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장백기의 스펙 vs 장그래의 절실함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건 스펙일까 아니면 절실함일까. 흔히들 ‘스펙사회’를 비판하지만 스펙의 의미가 갖는 직무에 대한 기본적인 준비는 어쩌면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스펙은 어느 순간에는 사회생활에서 또한 필요할 수 있는 절실함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미생>의 장백기(강하늘)는 ‘스펙’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명문대 출신에 반듯한 이미지는 그가 준비된 상사맨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 ‘준비됐다’는 것은 그에게 두 가지 문제를 가져온다. 하나는 일에 대한 조급함이고 다른 하나는 스펙이 만들어낸 자존심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일에 투신하는 절실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장백기의 사수 강대리(오민석)는 그에게 기본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것을 마치 일을 주지 않는 것으로 오인한다. 그러면서 스펙 없는 장그래(임시완)가 몇 차례 일을 해결하고 성사시키는 것에 깊은 질투를 느낀다. 스펙의 자존심이 만들어낸 비뚤어진 마음이다. 기본적인 일에 대한 이해는 높지만 문제 해결 능력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장백기는 책상머리에서만 세상을 들여다본 스펙의 한계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스펙 없는 장그래에게 부족한 건 기본 그 자체다. 겉만 번지르르한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무역 용어들 자체도 잘 몰라 따로 공부를 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계약직인 장그래에게는 장백기에게는 잘 안 보이는 절실함이 있다.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그 절실함은 그가 문제를 해결해내는 원동력이 된다.



장백기와 장그래에게 10만원으로 물건을 파는 미션이 주어지는 에피소드는 이 스펙과 절실함이 부딪치고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장에서 양말과 팬티를 싸게 사온 장그래는 장백기와 함께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 물건을 팔려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창피함도 무릅쓰고 지하철에서 양말과 팬티를 팔려고 장그래가 나서는 걸 보며 장백기는 그 절실함에 마음이 움직인다. 결국 양말과 팬티를 필요로 하는 사우나를 찾는 직장인들에게 길거리에서 두 사람이 함께 물건을 파는 이야기다. 결국 스펙이든 절실함이든 두 사람은 물건을 파는 일 하나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결말이 나왔지만 현실에서 스펙과 절실함은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장그래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워 스펙사회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려는 것이 작품의 의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스펙사회의 부조리는 장백기의 사수인 강대리의 대사를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그는 구멍 난 배를 땜질하면 되지 않냐는 말로 문제를 해결해내는 장그래를 이렇게 평가했다. “정답은 모르지만 해답을 아는 사람들이 있어요. 장그래씨처럼요.”

정답과 해답.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정답은 ‘정해진 답’이다. 스펙 속에서 우리가 배워왔던 정해진 답.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정해진 답대로 굴러가진 않는다. 무수한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해답은 ‘문제 해결을 통해 나온 답’을 말한다. 즉 상황에 부딪쳐 그 때 그 때의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스펙이 얘기하는 기본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본도 실제 현장에서 해답을 찾아내려는 그 절실함이 없다면 무용지물이지 않을까. <미생>이 그리고 있는 장백기와 장그래의 이야기는 그래서 스펙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주는 면이 있다. 당신은 장백기로 살 것인가, 장그래로 살 것인가.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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