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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리맘’, 공중그네 서커스를 보는 기분이 든다
기사입력 :[ 2015-04-09 15:18 ]


‘앵그리맘’, 무겁지만 발랄한 희한한 드라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안 보고 살기란 생각보다 쉽다. 눈 한 번 딱 감고 외면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내 가족 내 주변사람에게만 잘하면 세상은 꽤 살 만하고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세상에 뭐 이상한 일이 한 두 개가? 따지면 골만 아프지.” (조강자의 친구, 한공주)

드라마는 그렇게 답답한 현실 외면에 좋은 도피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드라마는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속내를 충실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보고 있으면 답답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긴박한 사건과 단단한 플롯, 그리고 영상이 보여주는 흡인력에 흠뻑 빠져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를 본 뒤에는 무언가 묵직한 통증 같은 여운이 남는다. TV 속의 그 이야기 안에 실은 드라마보다 더 몇 배는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의 그늘이 보이기 때문이다.

2014년 MBC 극본공모 당선작 <앵그리맘>은 휴식을 주기보다 현실에 충실한 그런 드라마 중 하나다. <앵그리맘>은 우리가 외면하는 혹은 철저히 믿고 싶은 착하고 순진한 10대 아이들이란 환상을 깨놓는다(아니 다들 현실을 알고 있지만 그걸 알고 싶지 않아 일부러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온실에서만 자란 아이들은 온실에서만 살아요? 학교가 정글이고, 세상이 정글인데. 집만 온실이면 뭐해요. 그래봤자 밖에 나가면 잡아먹힐게 뻔한데.” (조강자)

<앵그리맘>에 등장하는 명문 사립고 명성고의 아이들은 따돌림은 기본이고 갑과 을의 관계를 충실히 알고 있고 그에 따라 충실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이다. 이 학교의 싸움짱인 고동복(지수)을 재단 이사장의 아들 홍상태(바로)의 하청시스템이라고 표현하는 아이들이니 말이다.

<앵그리맘>의 앵그리맘 조강자(김희선)는 딸 오아란의 폭행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고교생으로 위장해 딸의 학교에 잠입한다. 여고시절 알아주는 싸움짱이었던 조강자는 생각보다 손쉽게 딸에게 주먹을 휘두른 놈이 싸움짱 고복동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런데 쉽게 해결된 것 같던 문제는 딸의 절친 진이경(윤예주)의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죽음을 발판으로 전혀 다른 맥락으로 움직인다.



친구의 자살을 의심하는 오아란은 전학을 가는 대신 명성고로 돌아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 한다. 다시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딸을 말리려던 조강자 또한 어느새 사건의 진상과 점점 가까워진다. 조강자가 알고 있던 학교라는 세계보다 더 무서운 세계의 사람들이 그 뒤에 있음을 말이다.

<앵그리맘>은 명문사립고 명성고의 재단 쪽 사람들을 소름끼칠 만큼 살벌하게 그린다. 그리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우리는 10대 아이들의 문제가 실은 어른들의 문제를 통해 탄생한 것임을 은연중에 깨닫는다. 갓난아이가 어른들을 통해 말을 배우듯, 10대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통해 갑과 을로 이루어진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배운다.

“왜 싸웠냐고 물었죠? 그래서 싸운 거예요. 아무도 지켜주지 않으니까. 보호자가 보호자 노릇을 못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싸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조강자)

명성고의 법인기획실장이자 교육부장관의 숨겨진 아들이며 <앵그리맘>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원인인 도정우(김태훈)는 그런 면에서 괴물 같은 존재다. 그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어른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비뚤어진 마음 그대로 자란 이기적인 아이의 내면을 지녔다. 그는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배려하는 진짜 어른의 여유로운 마음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앵그리맘>의 여주인공 조강자는 그런 도정우와 대비된다. 싸움짱 여고생에 현재는 여고생 흉내에 성질도 십대소녀처럼 확확 불타오르지만 그녀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딸의 폭행사건의 진범일지도 모르는 소년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줄 만큼 그녀는 어른스러운 내면을 지녔다.

조강자가 이처럼 어른다운 어른으로 성장한 데는 어른스러운 어른을 만났기 때문이다. 17년 전 소년재판에서 만난 판사 박진호(전국환)는 이런 어른 멘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인물이다. 그가 조강자에게 남기는 대사 한 마디는 그래서 꽤 의미심장하다.

“세상에 덜 사랑받아서 인간 안 되는 사람은 있어도 세상에 덜 맞아서 인간 안 되는 사람은 없다.” (박진호 판사)

그런데 이 무거운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 <앵그리맘>은 좀 이상한 면이 있다. 무겁고 어두운 현실을 바탕에 두지만 시청하는 내내 마음이 답답해지는 그런 류의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전반적인 느낌은 발랄한 코믹에 가깝다. 놀랍게도 시종일관 이 드라마는 무거움과 가벼움, 진지함과 발랄함을 곡예처럼 오간다. 조강자의 친구인 한공주(고수희)는 이런 역할을 톡톡히 하며 여주인공 조강자 또한 기본적으로는 코믹한 캐릭터다. 그러다보니 <앵그리맘>을 시청할 때의 기분은 오히려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공중그네를 타는 서커스를 관람하는 기분에 가까워진다. 물론 이 흥미진진한 서커스를 통해 보여주려는 메시지는 확실하지만 말이다.

“나 이제 애 아니고 애 엄마야.” (조강자)

누구나 아이의 엄마아빠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이를 지켜주는 엄마아빠가 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노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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