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미힐미’ 지성의 비교대상은 현빈이 아니라 심은하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어쩌면 MBC 수목드라마 <킬미힐미>의 주인공 차도현을 연기하는 배우 지성의 비교대상은 <하이드 지킬 나>의 현빈이 아니라 ‘M’의 심은하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M’에서 마리가 M으로 변할 때 눈동자 빛깔이 초록색으로 바뀌듯 차도현이 신세기로 변할 때 눈동자 빛깔이 살짝 달라지는 순간이 찾아와서가 아니다. 혹은 ‘M’에서 M이 은갈치색 립스틱을 유행시킨 것처럼 차도현의 여고생 인격 안요나가 바른 발색 좋은 입술 틴트의 판매량이 급증해서가 아니다.

무려 21년 전인 1994년 MBC 납량특집 드라마로 방영된 ‘M’에서 심은하가 연기한 마리와 M은 단순히 착한 역과 악역으로 나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공존한다. 청순함과 팜므파탈의 매력이 공존하는 독특한 캐릭터였다고 할까? 거기에다 M은 알고 보면 다짜고짜 악령이 아니라 슬픈 과거의 기억을 지닌 낙태한 아이의 영혼이었다. 배우 심은하는 청순한 얼굴과 냉정한 팜프파탈의 얼굴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드라마 ‘M’을 통해 화려한 연기 변신을 한다.

한편 <킬미힐미>의 차도현과 신세기 또한 정극 같은 청순함과 ‘병맛’ 같은 옴므파탈의 매력을 각각 지니고 있다. 배우 지성은 극과 극에 서 있는 두 인물들의 매력을 놓치지 않는다. 차도현에서 신세기로 달라질 때의 눈빛이나 표정, 움직임까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 신세기 아이라인의 효과도 무시할 순 없지만 특히 차도현의 순수한 눈빛과 신세기의 싸늘하면서도 우수에 찬 눈빛은 정말 다른 사람의 것처럼 여겨진다.



더구나 <킬미힐미>에는 차도현과 신세기 사이에 다양한 인격들이 더 있다. 낭만적인 아저씨 페리박과 중2병에 시달리며 자살을 꿈꾸는 안요섭과 대책 없고 단순한 여고생 안요나 쌍둥이 남매가 그들이다. <킬미힐미>는 이 또 다른 인격들의 특성을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지성의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카이스트> 이후로 배우 지성의 연기가 딱히 실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노희경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화려한 시절>에서 모범생 장남 장석진으로 주연을 맡은 이후 그는 꽤 많은 드라마에서 자신의 몫을 다했다. 하지만 <킬미힐미>만큼 다채로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던 드라마는 처음이 아닐까 한다. 그는 드라마 속에서 언제나 점잖거나 혹은 엇나가도 진지한 모습은 간직한 인물들을 연기해 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좋은 배우지만 너무 모범생처럼 정형화된 연기라서 드라마가 끝난 이후엔 기억에 잘 남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킬미힐미>는 지성의 모범생 같은 연기가 다른 측면에서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드라마 ‘M’에서 심은하는 본능적인 연기의 감으로 청순한 얼굴과 팜므파탈의 얼굴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하지만 <킬미힐미>에서 지성이 보여주는 다양한 변신은 본능적인 감은 아니다.



지금껏 <킬미힐미>에 등장한 다양한 인격들을 보다보면 이 배우가 준비했을 각각 다른 인물들의 패턴들이 읽힌다. 착하고 부드러운 남자인 차도현, 어딘지 ‘병맛’스러운 초등학생의 정신세계가 남아 있지만 옴므파탈의 매력을 잃지 않는 신세기, 변두리 지역의 성인나이트클럽에서 마주칠 것 같은 페리박, 중2병에 걸려 있는 문학소년 같은 안요섭, 너무 발랄해서 오히려 위험해 보이는 여고생 안요나까지. 아마 <킬미힐미>를 위해 이 주연배우는 이 다양한 인물의 패턴을 연구하고, 각기 다른 인물들의 지성과 감성을 익히고, 그 인물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 지성이면 감천으로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 지성의 노력이 이 드라마의 재미는 물론이고 배우 자체의 재발견으로도 다가온다.

“차도현입니다.”

이 단순한 대사 한 마디를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재미가 왔다 갔다 하는 작품이 바로 <킬미힐미>다. 그리고 드라마가 중반에 이른 지금 각각 다른 인격을 품은 지성의 “차도현입니다”는 꽤나 성공적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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