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이순신 등장에 반전을 기대하는 까닭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KBS <징비록>에 드디어 이순신(김석훈)이 등장했다. 도성을 버리고 개성으로 파천한 것도 모자라 개성까지도 버리고 또 평양으로 도망치려는 선조(김태우)의 행보는 400여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시청자들에게도 복장을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류성룡(김상중)은 선조에게 이런 행보가 훗날 역사에 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남을 것이라 경고했지만, 선조는 끝없이 왕이 잡히면 나라는 끝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도망갈 궁리만 한다.

도성을 불태운 백성들을 ‘도적’이라고 부르며 제 살 길만을 찾는 선조 앞에서 류성룡은 실로 답답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아마도 이 마음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똑같이 전해질 것이다. 그러니 피하지만 말고 맞서 싸우자는 류성룡의 고언에 심정적인 지지를 하게 된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참변을 되짚으며 그 고통스러운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피로 써나간 기록이다. 그러니 당대의 이야기라도 선조의 선택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나라의 위기는 후세들이 보기에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파천을 행하는 왕을 향해 던지는 류성룡의 토로, “도대체 이런 아비가 어디 있단 말인가!”하는 통탄은 아프게도 현재에 와 닿는다.

이러한 기록을 되짚으며 그 고통스러운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로서는 자칫 보고 싶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나마 임진왜란의 참변을 우리가 보게 되는 건 그래도 이 전쟁의 반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과 신하들이 버린 나라에 의병들이 다시 일어나고, 이순신처럼 조정에 의해 버려진 장수가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던져 백성들을 구하는 이야기. 이 반전은 답답하고 고통스런 저 지도층들의 실정을 보는 답답한 심정에 한 줄기 숨통을 틔워준다. 우리가 이순신을 그토록 기다리는 이유는 그래서다.

드디어 등장한 이순신은 “출정하라!”는 단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이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모두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출정’이 아닌 ‘퇴각’만을 반복해서 보아온 시청자들로서는 이제 그가 앞으로 써나갈 반전의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저 남도의 바다 위에서 벌어질 드라마틱한 승전보에 대한 기대감.

선조 역할을 연기한 김태우는 보기 드문 몰입으로 입체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연민이 가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는 이들의 복장을 터트리는 답답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선조는 드라마적으로 보면 꾹꾹 눌러놓은 감정으로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 되어준다. 하지만 이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터져야 드라마의 폭발력을 갖게 된다.

그 힘을 보여주는 인물로서 이순신만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껏 선조가 눌러놓은 감정을 풀어내주는 이순신의 등장에 드라마는 훨씬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드라마가 이순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류성룡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순신과 함께 류성룡을 그려낼 것인가는 숙제로 남았다. 하지만 적어도 시청자들에게 선조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존재로서 이순신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올라있는 게 사실이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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