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유환, ‘낙하산 투입’ 선입견을 깨트리다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드라마의 성패는 사실상 주연 연기자들 보다는 감칠맛 나는 조연들의 연기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한 드라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언제나 개성 넘치는 조연들이 대거 포진해 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런 역할은 대부분 연륜 있는 중견 연기자들의 몫이다. 신구, 윤여정, 박원숙, 임현식, 나문희, 김창환, 김영옥 씨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연기자들이 탄탄한 캐릭터로 뒷받침 해주다보면 드라마가 탄력을 받아 어느 결에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솔직히 아무리 톱스타급 주연들을 총망라 했다 한들 드라마에 주인공들의 삼각, 사각 또는 순애보적인 사랑 얘기나 티격태격만 있다면 무슨 볼 재미가 있겠는가.

그나마 젊은 층 조연 연기자가 극의 재미를 더하는 경우는 이른바 ‘비서’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최근 MBC <최고의 사랑>에서 독고진(차승원)의 정감 있고 순수한 매니저 김재석 역으로 화제가 된 임지규는 <역전의 여왕>에서도 구용식(박시후)의 측근 강우 역을 맡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바 있다. 그런가 하면 SBS <시크릿 가든>의 김비서(김성오)도 없어서는 안 될 흥미진진한 캐릭터였고, 불안 불안한 전개를 펼치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도 그나마 기억에 남는 조연은 강지환의 비서 박훈(권세인)이 아니었을까?

그에 비하면 주인공의 형제, 자매 역할은 행동반경이 ‘집’으로 국한되어서인지 있으나마나 한 때가 태반이다. 물론 드라마가 시작될 때는 각자 이야깃거리를 안고 야심차게 출발하겠지만 회가 거듭되는 동안 캐릭터가 힘을 잃고 스러지는 경우를 그간 심심찮게 자주 볼 수 있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면,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의 여동생 김희원(최윤소)의 경우는 극 중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려 오죽하면 작가가 아예 이 캐릭터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지 싶다는 뒷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MBC <반짝반짝 빛나는>의 한서우(박유환)는 차별점이 확실한 캐릭터다. 시작은 미미하기 그지없었으나 한 회, 한 회 거듭되는 사이 힘을 더해 최근의 존재감은 어느 중견 연기자 못지않아졌으니 말이다. 주인공 정원(김현주)과 금란(이유리)의 아버지 한지웅(장용)의 무려 43 년이나 어린 이복동생이라니, 인물 설정부터가 공감을 얻기 어려운데다가 연기도 어설퍼 처음엔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였다.

게다가 이 생소한 얼굴이 바로 KBS <성균관 스캔들>로 정점을 찍은 박유천의 동생이라지 않나. 그런 배경이 오히려 신인 연기자 박유환에겐 독이 되었을 수도 있다. 형의 인기를 업은 낙하산 투입이 아닌가 하는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분명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대본의 덕이든, 연출의 덕이든 어쨌거나 이제 부서질 것 같은 감성을 지닌 한서우라는 인물은 이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연기력도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해 그의 특이한 어조의 대사는 중독성이 있을 정도니까. 몇 주 째 아예 등장도 못하고 있는 신림동 집 막내 미란(한지우)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존재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서우는 드라마 안에서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과 유대가 이루어지고 있는가하면, 또 여러 갈래의 연결 고리들이 전혀 어색함이 없는 캐릭터다. 평창동 본가 식구들과도 뭔가 하나쯤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인데다가 과외 선생인 신림동 집 하숙생 강대범(강동호)과 친밀한 사이임은 말할 것도 없고 막내딸 미란도 친구이며 하다못해 드라마의 주 무대인 출판사에도 짝사랑의 대상이라는 인연의 끈이 있지 않은가. 어떤 배역과 맞붙여 놔도 다 잘 어울리니 그도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급기야 송승준(김석훈) 편집장의 모친이자 이 드라마의 폭풍의 핵이라 할 사채업자 백곰(김지영)까지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출판사 ‘지혜의 숲’을 집어 삼킬 음모에 한서우의 어머니를 이용할 심산인 것이다. 거기에 기다렸다는 듯 만만치 않은 포스의 어머니 이지수(최수린)도 등장해 긴장을 더하고 있다. 드라마의 중심이야 늘 그렇듯 주인공들 차지이지만 곁가지인 한서우의 이야기도 주인공들의 이야기 못지않게 흥미진진해졌다. 작가가 틀을 만들어주고 연출가가 길을 열어주니 연기자가 영리하게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보기 드문 경우라 하겠다. 이처럼 모처럼의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낸 박유환 군, 가히 칭찬받아 마땅한 신인 연기자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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