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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지만 힘 있는 ‘오만과 편견’의 진실한 매력
기사입력 :[ 2014-12-24 16:09 ]


‘오만과 편견’, 어쩌면 보도국보다도 더 진실하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2014년 MBC 월화드라마는 시청률 면에서건 작품성 면에서건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다. 후반부까지 원나라 여인천하만 줄기차게 보여줬던 <기황후>는 사실 이래저래 논란이 많았다. 그 뒤를 이은 <트라이앵글>과 <야경꾼일지>는 더 처참했다. 사실 두 작품 모두 시작 전에는 꽤 눈길을 끌었던 작품들이었다. <트라이앵글>은 <허준>, <올인>으로 대표되는 최완규 작가의 작품이었고 <야경꾼일지>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유령잡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내용으로 소재 자체는 꽤 흥미로운 팩션 사극이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시청률을 떠나 드라마 자체가 안일했고 게을렀다.

오히려 두 작품에 비해 조용하게 시작한 <오만과 편견>이 회를 거듭할수록 묘한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오만과 편견>은 시청자들이 검사와 비리에서 상상할 수 있는 드라마의 흐름과는 살짝 빗겨가 있다. 최근 들어 대중들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많은 열혈 검사, 비리 검사 들을 만나왔다. 그들은 대개 선과 악의 구도로 갈라지면서 드라마의 빠른 흐름을 주도하는 캐릭터들이었다.

그런 까닭에 초반 <오만과 편견>의 정적인 흐름이 조금 의아하긴 했다. 보통 이런 드라마들은 빠른 호흡으로 앞을 향해 치고나가는 직선적인 흐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은 흐름이 느릴 뿐더러 직선이 아닌 빙빙 도는 원을 그려가는 인상이었다.

이 느릿한 흐름의 수사극 <오만과 편견>은 인천 지검 민생안정팀이 배경인 작품이다. 우선 이 드라마의 중심에는 납치사건으로 동생을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수습 검사 한열무(백진희)가 있다. 그리고 열무와 과거 인연이 있는 남자이자 현재 그의 상사이며 늘 정도를 걷는 구동치(최진혁) 검사가 또 한 축을 맡는다. 또한 민생안정팀의 부장검사인 문희만(최민수)과 도박장에서 개평이나 뜯는 인간이지만 과거에는 뛰어난 법무팀장이었던 정창기(손창민)도 각각의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다. 민생안정팀의 수사관인 강수(이태환) 또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릴 정도의 큰 트라우마를 하나 지니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초반에 이들 민생안정팀 각각이 지닌 과거의 사건들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보다는 어린이집 폭력 사건, 직원 성추행 사건 등 약자가 당할 수밖에 없는 답답하고 부조리한 사건들을 풀어가는 검사들의 이야기를 매회 차근차근 보여주었다. 거기에 주인공인 열무와 동치가 가까워지면서 그리는 달달한 로맨스를 적당히 녹여냈다. 부장검사 문희만(최민수)의 괴팍한 면모는 이 드라마의 톡 쏘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이 제자리걸음 같은 동그라미 그리기 속에 <오만과 편견>의 흥미로운 지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이 조금씩 맞물리면서 겹쳐졌던 것. 그리고 태풍이 점점 몸집을 불리듯 이야기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다랗게 힘을 발휘해갔다.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넘어가는 지금 <오만과 편견>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드라마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우선 열무의 동생인 한별이와 유년시절의 강수가 함께 납치되었고 강수 대신 한별이가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후 동치와 열무와 강수는 힘을 합쳐 과거의 사건을 다시 파헤치고 이 납치사건과 연관된 인물이 희만과 창기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드라마의 덩치는 점점 더 커지는 중이다.



사실 과거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당시 재건이란 그룹의 비리를 캐던 특검 검사 희만과 재건의 비리를 아는 법무팀장 창기가 함께 차를 타고가던 중 실수로 뺑소니 사고를 낸 것이다. 그 뺑소니 사고로 어린 강수의 어머니가 죽는다. 하지만 이 사건이 커지면 재건의 비리를 캐는 특검이 어찌될지 몰라 희만은 창기를 도피시키고 사건을 묻으려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머니의 뺑소니 사고를 어린 강수가 목격했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희만이 속한 특검팀에서는 희만 모르게 특검이 끝날 때까지 강수를 납치해 가둬두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납치를 맡은 인물에게 주어진 정보는 노란 점퍼를 입은 사내아이가 전부였다. 납치범은 우연히 길을 잃은 한별과 강수가 똑같이 노란 점퍼를 입고 있는 걸 보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두 아이 모두 납치한다. 이 납치사건과 감금사건 끝에 한별은 목숨을 잃고 강수는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노란 점퍼를 입은 두 어린아이의 비극으로 끝난 과거 사건을 파헤치면서 동치는 수많은 벽에 부딪친다. 어떤 거대한 힘이 계속해서 그를 가로막는다. 그것은 바로 그가 속한 검찰이란 조직이었다. 이 사건이 표면에 드러나면 조직의 더럽고 섬뜩한 얼굴이 드러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 힘센 놈들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못 잡아.(희만).”

“그 허락 없이 하면요?(동치)”

“죽지요, 다치거나. 항상 반복되어왔던 이곳의 역사예요.(희만)”

<오만과 편견>은 이처럼 점점 이야기의 부피가 커지면 커질수록 의미도 깊어지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더구나 강수나 열무의 어머니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권력이나 거대한 힘에 의해 가족이 파괴된 평범한 약자들의 상처를 보여주는 데도 공을 들인다. 또한 같은 시간에 방송된 SBS <비밀의 문>처럼 작가가 주제를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아닌 잘 짜인 캐릭터와 플롯만으로도 작가가 얼마나 주제를 힘 있게 전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아마 2014년 MBC 월화드라마 중에서 <오만과 편견>이 으뜸인 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더구나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인간을 관찰하는 섬세한 시선과 조직의 부패와 그와 연관된 현실을 조용하지만 깨알같이 파고들어 이야기하는 면에서는 MBC보도국보다도 어쩌면 더 진실하다 하겠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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