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녀’, 방패막이 현영 없어 아쉽다”

[엔터미디어=정석희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GET IT, YOUR LIFE" 장대 같은 장맛비가 쏟아지던 며칠 전 오후, 상쾌한 박하 향 같은 김정민을 만났다. On Style , QTV <순위 정하는 여자(이하 순정녀)>, KBS joy <커플쇼! 결혼해도 될까요? >까지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종횡무진 누비며, 이제는 대중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그녀. 치열한 20대를 살아가고 있는 김정민의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인터뷰 정석희 칼럼니스트 정리 최정은)

정석희: On Style 이후 달라졌다는 소리, 듣고 있지 않나요? 뷰티 프로그램이라서 그런지 많이 예뻐지기도 했고, 성숙해지기도 했고, 또 더 당당해졌다는 느낌입니다.

김정민: 네, 요즘 그런 얘기 가끔 들어요.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제가 예능 프로그램 쪽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주변 여러분들 덕이에요. 누구보다 <겟 잇 뷰티> 메인 MC 유진 씨의 도움이 크죠. 뷰티 전문가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워낙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다 보니 중간에 대본에 없는 질문도 불쑥불쑥 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알게 모르게 유진 씨 분량을 침범했다 싶은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그런데 유진 씨는 언짢게 여기는커녕 오히려 늘 웃으며 격려해주세요. 저로서는 그런 점들이 정말, 정말 고맙죠. 저는 녹화 중에 청중인 베러걸(better girl)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곤 해요. 표정을 살피다가 아, 보충설명이 필요하겠구나 싶어지면 제 편에서 전문가에게 다시 질문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정석희: 사실은 <겟 잇 뷰티>를 통해 모처럼 이미지가 호감으로 바뀐 터라 김정민 씨가 <순정녀>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긴 호흡으로 보자면 이미지 회복이 관건이니까요.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구애정(공효진)도 한번 버린 이미지 때문에 내내 고생하잖아요. <순정녀> 초반이 ‘당당한 여성들의 수다’였다면 중반부터는 분위기가 좀 달라졌잖아요? 야하게 흘러간다고 할까? 자극적인 이야기들이나 남자들에게 고가의 선물 받은 이야기 같은 것들이 저로서는 아쉽더군요.

김정민: 시즌이 넘어가며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영 씨의 부재도 컸지 싶어요. <순정녀> 초반의 저의 모습은 100% 설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의 본래의 모습도 아닌데요. 아무리 리얼이 강조된 예능이라 해도 역할 분담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처음 <순정녀> 시놉시스를 봤을 때 이건 누군가의 ‘살신성인’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작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이 가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그렇게 버릇없고 당돌하게 독설을 날리는 제가 초반에 그나마 비난을 덜 받을 수 있었던 건 모두가 현영 씨 덕이었어요. <순정녀>에서 저는 덤비기 잘하고 솔직한 역할이긴 하지만 언니들이 뭐라고 하면 ‘깨갱’하고 물러서지 죽자고 달려들지는 않거든요. 김새롬 씨나 제가 언니들을 ‘앙’ 하고 물면 그걸 현영 씨가 언니로서 혼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곤 했죠. 아무리 밉상 짓을 해도 따끔하게 혼이 나니까, 그럼 시청자 입장에서도 감정 정리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발전을 했던 건데 방패막이를 해주던 현영 씨가 안 계시니 달려들었을 때 정리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잘 해 보려고 왔던 패널이 상처만 받고 가는 경우도 생기고요. 이제는 제가 어느 정도 현영 씨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정석희: 현영 씨가 패널 석에 앉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MC 역할을 했잖아요?

김정민: 맞아요. 현영 씨의 빈자리가 저에게는 참 큽니다. 그래서 요즘 슬럼프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과도기쯤 될까요? 제작진이 원하는 모습과 제 실제 모습 사이에서 고민이 많아요. 연기할 적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연기를 하다 보면 몇 가지 배역 중에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도 있는데요. 그러면 저는 항상 독기 있고 밉상인 역을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누구보다 제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일 거예요. 제 생김새가 누가 보든 순하게 보이지는 않잖아요. 강하고, 때론 쌀쌀맞아 보이니까요. 드라마라는 장르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연습하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본래 제가 가진 이미지를 연기하는 편이 여러모로 옳다 여겼던 거죠. 예능도 마찬가지고요.

정석희: 남들이 보기에는 거침없이 잘 뻗어나가고 있는데 본인으로서는 성이 안차는 부분이 있나 보죠?

김정민: 얼마 전에 또 저를 비난의 글들이 많이 올라왔어요. 넌 왜 만날 남들에게는 독설을 날리면서 정작 네 자신을 누가 비난하면 받아들이지 못하느냐는 지적이세요. 사실 변명하자면 그날 편집 전의 일반인 인터뷰 내용은 훨씬 정도가 심했거든요. 저를 정말 난도질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리액션이 평소보다 더 컸던 거예요. 울컥하기도 했지만 시청자들께 재미를 주고자 리액션을 더 크게 해줘야지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일반인 멘트는 적절한 수준으로 편집되고 제 리액션은 그대로 나간 겁니다. 일반인을 보호해야하는 제작진의 입장을 백번 이해는 하지만 한편으론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사희 씨와 갈등 구조로 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안까지 들어와서 더 심란했죠. 그래서 이번엔 제작진에게 처음으로 어필을 좀 했습니다. 그래도 <순정녀>는 대중에게 저를 알려준 고향 같은 소중한 프로그램이에요.

정석희: 사희 씨와는 원래 알던 사이인가요? SBS <시크릿 가든>에서 김사랑 씨 친구로 나왔던 분이죠?

김정민: 사희 씨와는 SBS <사랑과 야망> 오디션에서 뵈었으니 꽤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죠. 그러다 <순정녀>에서 만났는데 열심히 하려고 준비를 많이 해온 게 느껴지더라고요. 열심히 응원하고 있으니까 용기를 내서 감춰진 매력을 더 꺼내 보여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석희: <사랑과 야망>이 김수현 작가 작품인데요. 워낙 대단한 대선배들과 하는 연기인지라 숨 한번 제대로 쉬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김정민: 그때는 진짜 개미처럼 열심히 했어요. 뭘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은 감히 못 했고요. 그저 시키는 것의 반의반만이라도 하자며, 그 팀에 속해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둘도 없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정석희: 눈 매서운 김수현 작가님이 그냥 뽑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김정민: 눈빛 때문에 캐스팅 되지 않았을까요? 대부분 저를 캐스팅 하실 때는 눈빛과 키를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정석희: 그래요. 중학교 때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 #1>의 박세리 역할로 연기를 시작했잖아요? 그 조그맣고 앙칼지던 소녀가 이렇게 키가 클 줄이야! 그런데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사랑과 야망>의 수경이나 SBS <왕과 나>의 버들이 등 조연이라도 스쳐지나가는 역할이 아니라 기억에 남는 조연이었어요.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에서도 그렇고요……연기에 대한 기대나 희망은 없는지요?

김정민: 우연한 길거리 캐스팅으로 기획사에 들어갔어요. 운이 좋아 오디션을 보고 마침 오랜만에 제작되는 KBS 청소년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죠. 최근에도 드라마나 뮤지컬 등 좋은 작품을 할 기회는 있었어요. 물론 저도 아쉬움이 남죠. 그런데 저는 예능 프로그램을 홍보의 개념으로 하고 있지 않아요. 지금 상황에서 드라마를 하게 되면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을 다 정리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어렵거든요. 다시 돌아왔을 때 게스트가 되고 싶지도 않고요. 사실 배우가 예능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이방인 대접을 받기 마련인데 저는 이제야 겨우 그런 시선에서 벗어난 상태잖아요. 예능인, 나아가서는 MC가 제 소망이에요.



정석희: 혹시 롤 모델이라든가 존경하는 MC가 있나요?

김정민: KBS joy <커플쇼! 결혼해도 될까요? >를 신동엽, 박지윤 씨와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신동엽 씨가 메인이시라기에 무조건 한다고 했죠. 한동안 이러다 어느 세월에 MC가 되나 하는 생각으로 심란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러던 찰라, 신동엽 씨와 호흡을 맞춰가며 다행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신동엽 씨가 한참 진행을 하다가 저에게 시선을 주실 때가 있어요. 그게 호흡을 맞추는 순간인데요. 이어서 말 하라는 타이밍이에요. 저는 그 순간이 다른 이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짜릿하고 행복해요.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평생의 선망의 대상과 감히 호흡을 맞추는 거잖아요!

정석희: <반올림> 때가 어릴 때였는데 주인공 고아라와 부딪히는 밉상 역할이 싫지 않았나요? 연기자라면 모두 주인공에 대한 욕심을 품기 마련이잖아요.

김정민: 아니에요. 저는 오디션 때도 박세리 역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캐릭터가 좋기도 했지만 제 분위기가 그 역에 제 격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나쁜 아이로만 보였는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나중에 보니 고민도 있고 속도 깊고요. 부잣집이라는 사실만 빼면 저와 모든 게 다 같았죠.

정석희: <겟 잇 뷰티>를 보다 보면 베러걸들이라든지, 초대된 전문가들과의 소통에서 김정민 씨 역할이 크더군요.

김정민: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일단 <겟 잇 뷰티>는 제작진의 노고가 상상 이상이에요. 워낙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준비하시죠. 늘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멋 내는 방법을 생각보다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저야 어려서부터 연예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메이크업하고 옷 입는 게 생활 같은 건데요, 알고 보니 제 또래나 언니들조차 너무나 모르는 게 많은 거예요. 대본을 보며 이런 소재는 너무 기초적이 아닐까 하는 것들에서 뜨거운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런 것조차 몰랐던 분들이 많았구나 싶어 보람을 느끼게 되죠. 워낙 옷을 좋아하다 보니 얼마 전부터 아예 쇼핑몰도 운영하게 되었어요. 직접 모델 역을 해야 해서 예쁘게 보이고 싶어 살을 5kg 뺐더니 사람들이 연애 하냐고 물어요. (하하)

정석희: 제 걱정은 정민 씨가 몇몇 연예인들처럼 하나의 캐릭터로 소모되어 회복이 불가능해지면 어쩌나 하는 거였는데 만나고 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김정민: <사랑과 야망>에 함께 출연했던 한고은 선배님처럼 자유로움까지 매력으로 어필하는 그런 여성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처음에 예능 나왔을 때 있는 그대로 이야기 다 하는, 그 나이의 여자애가 남의 눈치 안 받고 이야기 던질 수 있는, ‘내 맘대로 한다’가 나의 매력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람들이 가진 기대치 때문에 내 마음과는 달리 자꾸 더 독하게 되는 것이 속상해요. 그러니 억지가 나오고, 하면서도 즐겁지 않고 그런 거죠. 남의 눈을 신경 쓰게 되면서부터 남의 기대에 맞춰 작위적으로 못되게 구는 것을 이제는 좀 그만 하고 싶어요.

정석희: 그래도 요즘엔 일을 재미있어 하는 것처럼 보이던데요?

김정민: 사실 감정이 오락가락해요. 힘들었다, 재미있었다 하죠. 그래서 저는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야 해요.(하하) 의지가 약한데 격려의 말 한마디에 다시 벌떡 일어나거든요. 중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진학을 했고, 상대 배역도 대부분 나이가 많았고, 그래서인지 주변에 좋은 언니오빠들이 많은 반면, 또래는 잘 안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나마 요즘엔 쉬는 시간을 즐기는 여유가 조금 생겼어요. 그전에는 이틀만 쉬어도 불안해했거든요. 그다지 조급할 일도 없는데 말이죠. 그러다 책을 읽다가 문득 한 구절에 꽂히게 됐죠. ‘열심히 사는 사람들 중에 재미있게 사는 것은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그렇지 않다.’ 그 구절이 제 인생을 많이 바꿔놓았어요. 그 전에는 취미를 가져도 일과 관련되게 했거든요. 예능에 쓸 수 있는 취미요.



정석희: 생각했던 것보다 그간 고민이 많았던 거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지 같은 거 염두에 없는 줄 알았어요.

김정민: 어렸을 때는 생계형 연기자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어요. 짧은 시간 활동하더라도 어떻게든 ‘난 스타가 되고 말 거야’ 했는데 예능을 하며 현실의 벽을 느꼈죠. 처음에 그런 것들이 슬펐어요. 특히 ‘아이돌’과 예능에서 만날 때요. 같은 나이임에도 시작점과 지금의 포지션이 분명히 다름을 느꼈을 때의 좌절감, 갈 곳을 잃어버린 기분이더라고요. 다행히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금까지 쉼 없이 일 해 왔으니 조급해 하지 않고 가끔은 쉬고 즐기기로요. 그런데 신기한 게 어른들 눈에는 그게 또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예전에는 눈에 욕심이 그득했는데 요즘은 한결 부드러워졌다고들 하세요.

"독한 역할을 하면서도 독한 캐릭터라는 표현이 싫었어요. 뭔가 만들어진 것 같아서죠. 캐릭터라기보다는 필요한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싫어하시는 점들은 얼마든지 수용해서 고칠 마음이 있으니까요. 최근에 ‘너를 좋아하는 사람은 방송국 PD랑 작가밖에 없어’라는 말을 들었어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직접 그런 말을 들으니 큰 상처가 되더라고요. 어릴 때는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하는 애였는데 지나고 보니 어느새 비호감이 되어 있는 거예요. 게다가 분명히 연애 경험이 있는 것 같은 애가 연애 경험 없다고 우기는 애잖아요, 제 캐릭터가. (하하) 그것도 내숭이라며 여자 분들이 싫어하시던데요. 그래도 저는 순진한 척 할 생각은 없어요. 그렇지만 진짜로, 사랑 받고 싶어요. 이제는"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정리 최정은 기자
사진 전성환 기자, QTV
장소협조 갤러리 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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