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의 탈락, 변칙 오디션 ‘복면가왕’의 매력

[엔터미디어=이만수의 누가 뭐래도] 복면 하나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했던가.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미 지나간 트렌드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 오디션에 복면이라는 장치 하나를 덧붙이자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졌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김연우는 연전연승으로 <복면가왕>이라는 이 특이한 프로그램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냈고, 노래왕 퉁키 이정은 그를 꺾음으로써 기대감을 높였다.

이정의 노래 실력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다. KBS <불후의 명곡>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정이 부른 ‘그리움만 쌓이네’ 같은 곡은 지금도 레전드로 회자되고 있을 정도. 그러니 그의 장기집권은 어느 정도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그가 너무 노래 연습을 과하게 한 나머지 목 관리에 실패하며 한 표 차이로 탈락하게 된 것.

이정의 탈락은 <복면가왕>이라는 변칙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진 양파 같은 성격을 잘 드러낸다. 복면을 씌우니 어떤 가수들은 지금껏 겪었던 편견과 선입견을 털어내고 펄펄 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정은 거꾸로 가왕의 자리에 복면을 쓰고 앉게 되면서 남다른 부담감을 느꼈던 듯 했다. 그래서 그가 부른 이수영의 ‘아이 빌리브(I Believe)’는 특유의 시원스런 목소리를 들려주지 못했다. 노래를 끝까지 부른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로 힘겨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이 그에게 그런 부담감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사실 이정은 노래 실력에 비해 일반 대중들에게는 예능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가수로 남아있다. 그만큼 예능에 잘 적응한 인물이지만 그래도 그의 본분은 가수다. 그러니 복면을 쓰고 나와 예능인 이정이 아니라 오로지 가수 이정으로서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간절한 마음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되었다.

제 아무리 실력자라고 해도 떨어지는 무대가 바로 <복면가왕>이고 그렇게 떨어진다고 해도 오히려 즐거울 수 있는 무대가 <복면가왕>이다. 여기에는 복면이라는 장치가 만들어내는 아이러니가 들어있다. 즉 이기면 복면을 벗을 수 없고, 지면 드디어 복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낼 수 있다는 그 작은 아이디어가 붙어도 웃을 수 없고 떨어져도 웃을 수 있는 <복면가왕>이라는 변칙 오디션을 가능하게 한 것.



그간 무수히 반복되면서 식상해진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스토리텔링이 단순하다. 즉 사연을 가진 출연자가 그 이야기를 담아 노래를 들려주고 당락이 결정되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단순하다 보니 어느 정도 결과가 예측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각한대로 흘러가는 오디션 프로그램만큼 식상한 게 있을까.

하지만 <복면가왕>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노을의 강균성이 재출연한 것은 관객과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는 이 프로그램만의 매력을 잘 보여주었다. 극고음의 소유자인 강균성은 나얼의 ‘바람기억’을 키를 높여가며 불러 모두를 경악시켰다. 그가 복면을 벗었을 때 패널들이 놀랐던 것은 강균성이라는 인물의 대단한 노래실력이 그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그가 다시 출연했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까도 까도 새로운 변수들이 나오는 양파 같은 매력을 가진 <복면가왕>의 특징이다. 오디션이 식상하다고? 그렇다면 저마다 복면 같은 새로운 장치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김연우에 이어 이정의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 복면의 힘. 그 작은 장치 하나가 가능하게 하는 무궁무진한 변수들을 우리는 <복면가왕>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이만수 leems@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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