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 어쩌면 이 관음의 자리에 우리가 있는지도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SBS 월화극 <풍문으로 들었소>는 드라마 <밀회>를 만들었던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피디가 다시 모여 만든 드라마이다. <밀회>는 스무살 청년과 사십대 유부녀의 사랑이라는 불륜극의 외피 속에 예술과 계급에 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드라마였다. <밀회>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호로비츠를 위하여>처럼 고급예술에 재능을 지닌 가난한 젊은이가 상류층에 발탁되는 서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가 우아한 상류사회로 올라가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드라마는 상류사회의 위선을 까발리면서, 예술재단 임원으로 일하면서 이사장 일가의 온갖 추악한 뒤처리를 해주던 중년여성의 삶이 와장창 무너져 내리는 이야기였다.

<풍문으로 들었소>도 대한민국 0.1%의 초일류 집안 아들과 평범한 집안 딸의 사랑이라는 신데렐라 막장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상류층의 위선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이다. 흔히 신데렐라 드라마는 상류층에 대한 선망을 품은 채, 계층상승의 욕망을 대리하거나 공유하지만, <풍문으로 들었소>는 상류층의 삶에 선망이 아닌 냉소의 시선을 드리운다. 그들은 물려받은 최상류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드라마는 이들의 위선이 청춘남녀의 사랑이라는 가장 순수한 열정과 부딪히며 드러나는 민망한 속살을 우스꽝스럽게 담는다. 드라마는 사랑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연인들의 나이를 청소년으로 낮추고, 특이한 음악과 엿보기 효과를 강조한 부분조명을 통해 부조리극의 분위기를 한층 강화한다.

◆ 초일류 집안, 이들이 사는 법

<풍문으로 들었소>가 묘사하는 최상류층은 단지 돈이 많은 집안이 아니다. 인상(이준)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서울법대를 졸업한 법조명문가로 아버지인 한정호(유준상)은 국내 1위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다. 대법관 출신 전직총리를 고액 연봉으로 섭외해 고문으로 앉히고, 현재의 고문을 총리 내정자로 내보낸다. 한송은 전·현직 총리와 장관들이 들고 나는 회전문 인사의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다. 인상의 집안이 대한민국 보수권력의 핵심 허브인 셈이다. 그러한 가풍에 걸맞게 집안의 인테리어 역시 범상치 않다. 전통적인 한옥을 통째로 옮겨 개조한 대저택으로, 매우 특별한 권위를 자아낸다.

인상의 엄마 최연희(유호정)는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재산이나 권력이 아닌 지성과 자격을 물려주고자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러나 그 지성과 자격은 다름 아닌 ‘더 공고한 재산과 권력’을 뜻한다.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기 무섭게 집안에 뚜쟁이와 점쟁이가 드나든다. 한정호는 ‘재력은 3대 이내, 관직은 장차관급도 전직은 곤란하다’는 원칙을 말한다. 최연희는 부적을 지니면서 “법리를 다루는 집안에서 미신이라니, 천박하게...”라며 친구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한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천박해 보이는 것’이다.



인상은 “왜 너희 집은 부자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그냥 할아버지 때부터 부자였다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이 3대째 세습되며 특권층을 형성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상류층들은 상류층들끼리 정기적인 사교모임을 통해 교제하며 혼맥을 통해 기득권이 분산되지 않도록 한다. 인상은 자신이 왜 마지막 사법고시의 합격자가 되어야 하는 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할아버지 때부터 정해진 삶을, 부모가 관리하는 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인상이 오로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유일한 행동이 있었으니, 바로 봄(고아성)을 사랑한 것이다. 서툰 피임은 임신으로 이어졌고, 인상의 집에 만삭이 된 봄이 들이닥친다. 처음으로 인상의 집에 온 봄은 급기야 최연희의 침대에서 아기를 낳는다.

◆ 속물적 욕망을 비웃는 블랙코미디

한국에서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는 익숙하지 않다. 가장 논쟁적인 블랙코미디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었다. 영화는 신처럼 떠받들어지던 최고 권력자가 술자리에서 심복의 총에 맞아 죽던 마지막 날을 싸늘한 부조리극으로 그렸다. 영화는 죽은 권력자는 물론이고, 그를 죽이는 ‘거사’를 벌이는 자들에게도 냉소의 시선을 드리웠다. 인물들을 내려다보는 독특한 카메라 앵글은 그들이 진지할수록 우스워지는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영화는 마지막 내레이션까지 극중의 부도덕한 인물의 목소리를 씀으로써, 어떤 인물에게도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독한 풍자를 수행하였다. 심지어 영화 앞뒤로 붙어 있던 기록화면은 사건당시 오열하였던 국민들에게까지 조롱을 퍼붓는 듯한 모멸감을 자아냈다. 익숙지 않은 정서였고,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였으며, 법원은 박지만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앞뒤 기록화면을 자르도록 하였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관객들에게 외면 받았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취했던 블랙코미디란 장르를 안방에 안착시키는 비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권력과 지식을 틀어쥐고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특권층의 비리와 위선을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현대판 <양반전>인 셈이다. 그들은 기득권을 침해당하지 않고 대물림하기를 원하는 속물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그러한 욕망을 발설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눌러오던 본심이 폭발하는 순간이 있다. 최연희는 봄에게 “여기가 감히 너 같은 게 끼어들 데야? 이런 뻔뻔하고 천박한!”이라는 막장 대사를 발작적으로 쏟아낸다.

그는 언제나 미소가면을 쓴 채 살아가기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채 누군가와 대면하는 것에 극도의 불안감을 나타낸다. 봄의 부모와의 첫 대면에서 그는 “나는 인상의 엄마가 아니다”라는 유아적인 거짓말을 해댄다. 한정호는 손자의 탄생 앞에서 사건을 부인하고 의미를 축소하기 위하여 온갖 술수를 다 쓰지만, 다른 사람의 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손자 앞에서 헤벌쭉 입 꼬리가 올라가는 자신의 감정도 인정할 수 없다. 번지르르한 말로 봄의 부모를 매수하려는 속내를 드러내다가 아들에 의해 비윤리성을 지적당하자, 아들에게 죽일 듯이 덤벼든다. 인상의 부모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자신의 욕망과 반대되는 행위를 하거나, 그들의 꼼수가 봄과 인상의 정당한 요구에 부딪혀 격파되거나, 가까스로 참아왔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은 실소와 쾌감을 자아낸다.

드라마는 풍자의 예봉을 비단 최상류층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그들만큼 부자는 아니지만, 속물적인 욕망과 허세의 측면으로 보자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봄의 아버지는 기회주의자의 속성을 지닌다. 남의 눈이 두려워 만삭이 된 봄을 외가에 보낸 뒤 집에 오는 것도 꺼렸던 그는 이를 ‘미개한 한국사회 탓’으로 말한다. (봄의 엄마는 “당신이 제일 미개해”라고 말한다.) 인상의 집이 부자였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드러내다 물경 17억 5천 만 원의 합의금을 보자 “우리가 부자와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에 휩싸여 있었다”는 소리를 한다. 해직노동자이자 시민운동 활동가라는 봄의 삼촌도 이에 동조한다. 한정호의 비서들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교묘히 섞어 쓰며 한정호에게 유모를 빼앗기고 볼멘소리를 하는 동료변호사에게 “그런다고 대표님과 동급이라도 된 줄 아냐”며 뒷말을 한다. 절대적인 강자에게 대를 이은 충성을 바치면서, ‘첩이 첩 꼴을 못 보는’ 질시를 보이는 것이다.



드라마가 최상류층은 물론이고 다양한 중간계급의 사람들에게까지 풍자의 시선을 드리움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드라마 속에 동의할 수 있는 윤리적 주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봄과 인상은 순수한 사랑을 품은 주체들이고, 봄의 엄마와 가사도우미는 순수한 사랑과 아이의 탄생 앞에서 보편적인 윤리를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봄의 엄마는 거액의 합의금 앞에서 흔들렸던 자신을 드러내면서 “왜 돈으로 사람을 시험하느냐?”고 소리친다. 가사도우미는 매순간 가장 안정적인 인품을 보여준다.

◆ 아랫사람들, 엿보기, 그리고 풍문

인상의 집안에는 가사도우미를 비롯하여 비서, 집사, 유모, 독선생 등 아랫사람들이 즐비하다. 드라마는 일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이들이 주인과 맺는 관계나 이들끼리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 역시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이나 <하녀>를 연상시킨다.) 드라마가 주목하듯 아랫사람들은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로봇이 아니며, 주인과 기계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최연희가 봄에게 막말을 쏟아 부을 때, 비서는 단호하게 최연희의 입을 틀어막는다. 한정호가 “인상과 만나게 해 달라, 아기에게 젖을 물리게 해달라”는 봄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주위를 빙 둘러싼 아랫사람들의 눈 때문이다.



독선생과 집사와 가사도우미는 긴밀하게 협조하여 주인이 금지한 인상과 봄의 상봉을 성사시킨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금지와 아랫사람들의 허용 사이에서 자라난 인상은 그 넓은 저택에서 가사도우미의 방을 가장 편안하게 여긴다. 봄과 함께 택시를 탄 인상이 기사에게 키스를 하겠다며 허락을 받고, 기사가 그들을 힐끗 곁눈질 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주제를 함축한다.

주인은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아랫사람에게 제지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치를 봐야 하며, 때로는 교섭해야 한다. 아랫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월급 주는 사람의 편”이긴 하지만, 때로는 주인을 배신하고 때로는 압박하며 때로는 관음 한다. 어쩌면 그 관음의 자리에 아랫사람들이자 시청자인 우리가 놓여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드라마의 제목과 ‘우~우우우~풍문으로 들었소’라는 주제음악은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허세에 찌든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풍문’이고, 그들의 실체를 알려주는 것 역시 아랫사람들의 엿보기를 통한 ‘풍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대중적 블랙코미디를 표방한 TV드라마의 제목에 ‘풍문’이란 키워드가 쓰인 것은 매우 적확해 보인다. 권력층의 비리와 위선은 가장 풍자가 필요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구름 같은 이야기’가 아니던가!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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