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남썸녀’·‘불타는 청춘’, 썸보다 가족인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드디어 채연과 윤소이가 2대2 미팅을 나선다고 하지만 SBS <썸남썸녀>에서 기대되는 건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오히려 채연과 윤소이, 채정안이 함께 지내며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자매 같은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갈 것인가다. 이것은 남자들보다 여자들과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김지훈이 김정난과 선우선 같은 누나들과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까가 그들이 앞으로 어떤 연애를 할 것인가 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새롭게 참여한 강균성이 동거에 대한 자신만의 연애학 개론을 설파할 때 은근히 설득되는 서인영과 이수경, 심형탁의 반응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미지와는 달리 털털하기 그지 없는 이수경의 반전매력과, 도라에몽 캐릭터 팬티가 말해주는 것처럼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심형탁이 강균성과 어떤 형제 같은 관계를 보여줄 것인지도 흥미진진하다.

이렇게 보면 <썸남썸녀>는 <룸메이트>를 닮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룸메이트>의 출연자들은 왜 거기 함께 모여 있는지 그 목적성이 불분명했다. 따라서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그저 보여지기 위한 것 그 이상을 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썸남썸녀>는 다르다. 그들은 모두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 실종됐던 연애세포를 다시 깨우겠다는 것. 홀로 된 그들이 겪는 갖가지 상황들에 대한 공감대는 바로 이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절실함과 진정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공감대는 막연한 만남이 가로막을 수 있는 그들 간의 관계의 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이것은 최근 들어 남녀가 서로 만나 이른바 ‘썸을 타는’ 이야기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예를 들어 SBS <불타는 청춘> 같은 프로그램은 50대를 넘긴 남녀들이 함께 모여 나이 들어도 여전한 청춘의 감정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깔린 건 ‘남녀 간의 썸’이라기보다는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다.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공유한 그들은 그 점 하나로도 서로를 가족처럼 받아들인다. <불타는 청춘>이 <썸남썸녀>의 미래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 그들은 굳이 결혼이나 연애에 그다지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같은 연령대와 처지가 갖기 마련인 공감대를 함께 하며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확실히 우리의 결혼관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30대 중반을 훌쩍 넘겨 미혼으로 살아가는 삶이 이제는 그다지 특이한 일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일을 하는 것이 결혼보다 우선시되고,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할 인륜지대사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사회에 젖어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생각의 변화가 실제 삶을 적응시키는 건 아니다. 그러니 이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은 이 외로움을 털어낼 대안적인 방법들을 모색 중인 것이다.

그것은 배우자나 연인이 아니라도 그런 문제에서 나오는 저마다의 심경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결혼 같은 건 이미 초월한 상태로 그저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같은 세대일 수도 있다. <썸남썸녀>나 <불타는 청춘>은 바로 이 변화해가는 삶과 관계의 양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썸남썸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남녀 간의 썸 보다는 가족이 될까 말까하는 그 관계의 썸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 쿨한 얼굴로 잘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실은 외로웠던 것이다. 그 외로움을 공유한다는 일은 얼마나 우리를 푸근하게 만드는 일인가. 이미 해체되어가는 전통적인 가족 구조 속에서 이들 대안적인 관계는 다가올 미래의 ‘또 다른 가족’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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