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SM 타운 공연 연출 총감독 정창환 이사[인터뷰]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대중문화를 묻다] 파리에서 벌어진 SM 타운 공연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침공’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항간에는 지나친 과장이라며 오히려 국내 기획사들의 시스템적인 문제 해결이 급선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현재 우리네 K팝이 전 세계의 국경을 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획사들이 생겨나고 차츰 해외에서 반응을 일으키더니 이제는 유럽 한 복판에까지 등장한 K팝. 이 갑작스런 돌출 밑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이야기들이 있었던 걸까. 이번 파리 SM 타운 공연 연출을 총감독한 SM엔터테인먼트 정창환 이사를 만났다.

정덕현 : 물론 비판적인 구석도 많지만 어쨌든 현지반응은 뜨겁습니다. 어떻게 예상을 하셨는지요?

정창환 : 사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작년 미국에서 했었던 SM타운을 통해서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죠. 그 때도 꽤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90%가 외국인이라는 점에 깜짝 놀랐습니다.

정덕현 : 이번 공연 연출의 총 책임자셨죠? 이번 공연에 특히 중점을 뒀던 연출이 있습니까?

정창환 : 아무래도 우리 음악의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퍼포먼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힘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연출에 중점을 두었죠. 사실 콘서트의 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것이 늘 똑같습니다. 팀이 나와서 노래하고 들어가면 다른 팀이 나와서 노래하고 이런 식으로 로테이션되다가 맨 끝에 전부 나와서 노래하는 식이죠. 하지만 SM타운은 좀 다릅니다. 모든 가수들을 한 팀으로 생각해서 공연을 짜기 때문에 좀 더 집중력 있는 연출을 보여줄 수 있죠. 즉 빠른 노래에는 또 다른 팀의 빠른 노래로 연결시켜서 더 속도감을 만들어낼 수 있고, 발라드는 또 발라드로 연결해 그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죠.

정덕현 : 콘서트의 흐름이나 강약조절이 가능하다는 얘기군요.

정창환 : 그렇습니다. 공연을 뚝뚝 끊어지는 가수들의 병렬적인 무대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만드는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정덕현 : 특히 반응이 좋았던 연출이 있었나요?

정창환 : 사실 대부분 반응이 좋았지만 그 중에 몇 가지를 얘기하면 샤이니가 ‘루시퍼’를 부르면서 와이어를 타고 공연장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부분에서도 큰 호응이 있었고, 특히 온유가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렀던 것은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죠. 그 밖에도 신동, 희철, 이특, 은혁이 ‘레이디 가가’를 연출한 것도 화제를 모았구요.

정덕현 : 해외 반응에 대한 실제 체감은 어떤가요?

정창환 : 사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일본, 중국, 동남아를 거쳐서 미국, 유럽까지 나갔잖아요. 처음에는 좀 낯설었죠.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말로 가사를 따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좀 적응이 된 상태입니다. 노란 머리의 백인들과 흑인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에도 익숙해졌죠. 나라나 인종은 달라도 감성은 전 세계가 다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정덕현 : 왜 갑자기 K팝일까요? 그것도 남미, 유럽, 미국 등지에서 말입니다.

정창환 : 시대적인 흐름이 기회를 만들고 있죠. 즉 서구에서는 늘 영미차트의 음악들만을 듣곤 했는데 SNS 시대가 열리면서 좀 다른 음악을 찾게 됐는데 거기서 K팝이 발견된 거죠. 그 대안으로 아시아권이 눈에 들어왔고 그 중에서도 내수시장에 만족하던 J팝보다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던 K팝이 더 눈에 들어온 거죠. 사실 일본은 내수시장이 너무 정착되어 있죠. 보아나 동방신기가 진출했을 때도 그것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댄스음악을 해도 가라오케에서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나 쉬운 가사를 요구했을 정도니까요. 반면 우리는 시장이 좁혀지다보니 밖으로 나가야 됐고 언어적인 장벽이 있으니 퍼포먼스를 좀 더 세게 해서 갈 수밖에 없었죠.

정덕현 : 해외시장 준비는 언제부터 본격화된 것인가요.

정창환 : 사실은 SM이 설립되던 시기부터 줄곧 준비됐던 건데, 본격화된 것은 HOT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댄스 음악을 하게 된 건 미래에 해외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발라드 보다는 좀 더 글로벌하게 접근할 수 있는 댄스가 적합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일본으로 먼저 진출 계획을 세웠는데 병역법이 발목을 잡았어요. 병역을 해결하지 않고는 해외에서의 장기체류가 어려웠죠. 그래서 다음에 나온 팀이 SES입니다. 여자 팀은 병역에서 일단 자유로우니까요.

정덕현 : 당시 일본 시장은 지금과는 달랐겠죠?

정창환 : SES는 1년 정도 국내에서 활동하다 일본에 진출했죠. 일본의 레이블들을 타진했는데 그 때는 거의가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참 어렵게 소니랑 계약 전 단계까지 갔었죠. 그런데 계약 기간이 7년이라고 하더군요. 당시 SES 계약이 5년이었고 1년 반 정도가 이미 지난 상태라 3년밖에 계약기간이 남지 않은 SES를 그쪽에서 받아줄 리 만무했죠.

정덕현 :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군요.

정창환 : 그래서 계약기간에 맞는 친구를 찾아내야 했죠.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2,3년 활동을 하고 일본에서 7년을 하려면 10년을 활동할 수 있는 ‘여자’ 가수여야 했죠. 나이가 우리나라에서 3년, 일본에서 최소 3년을 활동하려면 6살은 어려야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아이돌들과 경쟁하게 됐을 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죠. 그래서 나온 답은 초등학생이어야 준비가 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 여자 아이에서 가능성 있는 친구를 찾다가 발견한 가수가 바로 보아입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죠. 그 때부터 일본어, 댄스, 영어, 노래까지 다방면의 준비를 하게 됐죠.

정덕현 : 보아는 그렇게 준비된 아이돌이었군요.

정창환 :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되어 있어도 일본의 메이저 레이블 회사들의 상황들까지 체크하지 않으면 진출은 어려웠죠. 그래서 찾고 찾다가 결국 에이벡스와 계약을 하게 된 겁니다. 당시는 그 첫 포문이 중요했기 때문에 수익의 대부분은 마케팅 비용으로 충당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게 됐죠. 초반에 엄청나게 옥외광고와 CF를 통해 보아를 알렸습니다. 그렇게 음반 5장만에 일본에서 보아가 톱스타가 되게 됐죠.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한국 출신이라는 것이 일본 활동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보아는 코스모폴리탄으로 포장됐습니다. 즉 영국에서 몇 개월, 뉴욕에서도 살고 영어도 잘하고 일본어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천재소녀. 이게 포인트였죠.



정덕현 : 그 후에 일본 진출을 한 게 동방신기였죠?

정창환 : 보아를 통해 가능성이 생기자 남자팀을 하기 위해 동방신기가 만들어졌죠. 이미 우리나라에서 슈퍼스타였지만 일본에서는 무명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처음 바닥부터 시작해서 3년이나 걸렸죠. 당시 일본의 자니스 프로덕션은 일본의 방송국을 컨트롤할 정도의 파워를 가졌었죠. 방송국 채널 하나를 통째로 컨트롤했으니까요. 문제는 일본에서 남자 아이돌은 모두 자니스를 거쳐야 한다는 불문율이었습니다. 다른 기획사에서 아예 남자 아이돌을 준비 안할 정도였죠. 동방신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동방신기는 마치 해외 아티스트가 온 것처럼 방송을 뚫어놓고 지방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전략을 구사했죠. 나중에는 자니스가 건들 수 없을 정도가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동방신기의 성공은 자니스를 통하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선례가 되었죠. 그래서 다른 남자 아이돌을 또 찾게 된 거죠. 이렇게 되면서 일본 내에서 입지가 점점 커지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보아가 힘들게 바탕을 만들었고, 동방신기가 꽃을 피운 그 위로 다른 아이돌들이 들어가게 된 거죠. 소녀시대나 샤이니처럼 국내에서의 톱은 과거 동방신기와는 달리 이제 일본에서 바로 톱으로 인정받게 된 거죠.

정덕현 : 겉보기엔 그저 이뤄진 것 같지만 상당히 힘겨운 시간들이 있었군요. 어쨌든 이제 K팝의 물꼬가 유럽까지 열렸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다른 계획이나 전략을 갖고 계신가요?

정창환 : 글쎄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 시장을 좀 더 다져야겠죠. 그리고 이 시장을 기반으로 미국으로 진출해서 전 세계 시장으로 가는 게 목표죠.

정덕현 : 드라마나 영화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음악이나 아이돌과 연계하는 방식은 어떤가요? 실제로 이쪽 콘텐츠 분야에도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

정창환 : 물론 그쪽도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해외에서는 일단 음악으로 먼저 시장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후에야 사업이 다각화될 수 있겠죠. 뭐든 처음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첫발을 디뎌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죠.



정덕현 : SNS 시대를 맞아 해외 전략도 많이 달라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정창환 : 그렇습니다. 사실 지금 상황을 보면 보아가 잃은 기회비용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집니다. 미국 활동에서 조금만 더 하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는데 국내 활동을 저버릴 수 없어 들어온 것이 못내 아쉽죠. 사실 지금처럼 SNS가 새로운 대안이 되었다면 좀 다른 전략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보아가 국내에서 활동해도 자연스럽게 SNS를 타고 해외로 알려지고 있죠.

정덕현 : 유튜브와 많은 연계를 갖고 계시죠?

정창환 : 조인해서 많은 일을 합니다. 이번에도 유튜브 생방송을 했잖아요. SNS는 마치 해외활동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사실은 거꾸로입니다. 이를 통해서 국내 방송 역시 퍼져나가기 때문에 ‘뮤직뱅크’나 ‘인기가요’ 같은 프로그램도 대단히 중요한 활동이 되고 있습니다.

정덕현 : 이제 해외를 ‘진출’하는 시대가 아니라 그저 해외 활동을 함께 하는 시대에 돌입했기 때문에 그만큼 아이돌들의 스케줄 소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창환 : 그래서 슈퍼주니어가 하는 것처럼 유닛 활동 같은 것들이 중요해지죠. 하지만 좀 더 시장이 확대돼서 이제 시스템을 파는 단계에 돌입하면 이런 문제들은 상당부분 현지화되겠죠. 즉 현재 단계가 우리가 음악과 안무 같은 걸 만들어서 현지 가수들을 발굴해 활동하게 하는 2단계라면, 앞으로는 좀 더 기술집약적으로 노하우를 전수하고 그 수익을 나누는 식의 3단계로 진입할 것이라 보입니다. 결국 인구도 작고 시장도 작은 우리에게는 기술력으로 갈 수밖에 없죠.

정덕현 : 모쪼록 K팝이 세계 어디서든 먹힐 수 있는 글로벌한 콘텐츠가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전성환 기자, SM]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