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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수 작가의 ‘펀치’에 한 방 맞고 싶은 이유
기사입력 :[ 2015-02-03 13:55 ]


‘펀치’, 대한민국 브레인들의 주먹다짐을 보는 맛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SBS 월화드라마 <펀치>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따귀와 펀치의 차이는 뭘까? 혹은 드라마에서 따귀 때리는 장면과 주먹에 얻어맞는 장면은 어떻게 다른 걸까?

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나온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건대 따귀와 펀치 모두 맞으면 아픈 건 틀림없다. 허나 맞은 후에 감정적인 변화가 미묘하게 다르다. 상대에게 뺨을 얻어맞았을 때는 귀가 멍해지면서 그 순간 스스로가 무척 초라하게 여겨진다. 그런 까닭에 드라마에서 따귀 때리는 장면은 상대에게 치욕감을 안겨주는 장면에 유용하다. 가장 흔한 클리셰는 따귀 맞는 불륜녀나 따귀 맞는 바람둥이 남자다.

반면에 주먹에 얻어맞을 때는 상대방의 주먹 세기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머리에서 쨍하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잠시 세상의 스위치가 깜빡 꺼졌다가 켜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 주먹에 얻어맞았을 때는 모욕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서둘러 정신을 차려 내가 다음 펀치를 날려야겠다는 강한 생존욕구가 싹튼다. 안 그러면 그대로 쓰러져서 넉다운 될 게 빤하니까 말이다.

드라마 <펀치> 또한 죽느냐 사느냐의 의미가 담긴 주먹질을 다룬다. 하지만 뒷골목 시정잡배들의 주먹질을 다룬 드라마는 아니다. 박경수 작가가 다루는 <펀치>의 세계는 대한민국의 날고 기는 브레인이 모여 있는 사법부다. 대한민국에서 공부로 성공한 사람들답게 이들은 거칠게 주먹질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날리는 펀치는 바로 법의 힘을 이용해서 후려치는 펀치다. 그리고 박경수 작가는 그 특유의 날렵한 대사와 빠른 전개로 이 우아하고 지적인 개싸움을 펼쳐놓는다.

“다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죠. 저도 총장님도.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최소한의 정의. 그게 법이죠. 우리 법대로 해요, 총장님.” (법무부장관 윤지숙)

<펀치>의 가장 우아한 인물은 법무부장관 윤지숙(최명길)이다. 그녀는 젊은 법조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 반대편에 탐욕스럽고 성공에 목숨을 거는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이 있다.

“서울지검에서 검사복 처음 입고 일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저 횡단보도 건너는 데 삼십년 넘게 걸렸다. ……정환아, 네 앞에 파란불은 내가 켜주끼다.” (검찰총장 이태준)



그리고 이 이태준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살아온 검사 박정환(김래원)이 있다. 박정환과 이태준 모두 진흙탕을 기어서 사법부까지 올라온 인물들이다. 이태준은 가난한 촌놈이 악착같이 공부해서 여기까지 왔고 박정환 또한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공부해서 성공한 남자다. 하지만 두 사람이 거울처럼 똑같지는 않다. 이태준에게는 정의로운 사람이 옆에 없지만 박정환에게는 이혼한 전처인 정의롭지만 답답한 검사 신하경(김아중)이 있다. 더구나 박정환은 이태준 옆에서 근묵자흑이었을 뿐 뼛속까지 속물은 아니다. 알고 보면 양심적인 검사였던 박정환은 사법부란 조직에서 암처럼 재빠르게 성장하면서 양심보다 속물스러운 성공의 단맛에 탐닉했을 따름이다. 자신은 진흙탕을 걸어왔지만 어린 딸인 예린이(김지영)에게는 꽃가마를 태워주는 삶을 꿈꾸면서 말이다.

이태준이 검찰총장에 취임한 후 박정환에게 문제가 터지면서 드라마 속 이야기는 비비 꼬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뇌종양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박정환은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의 인생이 삶과 죽음이라는 스위치가 깜빡깜빡 거리는 시기에 다다른 것이다. 삶의 스위치가 꺼지면 이제 박정환은 죽음으로 돌아갈 터였다.

그러나 박정환이 죽음 앞에서 갑자기 사법부의 부패를 일소하려는 성자 청소부가 되기로 결심한 건 아니다. 박정환이 뇌종양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는 동안 이태준과 이태준의 최측근 조강재(박혁권)가 짜고서 그의 전처 신하경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믿었던 상사에게 목덜미를 물어뜯긴 박정환은 분노한다.



“내가 고통스러운 건,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다음에도 너희 같은 놈들이 살아 있을 거라는 거, 그게 정말 슬퍼.” (박정환)

그 후 <펀치>는 단순히 박정환의 복수극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박정환이 던진 정의라는 돌멩이에 온갖 부패와 비리가 드러나는 사법부의 브레인들의 모습들을 묘사한다. 이태준과 조강재의 부정부패야 예상했던 거라 할지라도 윤지숙 장관 아들의 병역비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의 비리까지 드러나면서 드라마는 점점 점입가경에 접어든다. 그들은 앞서 말했듯 브레인답게 주먹질이 아닌 법과 언어와 쑥덕공론의 힘으로 펀치를 날린다. 그 펀치에 얻어맞아 잠시 타격을 입은 이들은 또다시 머리를 굴려 법과 언어와 쑥덕공론의 펀치를 날린다. 그러다 보면 주먹질만 없을 뿐 법적인 협박이 난무하는 이곳이 사법부인지 건달부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찾아온다.

대한민국 브레인들의 머리 굴리는 주먹다짐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다. 무엇보다 진지하고 무거운 드라마지만 <펀치>는 무거움 속으로 가라앉는 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박경수 작가의 필력 때문이다. 대사에 양념도 치고 그럴듯한 잠언도 뿌리고 유머도 곁들이며 속도감을 높이는 박경수 작가의 필력의 펀치에는 언제라도 한 방 맞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너무 빨리 때리지는 말고 눈물을 흘리거나 숨 돌릴 정도의 여유는 마련해줬으면 좋긴 하겠지만 말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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