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이효리도 못 살린 ‘매직아이’의 따라 하기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SBS <매직아이>에서 윤도현이 물티슈 전도사(?)가 되어 물티슈로 머리를 감고, 물티슈 뚜껑을 활용한 기상천외한 재활용을 보여주는 건 이색적이다. 하지만 거기 함께 앉아 있는 다른 MC들이 ‘뭘 또 그렇게까지...’ 하며 윤도현의 과도한 취향에 픽픽 웃음을 날리는 것처럼, 지금 토크쇼에서 ‘물티슈 재활용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은 그리 중요한 소재는 아니다. 재미는 있을 수 있지만 시청자들을 정서적으로 공감시킬만한 구석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곽정은이 이혼 후 망가진 몸을 되살리기 위해 운동을 하다가 근육에 빠지게 됐다는 그 취향은 여성지에서 본다면 그럭저럭 관심이 갈만한 내용이다. 그녀는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훈남 퍼스널 트레이너가 도움이 되었다고 증언한다. 거기에는 그녀가 요즘 자신의 캐릭터로 내세우고 있는 ‘연애 전문가(?)’로서의 면면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 역시 그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미용실에서라면 먹힐지 모르겠지만 피곤한 몸을 뉘인 후 굳이 틀어 보게 되는 안방 토크쇼에는 그다지 효과적이라 보기 어렵다.

장기하의 ‘낮술 예찬’은 흥미롭다. 밤에 마시면 술만 마시게 되지만 낮에 마시면 풍취를 즐길 수 있다는 그의 논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낮부터 마시면 다음날 일상으로의 복귀도 훨씬 수월하고, 한참 기분이 좋을 때 아직도 낮이야 하는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얘기도 공감이 간다. 무엇보다 술 마시는 행위를 일과가 끝난 후 벌이는 어떤 가외적인 것이 아니고, 중요한 문화적 행위로 얘기하는 장기하의 시각은 새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낮술 역시 보편적인 주제가 되기는 어렵다. 자유 직업인들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샐러리맨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취향 토크로 바꿔 보았지만 <매직아이>는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한 채 폐지가 결정됐다. 취향 토크는 또 다른 마니아 토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지상파라는 특징에 그리 좋은 기획이라 보기 어려웠다. 케이블이나 종편 같은 적은 시청층을 소구하는 플랫폼에는 어울릴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매직아이>가 그간 몇 차례 변신을 통해서 시도해온 것들이 대부분 비지상파 토크쇼들, 특히 최근 주목받는 JTBC 토크쇼들의 변주 정도였다고 여겨진다. 시사를 가져온 건 <썰전>의 흉내 내기처럼 보였고, <비정상회담>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어느 날 보니 외국인도 앉아 있었으며, <마녀사냥>에서 주목받은 허지웅이나 곽정은 같은 새로운 인물군도 <매직아이>의 테이블에 앉았다.

사실 뭘 해도 안 되니 이것저것 다 시도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플랫폼이 다른 JTBC의 토크쇼들이 잘 나간다고 거기서 어떤 요소들을 가져오는 것은 잘못된 선택들이었다. 지상파의 시청자와 비지상파의 시청자가 같을 수는 없다. 지상파는 지상파에 맞는 새로운 형식을 창출해야 했다.

안타까운 건 김구라나 이효리 같은 한 마디로 뜨거운 MC들을 기용하고도 <매직아이>는 이들을 백분 활용하지도 또 그들의 새로운 매력을 뽑아내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김구라나 이효리가 가진 한계도 작용한다. 김구라는 언제부턴가 비지상파에서는 잘 먹히지만 지상파에서는 맥을 못추는 MC가 되었다. <라디오스타>가 그나마 그가 버티고 있는 유일한 지상파 예능이지만 그의 토크가 이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건 이번 <매직아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효리는 누군가의 조력자로서는 확실한 자기 역할을 해내지만 혼자 서서는 어렵다는 것이 <매직아이>를 통해 드러났다. 신동엽이나 유재석 같은 MC가 옆에 서 주면 이효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인물도 없다. 하지만 <매직아이>에는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MC가 없었다. <매직아이>의 불발로 이효리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가수 활동을 안 한지 오래된 데다, 연기는 여전히 어려운 선택으로 남았고 그나마 남은 예능에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이효리의 존재감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블로거로서 더 돋보이는 상황이다.

이러려고 <심장이 뛴다> 같은 좋은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매직아이>를 편성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것은 김구라나 이효리의 문제라기보다 프로그램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세우지 못하고 주변 눈치 보기와 따라 하기를 반복하면서 생겨난 일일 것이다. 뚫어지게 쳐다봐야 그 안에 숨겨진 실체가 보이는 게 ‘매직아이’지만, <매직아이>는 뚫어지게 쳐다봐도 실체를 발견하기 힘든 정체성 없는 토크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효리와 김구라를 전면에 내세우고 온갖 시도를 다 해 본 방송사 입장에서도 죽어가던 토크쇼를 살려보겠다고 나선 MC들 입장에서도 대참사 수준으로 기록될 일이다. 참으로 아픈 일이고 값비싼 대가지만 <매직아이>의 패인은 향후 지상파가 토크쇼를 생각한다면 먼저 떠올려야 하는 사례가 되었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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