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부터 ‘주몽’까지 한 달간 경험한 페스티벌의 속사정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5월 8일부터 6월 7일까지 약 한 달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015 제6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열렸다. 총 5편이 무대에 올라 매주 다른 오페라를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오페라 잔치였다.

■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개막작인가? 홍혜경의 ‘피가로의 결혼’인가

시작은 화려했다. 페스티벌의 문을 연 작품은 무악오페라단의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2005년 이후 10년 만에 국내 오페라 무대에 서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소프라노 홍혜경이 무대에 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석 매진의 기염을 토했다. 소프라노 류보프 페트로바, 윤정난, 바리톤 심기환, 라이언 맥키니 모두 뛰어난 기량을 자랑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6회를 맞이한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국내 오페라단에게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여 오페라계의 성장을 도모하고, 다양한 단체 및 레퍼토리 발굴을 통해 오페라 시장의 지평을 넓히고자 기획된 축제이다. 문체부에서는 축제를 위해 8억원을 지원한다. 페스티벌 참가단체에게는 1억 5천만원 정도의 제작 지원금이 전달된다. 각 단체 입장에서는 1억 5천만원이라는 금액이 제작비로 충당하기에는 그리 크지 않은 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국가의 돈을 받는 만큼 페스티벌 참가 단체장들은 보다 오페라의 사회적 의의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페스티벌의 개막작인 <피가로의 결혼>은 국내에서도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이다. 페스티벌 참가작이란 타이틀을 달아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홍혜경의 <피가로의 결혼>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페스티벌의 의의를 찾기는 힘들었다는 뜻이다.



■ 오페라의 숨은 보석 소개하기 & 오페라의 사회적 역할 고민하기

페스티벌의 두 번째 참가작인 솔오페라단의 <일트리티코>(외투, 수녀 안젤리카, 쟌니 스키키 3부작)는 쟌니 스키키 외에는 국내에서는 거의 공연된 적이 없는 푸치니의 많은 오페라들 가운데 숨은 명작이자 보석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솔오페라단의 이소영 단장은 “푸치니가 ‘나비부인’ 실패 후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 속에 만든 옴니버스식 작품이 '일 트리티코'이다”며 “페스티벌이 아니었다면 이번 작품은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고 의의를 밝혔다. 즉 단체의 이름으로 오페라를 올릴 때보다는 보다 많은 책임감이 따른다는 뜻이다.

지옥, 연옥, 천국으로 이어지는 인생을 바라보는 푸치니의 철학과, 단테에 대한 헌사를 확인할 수 있는 이번 작품은 스릴러와 멜로드라마, 블랙코미디 모두를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기회란 점에서 오페라 애호가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오페라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한 작품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오페라 <모세>였다. 오페라 ‘모세’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에선 노란 배가 등장해 그걸 건져 올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번 장면은 세월호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진실을 견인하는’ 예술가들의 책무에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장수동 연출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이란 단체의 이름만으로 올릴 때보다 좀 더 오페라의 사회적 역할을 보여줄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했다.

페스티벌의 네 번째 작품은 누오바오페라단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로, ‘제비꽃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칠레아의 오페라이다. 극장의 사실성을 해체하며 한 편의 영화 같은 오페라를 연출한 이회수는 아름다운 칠레아 음악 속에서 피어나는 다이나믹한 오페라의 세계로 안내했다.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이영숙, 정꽃님, 박명숙, 그리고 주역 테너 이인학, 이승묵, 차성호의 앙상블도 좋았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오페라가 너무 많다”고 외치는 누오바오페라단의 강민우 단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 좀 더 이해가 되는 시간이었다.



■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작 중 대한민국 오페라는 단 한 작품

마지막은 거대했지만 조용했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인데 우리의 오페라는 찾기 힘들다. 다행히 축제 이름에 걸맞게 창작 오페라 ‘주몽’이 참여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태리오페라페스티벌로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오페라 ‘주몽’의 작곡가 박영근 씨의 말이다.

2002년작 <고구려의 불꽃-동명성왕>을 각색한 국립오페라단의 광복 70돌 기념 창작오페라<주몽>은 고구려 건국신화다운 호른의 팡파르로 시작하는 웅장한 서곡으로 귓가를 사로잡는다. 박영근 작곡가는 “관객이 서곡을 듣는 동안 지금 이 곳이 2015년 예술의전당임을 싹 잊고, 기원전으로 인도하는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이 든다면 그 다음 곡부터는 안 들어도 성공이다”고 했다.

바리톤 우주호가 주역으로 나선 오페라 ‘주몽’에는 인간 주몽과 영웅 주몽의 모습이 교차적으로 흐르고 있으며, 바그너를 연상케하는 신화적 소재와 영상과 무술을 활용한 스펙터클한 장면 연출이 돋보였다. 무대에 오르는 합창단만 110명이 넘고, 무용단 및 성악가들의 인원만 200여명 가까이 된다고 하니 어마 어마한 규모의 오페라다.

자유스러운 반음계적 선율과 화성이 돋보이는 이번 공연에서는 아버지 주몽을 찾아간 유리의 아리아와, 유리의 등장 이후 온조와 비류를 데리고 주몽의 궁전을 떠나는 연소서노의 아리아가 추가됐다.

장,단조를 넘나드는 조성을 바탕으로 아버지를 만나는 기대와 흥분을 담아낸 유리의 아리아는 바그너 테너의 극성도 요구하지만 서정성을 요구하는 아리아였다. 유리왕 역 테너 정의근은 “이번 작품에서 유리왕은 주역인 주몽을 서포트 하는 역이긴 하지만 다음 편을 예고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오페라를 본 뒤, 박영근 작곡가가 곧 오페라 ‘유리왕’ 전막 공연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게 했다.



■ ‘절반의 성공’으로 막을 내린 2015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2015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을 평가하자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약 한 달여의 페스티벌 기간 동안, 다섯 작품을 무대에서 연달아 올려야 하다보니 각 단체들은 극장에서의 충분한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

이회수 연출은 “오페라 페스티벌 작품인데 무대에서 준비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특히 사립단체들 공연들은 일주일도 안 되는 극장 셋업 시간에 모든 걸 해야 한다. 이건 신도 완수하기 힘든 스케줄이다. 극장에 대한 메모리 시간이 있어야 하고, 가수들과 스태프들 모두 무대에 올라 익숙해지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국공립단체 뿐 아니라 사립단체에도 그런 충분한 준비 시간을 주는 날이 왔으면 한다.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온다면 소원이 없겠다”며 개선책을 이야기했다.

더욱이 국립오페라단 ‘주몽’ 공연은 세계적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내한 공연과 일정이 맞물리며 다소 조용하게 공연이 올라갔다.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이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을 누비는 테너 박성원은 “성악가들이 목소리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후배들이 오페라 싱어가 되기 위한 연기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그런 기초적인 걸 공부해서 정말 스타 같은 싱어가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이영조 작곡가가 총감독을 맡은 야외 창작오페라 갈라에 출연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선정작에 대한 기준이 보다 명확하고, 매 회 축제마다 새로운 시도와 키워드를 정했으면 한다는 요구는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하지만 현장의 크리에이티브 말을 듣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건 ‘극장에서 준비하는 시간을 담보 받기 위한 페스티벌 기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한다.’는 점이다. 페스티벌 조직위원회가 참고할 수 있었으면 한다.



■ 새로운 시도를 기다리며

<2016년 제7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스케줄이 공개됐다. 총 5편으로 강화자베세토오페라단의 '레골레토',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카르멘', 한국오페라단의 '리날도, 강숙자오페라라인의 '버섯피자', 자인오페라앙상블의 '쉰살의 남자 성세인'이다. 오페라 ‘리날도’ 외에는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로 구성 된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기존의 대극장(오페라극장) 작품 뿐 만아니라 소극장(자유소극장)에서 오페라를 만날 수 있게 된 점이 눈길을 끈다.

오페라는 무난한 걸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장수동 연출은 “무난하다는 말은 예술가에겐 독이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각 단체에서 무난한 걸 올리는 건 괜찮다. 하지만 페스티벌은 좀 더 달라야 하지 않을까. 베르디가 오페라 ‘모세’에 영향을 받아 ‘나부코’를 쓰고, ‘아이다’를 썼다. 예술이란 게 갑자기 ‘툭’ 날라오지 않는다. 그렇게 새롭게 베리에이션이 발생하는거다”

특별한 어려움이나 거리낌이 없는 ‘무난’한 오페라 페스티벌이 아닌, 새롭고 다양한 시도로 관심을 불러 일으켜 많은 이들이 ‘나도 한번 오페라 극장에 소풍 한번 가볼까’ 생각하는 그 날이 왔으면 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양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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