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가 제일 맏언니로서 나이 때문에 점수를 더 후하게 받아야 된다면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죠. 아이돌 친구들과 당당히 겨루고 싶어요. 김연아 선수로 인해 보는 눈이 너무나 높아져 있어서 저희가 따라가려면 너무나 숨이 찬데 실망시켜드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 SBS <일요일이 좋다>‘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서 박준금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지난 5월, 본인의 이름보다는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 엄마’ 또는 ‘문분홍 여사’로 잘 알려진 연기자 박준금 씨가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로 피겨 스케이팅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가장 우려됐던 점은 ‘혹시 나이로 인한 어드밴티지를 기대하면 어쩌나’였다. 어차피 정식 경기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니 만큼 연령대를 전혀 고려치 않은 칼 같은 심사가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만일 본인 스스로 나이 우대를 염두에 두고 도전에 뛰어들었다면 같은 연배의 시청자 입장에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니까.

게다가 일일극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비중 있는 역으로 출연 중인 터, 연습량이 관건일 피겨 스케이팅과 기나긴 일일극 녹화 사이의 적절한 시간 배분이 가능할지, 그리고 체력이 과연 따라주기는 할 것인지 이래저래 걱정이 앞설 밖에. 하지만 대부분의 출연자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을 게 분명한데다가 특히나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나 에프엑스의 크리스탈 같은 아이돌들은 멀리 해외까지 넘나들어야 하는 처지가 아니던가. 심지어 두 아이의 엄마인 연기자 이아현 역시 MBC <반짝반짝 빛나는>에 출연중인지라 그 어떤 힘겹다는 하소연도 통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1회가 방송된 후 요즘 우리나라 연예인 중 제일 바쁘다는 아이유가 연습 부족으로 심심한 연기를 펼치는 바람에 맹비난을 받고 보니 같은 오십 대로서 조마조마한 심정이 아닐 수 없었다.

솔직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성의 없이 앉아만 있다 돌아가는 중견 연예인들이 어디 한둘이었나. 물론 지난번 MBC <세바퀴>에 출연한 하춘화 씨처럼 일일이 까마득한 후배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격려해주는 바람직한 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 사전에 다른 출연자의 이력 정도는 숙지해두는 게 예의일진데 이도 모른다, 저도 모른다 하며 어른 노릇이나 하려 드는 ‘선생님’들을 하도 자주 보다 보니 혹여 박준금 씨 역시 민폐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던 것. 보나 안 보나 달인 김병만이며 유노윤호, 손담비 같은 연습 벌레들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하겠는가 말이다.




허나 그 모든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레이디 가가로 분한 박준금-김도환 커플이 첫 경연에서 아름다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한 크리스탈-이동훈 커플과 공동 2위라는 믿기 어려운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사실 스포츠로서의 기량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기술적인 면에서도 스피드에서도 우월했던 크리스탈 조가 백번 천 번 억울할 수 있는 결과다. 아마 신체 능력 최고치에 달한 십대 후반과 겨룰 50십대에 들어선 중년에게 어느 정도의 어드밴티지가 적용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로서는 몰라도 예술로서의 박준금 씨의 스케이팅은 찬사를 받아 부족함이 없었다. 파트너 박준금 씨가 자신의 어머니보다 무려 세 살이나 어리다는 김도환과 만들어낸 아라베스크 스파이럴이며 데스 스파이럴은 다소 실수가 있었다 해도 진정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런 훌륭한 연기를 펼치기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과 싸웠을지 생각해보면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열정만큼은 어느 아이돌 못지않은, 그리고 무엇보다 50대에게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게 해준 박준금 씨에게 무한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기에 언젠가는 탈락의 아픔을 겪겠지만 이 프로그램의 기본 취지인 피겨 스케이팅의 대중화에 한 몫을 하셨다는 점, 긍지로 느끼셔도 괜찮지 싶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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