다. <박쥐>로 이미 독일에서 수차례 무대에 올라 인정을 받았고, 한국에서 이 역할로 경쟁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박쥐>의 다른 프로덕션 보다 ‘알프레드’의 비중이 훨씬 커졌다는 점.“ 그 당시 스티븐 로리스 연출가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 서로 상대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다. 작업을 하면서 연출이 저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졌다. 예를 들면 알프레드가 나오지 않아도 되는 장면에서도, 감초처럼 날 등장 시켜 내 캐릭터를 살려줬다. 파바로티 콘셉트에 한국 관객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했던 점도 주효했다.”

올 연말에 다시 한 번 앙코르 공연되는 국립오페라단의 <박쥐>에 먼저 캐스팅 됐던 김기찬은 최종적으로 <오텔로>로 국내 관객을 만나게 됐다. “<박쥐>가 리바이벌 되면서 다시 한 번 출연 제의를 받고, 일년 전에 독일 극장 스케줄을 비워뒀다. 그러던 중 스티븐 로리스 연출가가 국립오페라단 <오텔로>를 작업하게 되면서, 카시오 역은 꼭 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의견을 비쳤다고 들었다.”

<오텔로> 프로덕션은 두 번째인 김기찬은 “‘스티븐 로리스’ 연출과 다시 한 번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몇년 전 독일에서 <오텔로>를 했지만, ‘카시오’라는 역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 했다. 하지만 스티븐 로리스 연출이 함께한다고 해서 바로 작품에 합류하게 됐다. 역시나 이전 프로덕션 작업보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작품을 완성하고, 각 인물들의 감정의 선을 완성 할 수 있어서 재밌게 하고 있다.”

섬세한 심리표현과 시각적 아름다움을 겸비한 연출로 호평 받는 영국 연출가 스티븐 로리스의 장점은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다.

“스티븐 로리스 연출의 손을 거친 작품의 특징이라면, 집중해서 공연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관객들의 몰입이 분산되지 않게 심리적인 부분에도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연출이 저에게 원하는 것 역시 연기적인 디테일이었다.”



■ 독일극장이 선택한 성악가에 이어 한국 관객이 사랑하는 성악가로!

전북 군산 출신인 김기찬은 광주 예술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2005년부터 독일 바이마르 국립극장 전속 솔리스트를 시작으로 독일 브레머하펜 오페라극장, 독일 카이뎌스라우테른 팔즈주립극장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한 이력을 지녔다.

눈에 띄는 이력으로는 2008년 북독일에 위치한 브레머하펜 시립극장에서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성악가로 뽑혀 관객상을 받았다는 점이다. “브레머하펜이라는 도시에 150년 역사를 지닌 브레머하펜 극장이 있다. 이 곳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전속 솔리스트로 있었다. 관객상은 2년마다 수여하는데, 발레, 연극, 오페라 분야를 종합해 단 한명의 아티스트에게만 주는 상이다. 무엇보다 관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예술가로 선정됐다는 점이 의미 있었다.”

독일에서는 ‘Daniel Kim’으로 잘 알려진 테너 김기찬은, 독일 브레머하펜 시립극장 150년 역사상 관객상과 예술가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성악가로 유명하다. “2008년 관객상을 수상한 뒤 4년 뒤인 2012년, 예술가 상을 받았다. 헤르츠립코후트라는 유명한 독일배우가 이 극장 출신인데 그 배우를 기념하는 예술가상이 만들어진 거다. 그렇게 난 관객과 예술가들에게 영향력을 많이 끼친 예술가로 알려지게 됐다.”

독일극장이 사랑하고 선택한 테너 김기찬은, 독일의 유명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에게 극찬을 받은 한국 성악가이기도 하다. 2005년 당시 크바스토프 홈페이지에는 김기찬의 사진이 떠 있을 정도로 화제가 됐던 일화다.

“베를린음대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해 크바스토프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런데 사실 준비하고 간 자리가 아니고, 이게 그렇게 큰 행사인지도 모르고 간 거다. 유명 성악가들이 다들 멋진 양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더라. 나 혼자만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채 갔다. 게다가 마감 시간을 넘기고 급하게 달려오느라 땀 냄새도 풍기고 갔다.



그 자리가 유명한 성악가들이 와서 마스터 클래스를 공개적으로 받는 자리다. 그런데 대부분 노래 한 마디를 못 넘겼다. 크바스토프가 자꾸 노래를 끊으면서 왜 ‘너 노래 그렇게 못하냐’고 코멘트를 했으니까. 그걸 차근차근 보고 있으니까 나 역시 떨렸다. 그 다음에 ‘기찬 김’ 을 부르고 내 차례가 왔는데, 초라한 의상을 입고 들어가니 다들 웃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노래를 부르니까 분위기가 달라졌다. 크바스토프가 내 노래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 참석했던 사람들이 다 놀랄 정도였다. 그때 크바스토프가 저에게 ‘네가 한국인이란 게 믿겨지지 않는다. 한국 사람인 네가 독일 사람보다 정확한 발음, 소리, 음악적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토마스 크바스토프 마스터 클래스가 끝난 이후, 유럽의 오페라 프로덕션은 너도 나도 김기찬을 찾게 된다. “크바스토프의 격려가 많은 힘을 줬고, 유럽 무대에 내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됐다. 마스터 클래스 이전엔 독일 오라토리오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첫 음반도 독일 가곡으로 냈다. 10년 동안 독일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하다보니 오페라 가수로 살아오게 됐다.”



■ ‘한’과 ‘흥’, 그리고 ‘끼’가 겸비된 성악가, 테너 김기찬

오페라의 감동은 어디서 오는 걸까? 김기찬은 “무대 위 성악가들이 관객들의 ‘한’과 ‘흥’을 다 충족시켜줄 때 올 수 있다”고 답했다. “성악가들은 소리를 발전시키는 데 애를 쓰다 보니 소리가 평준화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소리만 들려준다고 해서 관객들이 감동하지 않는다. 왜 관객들이 오페라를 보면서 감동 받지 못할까? 생각을 많이 한다.

한국은 유교 사상이 발달해서 그런지 몰라도 ‘한’의 정서는 능한데, ‘흥’의 정서는 굉장히 약하다. 그런데 ‘한’은 소리로 커버 가능하지만 ‘흥’은 그렇지 않다. ‘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성악가들의 연기가 뒤따라야 한다. 가수가 흥을 표현하기 위해선 ‘끼’가 있어야 한다. 시선처리나, 소리의 방향이나 몸의 움직임 등이 다 불안한 성악가를 보면 그 성악가가 아무리 소리가 좋아도 감동 받지 않는다. 우리는 ‘한’과 ‘흥’, 그리고 ‘끼’가 겸비된 성악가를 보면 감동 받지 않나. 나 역시 그런 성악가로 기억되고 싶다.“

유럽 부대에 데뷔한 지 10년째인 김기찬은 이름 그대로 ‘무대를 사랑하며, 기차게 나아가는 성악가’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2년 전에 한국으로 아예 들어오려고 마음먹고, 친구의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는데 눈물이 났다. 나 역시 무대에 서는 성악가인데도...‘무대에 서는 사람은 위대하구나’ 라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정말 무대를 사랑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거다. 그 뒤로는 공연에 오르기 전, 무대에게 인사를 하고 힘을 받는다. 마치 날 잘 아는 친구처럼, ‘잘 부탁한다’ 라고 말하고 무대 바닥을 두드린다. 앞으로 다가올 십년을 바라보면서, 이름 값 하는 성악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차게!”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김기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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