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예능을 지향하는 ‘아빠를’의 독특한 지점

[엔터미디어=정덕현] 조재현이 딸과 함께 찾아간 자신의 청춘시절 아내가 살던 집터는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조재현은 마치 자신의 과거 추억의 시간들이 송두리째 지워져버린 듯한 허탈함을 느꼈을 게다. 이제는 텅 비어버린 공터로 들어간 그는 거기 있었던 골목길과 그 골목길 담벼락에서 올려보면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던 아내의 모습, 그리고 배고팠던 연극하던 시절 아내가 그 창문으로 밥을 말아 내밀던 국을 서서 먹었던 이야기를 딸 혜정에게 들려주었다.

SBS <아빠를 부탁해>에 등장한 아주 짧은 장면이었지만 그 장면에 대한 아빠 조재현과 딸 혜정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아빠 조재현이 느낀 건 세월의 무상함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쓸쓸한 자각이었다. 하지만 딸 혜정은 그렇게 공간은 사라졌지만 ‘기억’이 있다면 그건 영원한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추억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빠를 부탁해>가 가진 두 가지 정서를 잘 보여준다. 그 하나는 이제 50줄에 선 아빠들이 갖기 마련인 삶의 헛헛함과 자기 삶에 대한 반추다. 잠시 멈춰 과연 자신이 잘 살아왔던가에 대한 일종의 점검. 거기에는 안타까움도 있고 회한도 있기 마련이다. 또 자신이 주인공이던 시대가 조금씩 지나가고 대신 그 자리를 채워줄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아빠를 부탁해>가 밝은 톤으로 아빠와 딸 사이에 벌어지는 일상의 해프닝들을 다루면서도 그 밑바탕에 어떤 페이소스가 담기는 건 바로 이 아빠의 정서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빠들의 정서와 함께 또 다른 정서로 자리하는 딸들의 이야기는 프로그램에 균형을 맞춰준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50대 아빠들의 이야기가 한껏 밝아지고 때로는 풋풋해지는 건 딸들이 있기 때문이다. 완고해 보였던 강석우를 조금씩 풀어지게 하는 당사자는 바로 딸 다은이다. 다은이 덕분에 강석우는 하지 않으려 했던 일들, 이를테면 놀이기구를 탄다거나 먹지 않던 음식을 먹어보는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20여 년 간 단 한 번도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는 딸의 생일을 챙기는 이경규의 이야기가 심각하기보다는 한껏 즐거움을 주는 건 거기 쿨하디 쿨한 딸 예림이가 있기 때문이다. 딸과 자신이 가장 싫어한다는 쇼핑을 하고, 오랜 만에 볼링을 함께 치고, 딸과 치맥을 하며 생일케이크에 노래까지 불러 주게 된 이경규는 난감함과 즐거움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안하던 걸 하려니 생기는 난감함이 있지만 또 그것은 그를 한없이 웃게 만들었다.

반백의 나이를 넘기면서 아빠들이 갖는 그 쓸쓸함과 헛헛함을 이제 파릇파릇 피어나는 딸들의 풋풋함으로 채워 넣는다는 건 <아빠를 부탁해>가 주는 강력한 판타지다. 조재현이 사라진 아내의 집터를 확인하고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때, 딸 혜정은 아빠와의 그런 기억들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할 테니 말이다. 딸에게 남겨진 이야기는 그래서 또 언젠가 그녀의 딸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어른 예능’을 지향하는 <아빠를 부탁해>가 가진 독특한 지점이다. 육아예능으로 대변되는 아이들 예능이 즐거움과 재미, 기쁨을 다룬다면 <아빠를 부탁해> 같은 어른 예능은 삶의 페이소스를 담는다. 거기에는 어떤 슬픔 같은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웃을 수 있는 삶의 비의가 살짝 드러난다. 웃음이라고 다 같은 웃음이 아니다. 폭소는 아니지만 고개가 끄덕여지고 때로는 왠지 모를 가슴이 찡해지기도 하는 그런 미소. 그것이 <아빠를 부탁해>가 주는 웃음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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