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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왜 김정태의 등장이 이토록 반가울까
기사입력 :[ 2011-06-24 11:01 ]


- ‘리플리’, 악역이 반가운 드라마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내가 살다 살다 악역의 등장을 이토록 반기게 될 줄이야. 야비하기 짝이 없는 인간 말종 히라야마(김정태)가 등장해 장명훈(김승우)에게 장미리(이다해)의 실체를 하나 둘씩 까발리기 시작한 순간 이게 웬 일. 십년 묵은 체증이 뚫리는 양 속이 다 시원해지지 뭔가. 지난날 장미리에 필적할 팜므 파탈, MBC <이브의 모든 것>(2000년)의 허영미(김소연)만 해도 과거의 남자가 나타나 치근거리며 협박을 할 때만큼은 딱해보였었는데 이번 장미리의 경우는 동정심이 일기는커녕 오히려 천적 히라야마가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봐 걱정일 지경이다. 겁을 상실했지 싶은 장미리가 그나마 그 앞에서는 움츠러드는 기색이니까.

MBC <미스 리플리>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한 여자의 파란만장 스토리임을 몰랐던 건 아니다. 1955년 작 추리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의 주인공에서 가져온 제목이고 출세에 눈이 먼 리플리라는 남자가 사소한 거짓말 하나를 시작으로 나중에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자가당착에 빠져 결국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차피 엔딩이 가까워오면 모든 게 낱낱이 밝혀질 터, 까짓 거짓말,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하지만 아무리 각오를 했다한들 막가파식 장미리의 거짓말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첫 단추인 대학졸업장 위조는 나름 개연성이 있다. 취업에 실패했다가는 강제 출국당할 상황이고, 그래서 일본으로 돌아가 또 다시 지옥 같은 삶과 맞닥뜨릴 수는 없는 일이니 무슨 짓이든 저질러서라도 벼랑 끝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벌이는 행보들, 특히나 장명훈과 송유현(박유천)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만큼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왜 장명훈이 지닌 부와 명예에 만족을 못하고 언감생심 더 큰 떡을 탐을 내느냔 말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면 또 모를까, 두 서너 단계만 거치면 학력이며 집안 형편이며 친구 관계까지 소상히 드러나는 세상에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이젠 위조된 학력으로 대학 특강까지 하실 생각이라니, 이거야 원. 희대의 사기녀 신정아 흉내를 내려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녀는 졸업장은 못 얻었어도 전공은 했다지 않은가. 무엇보다 히라야마의 귀띔으로 내막을 짐작 했을 법도 하건만 애써 무시한 채 강의 준비를 돕는 장명훈의 순애보적인 사랑에는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이처럼 이 드라마가 사람 복장 터지게 만드는 결정타는 정작 거짓말을 해대는 장미리(이다해)에 있는 게 아니라 멍청하게 속아 넘어가는 주변 사람들에 있다. 실체를 알고서도 청혼을 한 장명훈은 두말 할 것도 없고 끊임없이 이용당하면서도 매번 또 다시 장미리를 용납하는 문희주(강혜정), 그리고 그처럼 장미리가 수차례 야멸치게 모욕을 줬음에도 지치지 않고 사랑을 구걸하는 송유현에게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를 영화화 한 <태양은 가득히>(1960)의 알랭 들롱이나 <리플리>(1999)의 맷 데이먼이 매력적인 악인이었던 것과는 달리 장미리가 마냥 불편하게만 다가오는 건 그녀가 바보 집단을 제 멋대로 가지고 노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하다못해 한 성깔 할만도 한 송유현의 새어머니인 이화(최명길) 여사조차 의심의 눈초리만 보낼 뿐 별 리액션이 없으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밖에.

신기한 건 히라야마의 등장으로 내 속만 뚫린 게 아니라 지지부진했던 드라마의 흐름에도 뭔가 돌파구가 생겼다는 점. 물꼬가 한 순간 터진 느낌이라고 할까? 거액의 수표를 건네며 이걸로 끝낸 걸로 알겠다는 장명훈에게 히라야마가 말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말이죠, ‘끝이라는 게 늘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있지 않겠습니까? 장미리가 있는 한.” 그렇다.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서라도, 장미리라는 캐릭터를 위해서라도, 연기자 이다해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히라야마는 반드시 돌아와야만 한다. 앞으로 그가 돌아와 펼칠 활약들을 기대해보자!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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