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 사람들과 나는 같은 영화를 본 게 맞나?” 영화를 보다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 며칠 전 나는 다들 픽사 최초의 졸작이라고 하는 [카 2]를 봤는데, 영화가 썩 재미있어서 좋은 의미로 놀랐다. 픽사가 늘 [월-E]나 [업]과 같은 걸작만 찍을 이유는 없고 가끔 이렇게 가벼운 오락물도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007 영화의 플롯을 정교하게 패러디한 이야기는, 가족영화치고는 지나치게 폭력적일 수는 있어도, 꽤 흥미진진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기억에 의존해 대충 써 갈긴 저 따옴표 안의 한탄은 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카 2]에 대한 다른 리뷰어의 반응을 보고 내뱉은 것이었으니까. 아니, 이건 [노잉]을 보고 난 뒤에 한 말이었던가?

지금 [카 2]의 로튼 토마토 지수는 35퍼센트. 심지어 [트랜스포머 3]보다 2% 낮다. 나는 이 점수에 불만이다. 하지만 여기에 동의하느냐고 묻는 건 좀 이상한 질문이다. 로튼 토마토의 지수는 의견이 아니라 통계의 결과이다. 의견이 있는 숫자가 아니다. 물론 각각의 리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오차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떠나 다른 사람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에 참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것이 토론으로 이어지면 가끔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의견일치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과연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의견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걸까. 물론 의견 불일치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 때문에 치고받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에 나쁜 리뷰를 준 평론가들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들도 알고, 비슷한 이유 때문에 영화 잡지의 별점 페이지를 일부러 건너뛰는 사람들도 안다. 하지만 불일치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각자 개인의 개성과 의견만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대부분 흐름을 탄다.

최근 들어 의견들을 묶고 서로에 영향을 주는 흐름은 더 커졌다. 시사회 직후 사람들의 초기 반응을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매체가 나온 뒤로 이는 더 심해졌다. 이렇게 되면 정식 리뷰가 나올 때까지 리뷰어들은 은근슬쩍 대세를 탄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의견과 취향 때문에 그 대세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또 하나의 대세이다.

이건 선입견의 문제이다. 물론 인터넷 이전 리뷰어들 역시 선입견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 의견과 취향으로 사람들이 묶이고 이들 ‘동료’와 ‘적’으로부터 빠른 의견을 접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그 선입견의 힘이 각자의 취향보다 더 커졌다. 예를 들어 지극히 우파적인 감수성의 미국인 남성 감독이 다소 모호한 내용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치자. 이 모호한 영화는 예상 외로 관객들의 편견에서 벗어난 것일 수도 있다. 이건 독립적인 감상과 리뷰 작업을 통해 충분히 잡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실시간 의견 교환과 함께 순식간에 무리 짓기가 형성된다. 이렇게 되면 튀는 의견을 내고 꼼꼼한 비평을 시도할 조건이 망가지고 만다. 흐름에 눌리고 마는 거다. 그 영화가 시작부터 처음부터 ‘손쉬운 비판 단어’를 품고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카 2]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여전히 이 영화를 옹호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내 의견이 대세를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아마 그 대세는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장난감 모형 차에 대한 내 끝나지 않는 애정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단지 로튼 토마토의 통계 때문에 충분히 재미있었을지도 모르는 영화를 굳이 선입견에 가두고 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런 태도가 대세와 벗어난 독자적인 리뷰를 양산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거고.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