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두 승원이 버리고 싶은 적 있었어. 너무 힘이 들 땐 인터넷으로 위탁 시설도 찾아보고 입양 기관 사이트도 들어가 보고, 죄를 지은 거 같아서 다음 날이면 내 아들 더 물고 빨고, 사랑한다고 내뱉고. 아마 옆에서 날 지켜보고 지켜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도 네 엄마처럼 승원이 버렸을지도 몰라. 누구도 부모로 태어나는 사람 없어 서우야. 부모가 되는 거야. 부모가 되어 가는 거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니가 부모가 되는 거야. 부모가 돼서 자식들에게 특별해지는 거야. 너 니 자식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해질 자신 있어? 난 없어. 부모가 됐는데도 자신 없어.”

- MBC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강대범(강동호)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MBC <미스 리플리>에서 울며불며 매달리는 어린 장미리(아역 정다빈)를 떨치고 떠났던 매정한 뒷모습의 주인이 누군지 드디어 밝혀졌다. 놀랍게도 몬도리조트 후계자인 송유현(박유천)의 새어머니이자 몬도리조트 부회장인 이화(최명길)였던 것. 아이를 낳았다는 지난 과거를 말끔히 지운 후 지금의 자리에 올랐던 이화는 공교롭게도 자신과 똑 같은 방식으로 신분 세탁을 하려는 딸의 거짓말을 낱낱이 밝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장미리(이다해)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 이화가 자신의 거짓말과 딸의 거짓말 중 어느 쪽을 사수하려 들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껏 딸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이화, 그런 냉혈 여성도 자식을 눈앞에 두고는 모성애를 발휘하게 될까?

그런가하면 MBC <내 마음이 들리니>의 김신애(강문영)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 핏덩어리 자식을 버렸다. 그렇게 평생을 아랑곳 않고 살다가 최진철(송승환)의 정식 아내가 되고자 비로소 아들(남궁민)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는 나는 너를 버린 게 아니다, 버릴 생각이면 고아원에 맡겼지 엄마에게 맡겼겠느냐. 형편이 나아지면 찾으러 올 생각이었다, 라고 변명하는 김신애. 하지만 언젠가 대놓고 “나, 너 몰라!“라고 야멸치게 부정을 당했었던 아들이 그 말을 믿어줄 리가 있나.

MBC <반짝반짝 빛나는>의 한서우(박유환)의 생모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아들을 버렸던 이지수(최수린)가 늦기 전에 내 아들의 엄마가 되어보고 싶다며 찾아온 것. 느닷없는 등장에 진노한 이복형 한지웅(장용)이 불쌍한 서우가 웃고 떠들고 집 밖으로 나다니게 된지 불과 일이년 밖에 안 되었다며 정말로 어른이 된 거라면, 진심으로 그 자식 엄마가 되고 싶은 거라면 제발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자 필요에 의해 아이를 서슴지 않고 버렸던 이 여자, 대답이 가관이다.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 나두 걔만큼 불쌍하거든요. 나두 혼자서 남몰래 묵묵히 싸우는 중이거든요. 난 서우가 필요해요. 서우랑 살고 싶어요.” 필요 없으면 버리고 필요하면 찾는 게 아이란 말인가?





아이를 낳을 당시에는 철이 없는 어린 나이여서, 혹은 피치 못할 이런저런 사연으로, 혹은 혼자 몸으로 감당이 안 되는 형편이라 버렸다 쳐도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을 만치 먹었음에도 여전히 자식보다는 제 입장이 우선인 철딱서니 없는 엄마들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애써 잊을만해지니 불현 듯 나타나 풍파를 일으키는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서우에게 미혼부 강대범(강동호)이 아이를 버리는 엄마의 심정을 대변한다. 만나러 온 거면 만나는 게 자연스럽다며, 안 만나려고 애쓰니까 배로 힘이 드는 거라며 서우를 위로하던 대범은 나중에 자신의 아들 승원이는 절 낳아준 엄마가 찾으러 오면 만났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럼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운이 좋으면 그 이후부터는 버림 받았다는 느낌은 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자신도 아이를 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다는 대범의 솔직한 고백이 가슴에 와 닿는다. 특별한 사람이 부모가 되는 게 아니라 자식으로 인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얘기에 공감한다. 자식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해질 자신이 없다는 얘기 또한 절절히 공감이 된다. 아마 아직 철 못 차린 그녀들은 여전히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모양이다. 허나 그녀들의 부모가 되어가는 느린 행보도 언젠가는 끝이 있지 않겠나. 누군가의 부모라는 천륜, 그건 그리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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