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팔이’ 재벌가 다툼 불구경하듯 보는 재미 쏠쏠하다

[엔터미디어=이만수의 누가 뭐래도] SBS 수목드라마 <용팔이> 시청률이 21.5%(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주중 드라마로 20%를 넘긴다는 게 쉽지 않은 게 요즘 드라마들의 처지라고 볼 때 <용팔이>는 이례적인 기록을 남긴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기록 이면을 들여다보면 드라마 내적인 요인만큼 드러나는 외적 요인의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용팔이>는 완성도에 있어서 많은 비판들이 쏟아져 나온 드라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갑자기 급전개된 멜로는 시청자들에게 빈축을 샀던 게 사실이다. 또한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때로는 너무나 허구적인 느낌을 줄 때가 많다. 한여진이 자신의 장례식장에 나타나 김태현과의 결혼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순식간에 상황을 반전시키는 장면은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후에 갑자기 나타난 사망한 해고노동자의 행렬을 용인하고 그들 앞에 고개를 숙이는 한여진의 모습은 드라마라고 해도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설정이다.

하긴 드라마가 현실 그 자체일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드라마는 어쨌든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를 건드릴 때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다. 그래서 한여진의 부군이 되어 하루아침에 슈퍼 갑의 위치에 오른 김태현이 그 저택에 들어가서도 그 집에서 일하는 이들을 배려하고 때로는 갑을관계가 아니라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은 허구적이어도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다. 그래도 <용팔이>가 그리는 세계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봐오던 세계와는 점점 동떨어진 세계로 보이고 때로는 양자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게임적인 느낌마저 주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이처럼 선전을 하고 있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저 재벌가 사람들이 경영권을 두고 벌이는 이전투구를 바라보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기 때문이다. 왜 그러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서로 경영권을 잡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심지어 살인을 사주하기까지 한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해서 뭘 얻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것은 영화 <베테랑>이 열풍을 이끌었던 요인처럼 현실의 재벌가에 대한 대중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들의 이전투구는 그것이 우리네 서민과 뭐 그리 다를 것 없다는 인상마저 남긴다. 사는 모양은 다르지만 그들이나 우리나 다 죽어라 싸우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

서민들의 싸움은 측은함과 비애감을 만들지만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싸움은 그래서 웃고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재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에 대한 반감이 그 싸움을 게임보듯 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용팔이>의 핵심적인 재미는 이 게임처럼 치고받는 저들의 싸움을 불구경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심지어 살인이 벌어지지만 그것조차 비극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용팔이>를 이끌어가는 건 그래서 주인공인 김태현이라는 판타지만이 아니다. 오히려 김태현을 둘러싸고 있는 악당들. 이를테면 한도준(조현재)이나 한신건설 출신 고 본부장(장광)같은 인물들이나, 한여진과 한도준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는 비서실장(최병모)이나 이과장(정웅인) 같은 인물들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 이 한신그룹이라는 서바이벌의 공간에서 지옥도를 펼쳐가는 이야기가 사실은 진짜 힘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으로 이제 누워있던 한여진이 뛰어들었다. 그녀는 말 한 마디로 누군가의 목숨을 끊게 만들만큼의 힘을 가진 인물이다. 저 악당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녀 또한 악당이 되어야 한다. 과연 그녀는 그 싸움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저 판타지로 존재하는 김태현이라는 인물과의 새로운 부딪침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용팔이>에 새롭게 생겨난 관전 포인트다.

칼럼니스트 이만수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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