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걸’, 진지하게 떠드는 관객이 많이 나왔으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정범의 <워킹걸>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건 이 영화가 특별히 좋기 때문도 아니고, 내가 이 영화의 내용과 주제에 완전히 동의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툭툭 던지는 이야깃거리를 그대로 떠나보내는 건 아쉽다.

우선 씨네21 이용철의 20자 평을 언급하고 싶다. '야한 영화를 기대했다. 헛웃음만 나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건 <워킹걸>이 의도와 일치한다. 물론 이 영화는 '헛웃음'보다는 '빵빵 터지는 진짜 웃음'을 의도했겠지만 모든 관객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워킹걸>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이 영화가 일반적인 섹스 코미디에서 사람들이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그런 종류의 '야함'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섹스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무언가 다른 것을 기대한다. 그것은 현실세계에서는 쇠고랑을 찰 수도 있는 위험한 터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워킹걸>은 가능한 모든 터부를 끌어들여 일상화시킨다. 그 어느 것도 감추어야 할 것이 아니고, 더럽지도 않다.

사실 이 영화의 코미디 대부분은 섹스의 일상화에서 출발한다. 섹스 토이는 애들이 보면 좀 민망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감추어야 할 건 아니다. 부부간의 섹스는 당연한 일상이어야 하고. 여기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최대한 누리는 게 좋다. 해고되어 섹스토이 사업을 시작한 워커홀릭 조여정은 섹스 토이를 사용해 섹스의 즐거움을 누리기 시작한 뒤부터 이 가능성을 최대한 이용하는데, 이는 마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공부벌레를 보는 거 같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익숙한 영화적 에로티시즘을 찾기는 어렵다. 대부분 에로티시즘 영화는 관음주의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남의 누드와 섹스 장면을 엿보려고 음침한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손짓을 하며 "어서 와! 우리 같이 이야기도 하고 놀자!"라고 외친다. 많은 관객들이 "내가 생각하는 야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영화의 단점이 되지는 않는다. 그냥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하는 다른 영화일 뿐이다.



<워킹걸>의 또다른 특징은, 이 영화가 무척 건전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불륜 같은 건 안 나온다. 성의 실험은 여전히 가족 안에 머문다. 조금 더 다양하게 나가도 '건전함'을 유지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영화는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굳이 이런 규칙들을 지키지 않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조여정의 캐릭터는 규칙 위반자가 아니라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그 안에서 1등을 먹는 게 체질인 사람이다. 이런 건전함은 당연하다.

영화의 건전함은 섹스라는 터부시되는 소재와 결합되어 은근히 진보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걸려 넘어진다. 건전함이 어느 순간부터 보수적인 가족중심주의로 끌려가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개념과 단어의 기계적인 연결만 존재한다. 남편이 아내의 사업 때문에 충격 먹고 땡깡을 부리긴 하지만, 섹스 토이 사업으로 성공한 주인공이 가족과 사업을 저울질하며 갈등하는 부분에서 영화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냥 그래야 할 거 같아서 그랬을 거라는 짐작이 전부이다.

이런 결말이 원작인 이탈리아 영화에서 왔는지 한국식으로 개조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갑갑함이 우리의 한계라고 보는 건 좀 아쉽다. <워킹걸>을 보고 진지하게 떠드는 관객들이 조금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뭔가 괜찮은 걸 할 거 같은데도 중간에 발목이 잡혀 버린 영화가 다음 영화의 디딤대가 되려면 관객들의 피드백이 필수적이다. 이 글 역시 그런 피드백이 되었으면 한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워킹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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