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극 같은 사극, 왜 이렇게 인기가 없을까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과거 사극이라고 하면 무조건 20% 시청률부터 시작한다고 할 정도로 ‘사극불패’에 대한 신뢰감은 컸었다. 하지만 올해만을 두고 보면 ‘사극전성시대’라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지상파의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빠진 것도 빠진 것이지만 올해 그나마 시청률이 잘된 사극은 <기황후> 29%(닐슨 코리아), <정도전> 19% 정도다.

<야경꾼일지> 같은 사극은 고작 12% 시청률에 머물렀고, 한석규, 이제훈 주연에 윤선주 작가의 기대작이었던 <비밀의 문>은 심지어 5%대로 추락했다. 사극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본 시청률을 가져가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도대체 무엇이 사극의 힘을 이렇게 빼놓은 걸까.

사극의 힘은 그 극성에서 나온다. 갈등의 양상이 누군가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사극의 특성은 바로 그 극성을 최대치로 올려놓는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최근 사극이 역사가 갖는 사실성이나 팩트 그 자체보다 상상력과 허구 쪽으로 더 많이 기울게 되면서 이런 극성은 점점 사라져버렸다. 즉 실제처럼 느껴지던 것이 이제는 이야기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야경꾼일지> 같은 경우를 보면 아예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들이 나온다. 그러니 이런 판타지 속에서 극적 긴장감은 점점 사라지기 마련이다. 마치 실제 현실 같은 이야기를 볼 때와 게임을 할 때의 실감이 다른 것처럼, 이야기화 된 사극은 점점 현대극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양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비밀의 문>은 또한 사극의 상상력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실제 역사적 사실의 한계를 잘 보여주기도 했다. 즉 이미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뒤주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역사적 기록이 나와 있기 때문에 어떤 과정의 변화도 흥미로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결과보다는 과정이라고 얘기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결과가 과정 자체를 허무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비밀의 문>은 보여줬다.

<비밀의 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다양한 아이디어와 에피소드로 승부했다면 양상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 역시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세종의 한글 유포과정을 다루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작품은 그 과정에 무수히 많은 이야기의 아이디어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비밀의 문> 같은 결과와는 상반되는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초반 맹의에 집착하는 이야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비밀의 문>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사극이 지금 처한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사극을 대하는 대중들의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은 문제로 보인다. 과거 역사가 살아있던 사극은 무언가 진중한 무게를 갖는 드라마로서 인식되었지만 점점 판타지화 되고 허구화된 사극은 그 무게감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 <정도전>이라는 정통 사극이 새삼 주목받았던 것은 바로 이 반작용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사극의 이런 흐름, 즉 역사로부터 탈주해 상상력과 허구를 덧붙이는 이 변화가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가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 자체를 버리는 듯한 사극의 흐름은 자칫 사극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흐릴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할 때다. 즉 한때는 역사의 엄밀함에서 벗어나려 사극이 그 무거운 역사를 벗어내려고만 했다면, 이제는 역사와 상상력을 균등하게 세워놓고 접목시키는 방식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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