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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이렇게 우아한 중견여배우 또 없습니다
기사입력 :[ 2015-08-01 13:08 ]


특별한 꽃 한 송이로 다시 태어난 중견배우 김미숙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주말드라마 <여왕의 꽃>에서 배우 김미숙은 독보적인 존재다. 흔한 아침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자극적이고 평범한 이 드라마에는 당연히 싸구려 방향제 냄새 풍기는 온갖 설정이 난무한다. 재벌가, 출생의 비밀, 여주인공의 과거, 자식의 결혼 문제에 얽힌 부모의 요란한 반대 같은 당신이 상상하는 빤하고 자극적인 드라마적 요소가 모두 이 꽃밭에 모여 있다.

당연히 <여왕의 꽃>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여주인공은 레나정(김성령)이다. 레나정이 악독하다기보다 레나정의 비극적인 운명이 이 모든 이야기의 비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여왕의 꽃>의 주인공은 레나정이 아닌 김미숙이 연기하는 레나정의 시어머니 마희라로 바뀌었다.

<여왕의 꽃>에서 마희라와 최혜진(장영남)은 악녀의 복식조다. 레나정의 어두운 과거사를 캐고 마희라의 아들 박재준(윤박)과 레나정의 숨겨진 딸 강이솔(이성경)의 결혼을 막으려고 온갖 음모를 다 짜낸다. 그런데 장영남이 연기하는 최혜진이 그악스러움을 모조리 다 소화하기 때문일까? 북치고 장구까지 쳐주며 ‘땡벌’처럼 욍욍대는 최혜진 덕에 마희라는 드라마에서 흔히 보기 힘든 고요한 꽃 같은 악녀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한다. 표정은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하지만 내면은 이글대는 분노로 가득한 그런 악녀 말이다. 거기에 김미숙 특유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직한 목소리와 그에 어울리는 분위기라니. 이런 김미숙의 연기는 <여왕의 꽃>에 독특한 향을 남기며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머님, 좋아하신다고 해서 백합 좀 사왔어요.” (레나정)

“넌 이 꽃의 꽃말이 뭔지 아니? 순결한 사랑이라고 알고 있겠지. 하지만 이면엔 또 다른 뜻이 있어. 잔인한 죽음.” (마희라)

순결함과 잔인함을 함께 갖춘 백합이야말로 마희라라는 악녀 캐릭터에 어울리는 꽃이다. 그리고 드라마 <여왕의 꽃>에서 이 드라마를 인상 깊게 만들어주는 것은 백합 같은 악녀와 그 주위를 욍욍대며 날아다니는 ‘땡벌’이 전부다.



그런데 다른 면에서도 백합은 배우 김미숙이 좋아할 만한 꽃일 것 같다. 1984년 김미숙은 백합병원 제8병동에서 간호사로 근무한다. 물론 백합병원은 그해 방영한 <간호병동>이란 드라마 속 병원이다. 1980년 첫 주연을 맡은 드라마 <동심초>에서의 간호사 이후 또다시 맡은 간호사역인 셈이다.

이 <간호병동>이 방영된 1984년은 김미숙에게 특별한 해였다. 다방면에서 활약을 보이며 그녀는 인기의 정점을 찍는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MBC 라디오드라마에서 그해 내내 다양한 멜로물의 여주인공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그녀 특유의 강점인 안정적이면서도 깊은 감정이 드러나는 목소리는 아마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 아니었을까?

이후 1980년대 내내 김미숙은 멜로물의 여주인공과 라디오DJ로서 활약하며 전성기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화려한 여배우들과는 조금 다른 전성기를 보여준다. 고요하고 담담한 시절이었다고 할까? 그런 면은 그녀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연기와도 비슷한 패턴이다. 무언가 화려하고, 요란하고, 움직임이 강한 한국의 드라마에서 김미숙의 연기는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섬세한 감정을 포착해 그 떨림의 폭을 서서히 넓혀간다. 언뜻 보기엔 조용하지만 어느 순간 소리 지르고 눈을 희번덕대지 않아도 그 안에 휘몰아치는 감정이 모두 드러난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그녀가 돋보일 수 있는 작품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1990년대 연하의 남자 장동건과 멜로연기를 보여줄 예정이었던 MBC 미니시리즈 <사랑>에서 윤리적 문제 등등의 지탄으로 그녀가 도중하차했던 일은 안타까운 사건 중 하나다. 그 후 드라마는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청춘 멜로물이 되고 말았다. 그 후 김미숙은 대개 중견여배우들이 그렇듯 다양한 모성을 지닌 엄마를 연기한다. 그 중에는 영화 <말아톤>처럼 인상적인 작품도 있었지만 대개의 홈드라마에서 그녀의 매력이 드러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박경수 작가의 SBS <황금의 제국>은 김미숙에게 고마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대중들은 이 드라마를 통해 중견 여배우 김미숙을 재발견했으니 말이다. 김미숙이 연기하는 재벌가의 안주인인 한정희는 <황금의 제국>이 진행될수록 재벌가의 싸움의 판을 쥐고 흔든다. 특히 조용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읊조리듯 대사를 읊는 그녀의 모습은 어느새 착한 모성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김미숙의 신선한 일면을 보여주었다. 그건 아름답지만 냉정하고 탐욕의 감정을 우아하게 감출 줄 아는 능숙한 여배우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MBC <여왕의 꽃>의 마희라를 통해 김미숙은 본인이 지닌 장점을 오랜만에 다 풀어헤치는 인상이다. 특히 김미숙은 다양한 감정의 격변화를 연기하면서도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시종일관 잃지 않는다. 자신이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혼절할 때의 얼굴선은 여전히 아름답다. 모든 걸 포기하고 아들과 아들의 여자의 결혼을 허락하는 순간 담담히 읊조리는 대사에서 배어나오는 비애감은 이 드라마를 다시금 보게 만든다. <여왕의 꽃>은 빤한 드라마다. 하지만 배우 김미숙에게 이 드라마는 특별한 꽃 한 송이다. 그리고 그 덕에 <여왕의 꽃>은 인상적인 잔향을 남기는 드라마로 변해가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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