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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왜 절정의 순간 자막과 함께 막을 내렸나
기사입력 :[ 2014-11-05 12:19 ]


‘카트’, 당신들 문제에 왜 우리가 당해야 하냐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카트>는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린극영화이다.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가 주연을 맡았고, 인상적인 퀴어 영화 <지금 이대로 좋아요>를 찍었던 부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상업영화이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는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이자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신예 도경수의 영화출연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카트>는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로부터 출발한 영화이다. 당시 이랜드그룹은 홈에버 비정규직 계산원들을 해고하였다. 500여명의 노동자들은 6월 30일 상암동에 위치한 홈에버 월드컵 점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무려 512일 동안 파업이 계속되었으며, 2008년 11월 13일에야 파업이 종결되었다. 협상결과는 해고자 28명중에서 12명의 노조간부가 퇴사하는 것을 조건으로, 16명이 복직하는 것이었다. 노조간부들의 희생을 대가로 한 절반의 성공이었다. 당시 사건은 2009년 김미례 감독에 의해 다큐멘터리 <외박>으로 만들어졌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2009년에 처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마침 15년간 방송사에서 PD일을 하던 김경찬 작가가 2011년에 완성한 시나리오 초고가 심재명 대표에게 들어왔고, 그 후 2년간의 수정을 거쳐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됐다. 두 차례에 걸친 크라우드 펀딩에 5천명이 참여해, 2억 원 가량의 제작비를 마련했다.

<카트>의 시나리오 안에는 홈에버 투쟁은 물론이고, 홍대청소노동자 투쟁 등 실제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카트>는 그동안 뉴스를 통해 보아왔던 노동문제를 소재로 한 국내 최초의 상업영화이다. 극히 이례적인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만족스럽다. 주제를 전달하는 힘은 물론이고, 극영화로서의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 문자로 계약해지? 이건 아니다!

선희(염정아)는 5년간 벌점 한 점도 없는 모범사원이다. 초과근무든 ‘땜빵’이든 관리자들이 요구하는 일은 무엇이든 군말 없이 다 한 덕에, 지점장에게 곧 정규직을 시켜주겠다는 말도 들은 상태다. 정규직이 되면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스마트폰도 사주고, 초등학생인 딸도 더 잘 돌볼 수 있다. 혜미(문정희)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을 둔 싱글 맘으로, 회사가 요구하는 초과근무 등을 할 수 없다. 선희와 달리 칼퇴근을 하는 탓에 관리자들에게 미운 틀이 박혔다. 하지만 예전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해고를 당해본 혜미로서는 정규직에 목을 매는 선희가 안되 보이긴 마찬가지다. 미진(천우희)는 대학 졸업 후 면접만 50번 본 ‘88만원 세대’이다. 마트에서 임시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뾰족한 탈출구도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청소노동자 순례(김영애)는 20년간 빗자루를 잡은 사람이지만, 자기 노동으로 살아가는 존재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회사는 ‘대세에 맞게’ 인력을 아웃소싱하기로 결정한다. 관리자 등 정규직들은 연봉계약직으로 돌리고, 계산원이나 청소노동자 같은 계약직들을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을 하겠다는 것이다. 회사는 해고될 노동자들의 입장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용역업체를 선정하여 발주하고, 한 달 안에 계약직 직원들의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한다. 마침내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고용계약해지’ 문자가 날아든다. 탈의실에서 근무복을 갈아입다 일제히 울리는 문자메시지에 동요하는 노동자들. 관리자들은 문자 내용을 묻는 노동자들에게 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근무시간이니 빨리 매장으로 나가라. 한 달 뒤가 아니라, 당장 잘리고 싶지 않으면”이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몰랐던 이들이지만, 부당해고를 당하자 순식간에 노동조합을 만든다. 혜미, 선희, 순례가 교섭대표로 나선다. 그러나 회사는 이들을 만나주기는 커녕, 아예 안 보이는 사람 취급한다. 마침내 노동조합은 일시에 파업에 돌입하면서 매장을 점거한다. 회사는 아르바이트생을 투입하여 파업을 무산시키려하고, 전기를 끊는 등의 조치를 취하다가, 마침내 경찰기동대를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밖으로 끌어낸다.



◆ 가족영화이자 성장영화의 틀로 관객들을 설득해내다

노동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사회문제이다. <카트>가 보여주듯이, 고용자들이 마음대로 노동자를 부리고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은 언제든지 임금체불, 부당해고, 노동착취, 가혹행위 등의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이는 세대나 직종을 불문하고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이다.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나 편의점에서 알바 하는 아들이나 똑같이 당하는 일들이며, 혜미의 과거가 그러했듯 정규직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노동계급에게 노동문제는 필연적이고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내 문제이다.

그러나 그동안 시민들은 ‘고객’이나 ‘소비자’의 이름으로 자신을 정의하며, 각종 파업에 불편을 호소하며 적대적이었다. 그들도 분명히 다른 사업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로서의 입장은 공유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파업을 깨기 위해 대체인력을 투입한 계산대를 막아서며 울부짖는 노동자들을 향해 쇼핑하던 고객들이 묻는다. 당신네들 문제에 왜 우리가 피해를 당해야 하냐고. 선희는 미처 답을 하지 못한다. 이는 선희의 답을 듣기 위해 배치된 장면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기 위해 배치된 장면이다.

그동안 노동문제는 특별한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시민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조차 개별 사업장의 파업 등은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간주하였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관심을 갖기엔 너무 지엽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물론 노동자와 시민을 분리시키고, 심지어 대립시키는 구도를 만들어 낸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효과 때문이지만, 시민사회 내부에서 각성이 부족했던 탓도 존재한다. 이러한 심리적인 장벽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 2011년 초 홍대청소노동자 투쟁에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 등 시민들이 결합했던 사건이었고, 그해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진숙 씨를 지지 방문하기 위해 희망버스가 출발함으로써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조우가 이루어졌다.



<카트>는 부당해고, 노동조합 건설, 점거파업, 회유, 손배소, 공권력 투입 등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보통 사람들의 삶과 떨어져 있는 괴상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평범할 수 없는 이 ‘여사님’(아줌마)들과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내 이웃이자, 내 가족의 문제이며, 곧바로 내 미래의 문제이거나 내 현재의 문제일 수 있음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킨다.

영화는 가족영화이자 성장영화의 틀을 활용한다. 영화는 선희가 파업에 뛰어들면서 고등학생인 아들 태영(도경수)과 초등학생 딸이 겪게 되는 힘겨운 시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태영은 살림을 팽겨 친 채 파업에 나선 엄마를 이해하고 싶지 않고, 급식비도 수학여행비도 내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화가 난다. 그러나 그는 알바를 하면서 당하게 된 억울함을 통해 비로소 엄마의 싸움을 이해한다. 하지만 모자의 소통에도 불구하고, 빈집에 방치되어 있다시피 한 딸의 모습은 여전히 무겁고 아리다. 영화는 선희를 비롯한 노동자들을 통해, 또는 태영을 통해 감정이입이 일어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파업이라는 낯선 사건을 친근하게 느끼게 된다. 이는 노동문제를 소재로 한 국내 최초의 상업영화인 <카트>가 가장 중요하게 달성해야 할 과제가 충분히 달성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극영화로서 뛰어난 만듦새

<카트>의 시니리오는 매우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여러 명 캐릭터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이 모두 살아있으며, 각자 대변하는 캐릭터들의 몫도 분명하다. 이를테면 미진(천우희)은 분량은 많지 않지만, 20대 취업준비생이라는 뚜렷한 세대적 대표성을 지닌다. 여고생인 수경(지우) 역시 “미성년자라고 만만해요?”라는 몇 마디 대사와 특유의 불만족스러운 표정만으로도 해당세대를 압축적으로 표현해낸다. 또한 캐릭터들이 평면적이지 않으며,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극적인 변천과정을 겪는데 이것 역시 상당히 정교하다.

회사에 국으로 충성하던 선희가 얼떨결에 노동조합 대표로 나서고, 회유에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성장하는 모습은 극적인 감동을 유발한다. 한편 혜미가 그리는 변화의 곡선도 대단히 역동적이며 개연성을 지닌다. 후반부로 가면서 균열의 지점을 보여주는 것 역시 뼈아프게 사실적이다. 영화는 정규직 남성노동자인 강동준(김강우) 위원장을 그리면서도, 그의 장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한계까지 정확하여 보여 주는 방식을 통해, 이 싸움의 주체가 정규직 남성노동자가 아니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영화의 단단한 주제의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영화는 몇몇의 장면으로 주제를 짚어내는 능력을 지닌다. 가령, 교섭을 요구하며 회의실에서 기다리는 선희, 혜미, 순례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불을 끄고 나가버리는 장면은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투명인간’은 비정규직 서비스노동자들이 느끼는 가장 비참한 정체성이다.영화는 서사뿐만 아니라 카메라 워크도 매우 유려하다. 도입부에서 천정에 있는 카메라가 마트의 계산대를 시원하게 내려다보며 찍은 부감숏은 김우형 촬영감독 인장이 살아 있는 특유의 카메라 워크이다. 태영이 집을 뛰쳐나간 뒤, 옹벽에 기대 선 선희의 그림자를 강렬한 콘트라스로 잡아내며 선희의 심정을 대변해주는데, 이는 어느 표현주의 영화 못지않다.

영화는 파업에 내몰린 노동자들을 단순히 피해자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파업을 통하여 성장하는 주체이자, 동지들과 우정과 연대를 나누는 주체로 그린다. 영화는 점거파업을 하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울고 웃으며 하나가 되는 환희에 찬 순간들을 소중하게 그려낸다. 영화 속 몇몇 장면들은 파업 등 어려운 싸움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빛나는 감흥을 담는다.

영화는 절정의 순간에 자막과 함께 막을 내린다. 일종의 열린 결말은 지향하는 것인데, 이는 영화가 과거의 특정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아직 진행 중인 무수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즉 영화 속 사건이 하나의 결말로 봉합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건들과 폭넓게 만나면서 다양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카트>를 통해 나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출발점이다. <카트>가 개봉하는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 기일이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결코 우연이 아닌 택일 같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카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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