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멜로 대신 브로맨스, 막장 대신 암 유발 상사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흔히들 <미생>을 지상파 드라마들과 비교하며 ‘○○ 없이도’ 잘 된 드라마라 칭하곤 한다. 아마도 지긋지긋하게 봐서 물려 버린 지상파의 ‘멜로’나 ‘막장적인 전개’ 같은 것들에 그만큼 식상해진 시청자들이 <미생>을 통해 그런 것 없이도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미생>은 이런 요소들이 하나도 없었을까.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갈등구조와 대립구조를 바탕으로 세워지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지상파 드라마가 늘 갖고 오는 그 공식적인 전개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즉 멜로가 없다면 그만한 멜로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고, 대립적이고 자극적이며 때로는 막장적인 전개가 없다면 그것 역시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다른 요소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미생>에서 멜로를 대체한 것은 이른바 ‘브로맨스’다. 팀원들 간의 끈끈한 정이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는 걸 <미생>은 보여줬다. 장그래(임시완)와 같은 동기인 한석율(변요한), 장백기(강하늘), 안영이(강소라)가 보여준 동기애가 그렇고, 영업3팀의 마치 친형 같은 김대리(김대명)와 아버지 같은 오차장(이성민)과의 절절한 동료애가 그렇다.

결국 오차장이 원 인터내셔널을 떠나게 되고 그것이 자신의 탓인 양 오열하는 장그래의 모습이나,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되지 못해 회사를 떠나게 된 장그래 앞에 오차장이 다시 나타나 같이 일하자는 장면은 그것이 일로 엮어져 있다는 사실만 빼놓고 보면 완벽한 멜로의 새로운 해석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또한 <미생>은 막장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극의 진중함을 보여줬지만 그 안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막장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극적인 캐릭터들이 활용됐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비리로 회사를 떠나게 된 박과장(김희원)이나, 입만 열면 성희롱에 가까운 폭언을 일삼는 마부장(손종학), 안영이의 상관으로 성차별적 시선을 보여주었던 하대리(전석호) 그리고 한석율의 상관으로 그의 공을 모두 가로채는 성대리(태인호) 같은 인물이 그들이다.

이들 암 유발 캐릭터들은 막장드라마의 ‘복장 터지는 캐릭터’들과 비견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갈등 요소들은 영업3팀이나 신입사원들에게 강력한 극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드라마가 그들의 작은 몰락, 이를테면 성대리의 불륜이 까발려지는 그런 상황을 통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는 막장드라마의 그것보다 훨씬 더 속 시원함을 안겨준다. 그것이 리얼한 현실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찌 보면 드라마란 어쩔 수 없이 막장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그 공식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형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그 공식을 어떻게 다르게 변주하며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형태로 제시하느냐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미생>은 확실히 그간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들의 공식 틀에서 성공적인 변주를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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