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한국사회 모순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소수의견>은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손아름 작가의 원작소설은 용산참사로부터 영감을 받았지만 실화가 아니다. 원작자이자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손아람은 ‘사건은 실화가 아니다. 인물은 실존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소설과 영화의 서두에 분명히 밝힌다. 그러나 철거현장에서 철거민과 경찰이 숨지고, 살아남은 철거민이 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것은 용산참사의 본질과 일치한다. 다만 배경은 ‘북아현동 13구역’으로 바뀌어있다. 허나 그곳이 어디인들 무슨 상관이랴. 그곳이 어디든 21세기 한국에서 재개발과 철거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고, 일어났다면 필히 그렇게 흘러갔음직한 기시감 넘치는 이야기가 여기 있다.

◆ 철거현장에서 죽은 두 청년

철거용역들이 쫙 깔린 철거현장에 중학생 박시우가 걸어 들어간다. 철거반대 투쟁농성 중인 아버지 박재호(이경영)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화염병과 돌멩이가 날아다니는 그곳에서 박재호는 박시우에게 위험하니 빨리 나가라고 한다. 물대포를 쏘던 진압경찰의 무전 사이로 사고가 났다는 교신이 들려온다. 농성 중이던 조합원들이 경찰차에 연행되는 사이, 경찰들은 시신이 실린 들것을 옮긴다. 박시우와 진압경찰 한명이 사망했다. 박재호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경찰을 죽인 혐의이다.

격렬한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가고, 변호사 윤진원(윤계상)이 등장한다. 지방대출신으로 국선전문변호사인 윤진원은 이혼전문 변호사인 선배 장대석(유해진)과 사무실을 함께 쓰는 ‘못 나가는’ 변호사이다. 국선으로 선임된 윤진원은 구치소의 박재호를 면회한다. 박재호는 윤진원에게 무죄를 주장한다. 경찰이 박시우를 죽였고, 그런 경찰을 막으려다 경찰이 죽은 것이므로, 정당방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박재호는 오히려 “내 아들을 죽인 경찰은 왜 무혐의로 풀려났는가”를 묻는다.



윤진원은 박재호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경찰은 박시우를 죽인 것은 경찰이 아닌 철거용역 김수만이며, 김수만의 자백도 받아 놓았다. 철거현장에서 두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사건은, 철거반대투쟁을 벌이던 철거민 박재호가 공무를 집행하던 경찰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검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 게다가 두 사람이나 죽은 사건현장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일간지 사회부 기자 공수경(김옥빈)은 사건현장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며, 사건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공수경 기자와 함께 만난 야당의원 박경철은 철거 결정과정에 시행사의 로비가 있었음을 귀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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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 사건자료의 열람을 막은 담당 검사 홍재덕이 담당 판사와 친구이다. 윤진원은 선배 장대석의 이름으로 경찰진압과정에서 박시우가 죽은 것에 대하여 다시 수사해달라는 재정신청을 내지만 기각 당한다. 윤진원은 국선변호사를 사임하고 장대석과 함께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낸다. 경찰이 죽였든 용역이 죽였든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이다. 청구금액은 100원이다. 돈을 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에서 국가책임을 인정하라는 뜻이다. 또한 박재호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 법과 정의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소수의견>은 국민참여재판이라는 무대를 활용하여, 철거 과정의 폭력성과 법의 작동방식을 보여준다. 국민참여재판 전문이라는 공판검사는 부드러운 말투와 제스쳐로 배심원들의 감성을 자극해나간다.(여기서 사학재단의 딸이자, 판사출신의 정치인인 어떤 이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는 아들을 죽인 자가 경찰이었다고 말하는 박재호에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당시 현장에서 경찰과 용역은 구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재호는 8개월간 자신들을 괴롭혀온 용역들의 얼굴을 모를 수가 없다고 답한다.

시행사가 철거민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깡패를 고용하고, 그 용역깡패들이 철거민들을 수개월간 괴롭히고, 마침내 농성에 돌입한 철거민들을 용역깡패들이 때려서 내쫓을 때, 경찰이 용역깡패와 구분되지 않는 모습으로 ‘진압작전’을 수행했다는 것이 검찰도 인정하는 사건의 본질이다. 경찰이 용역과 한 몸이 되어 철거민들을 내쫓는 현장에서 중학생인 박시우와 갓 스무살이 된 의경 한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경찰은, 즉 국가는, 이 사건에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아들을 잃은 철거민 박재호만이 경찰을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법은 법의 논리로만 작동되지 않는다. 청와대는 경찰에게 서북부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띄우라고 지시하고, 사건이 세간의 관심을 받자 생색내기 좋아하는 유명 법무법인에서는 시민단체를 통해 사건을 가로채려 한다. 일개 국선변호인 윤진원에게 자존심을 구긴 검찰은 윤진원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려고 들고, 압수수색을 통해 결정적인 증거를 압수해간다.

영화는 윤진원과 검찰의 일진일퇴를 통해, 법이 반드시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라는 규칙을 활용하여 최대한 진실에 근접해가려는 노력이 무망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법과 정의가 충돌하는 지점을 잡아내며, 법이 흔히 도달할 수 없는 진실과 화해의 순간을 잡아낸다.

재판의 막바지에 이르러 검사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죽은 의경의 아버지는 “내 아들은 절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거기에 없었으니까요.”라 말한다. 그가 박재호와 함께 “미안합니다”하고 흐느끼는 순간은 마치 성령이 임한 듯 한 정화와 치유의 순간이지만, 영화는 그러한 감성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냉철한 결말과 에필로그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더 깊이 각인시킨다. 특별한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권력을 비호하면서, 그것을 국가를 위한 봉사라 여기는 홍재덕의 마지막 말은 얼마나 오싹 한가.



<소수의견>은 철거현장의 사망 사건을 통해 철거와 재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회극이자, 이후의 재판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법정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을 치밀하게 보여주는 법정영화이다. 영화는 수많은 실제사건과 판례에서 추출한 사례들을 담고 있다. 실제로 용산참사에서 검찰은 수사자료 열람을 막았고 사건현장을 말끔히 치워버렸으며, 청와대로부터 흉악범죄 사건을 키우라는 지시가 있었다. 국가배상소송에서 배상금으로 100원을 청구한 것도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이 조선일보에 10원을 청구한 사건에서 따온 것이다.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영장에도 없는 물건을 압수해간 것이나, 숨겨진 녹음기에 담긴 검사의 거짓말이 사건을 뒤집은 사례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영화는 수많은 현실의 사건들을 녹여내며,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완성도 높은 영화가 배급을 맡았던 CJ E&M에 의해 2년간 개봉되지 못한 사실이나, 그 이유가 이재현 회장의 재판으로 인한 정권눈치보기 때문이라는 의혹까지 포함하여, 이보다 더 한국사회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집약해낸 영화도 보기 드물 것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소수의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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