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은 허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정도로 힘이 세다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 숨이 막힌 도베르만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장을 보고 돌아와보니 집에서 기르는 도베르만이 목에 뭔가 걸려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개를 동물병원에 맡기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전 다녀온 동물병원의 수의사였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당장 집 밖으로 나가세요!”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제 말대로 하시고 당장 옆집에 가 계세요. 곧 갈게요.”

수의사는 아주머니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놀랍고 궁금했지만 수의사가 시키는 대로 집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녀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경찰차 넉 대가 달려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집 앞에 섰다.

경찰들은 권총을 뽑아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녀는 겁에 질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 수의사가 도착했다. 그가 아주머니를 보더니 상황을 설명했다. 도베르만의 목구멍을 검사해보니 거기에 사람 손가락이 두 개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도베르만이 도둑을 놀라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곧 피가 흐르는 손을 움켜쥐고 공포에 질려 옷장에 숨어 있던 도둑을 잡아냈다.(끝)

이 이야기는 도베르만이 왜 숨을 잘 쉬지 못할까 의문을 던지더니 무엇인지 모를 위기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에 따라 독자의 호기심과 긴장이 치솟는다. 수의사가 위험을 경고하더니 이번에는 경찰차가 무려 넉 대나 급히 출동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일이 벌어져 어떤 상태가 된 것인지, 독자는 다음 장면으로 빨려들어간다.

◆ 플롯과 문단 구성

흔히들 말한다. “내가 살아온 날을 소설로 쓰면 책 몇 권은 될 거”라고. 살아온 이야기가 창작된 소설보다 몇 배 극적인 사람, 많다. 그러나 그걸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변환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소설은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글자로 바꿔서 종이에 다시 담아놓은 장르가 아니다. 독자가 호기심이나 흥미나 긴장을 유지하면서 텍스트를 따라오도록 이야기를 구성해야 비로소 소설이 된다.

이야기가 소설이 되려면 내용이 서사예술적인 질서에 따라 재배치돼야 한다. 이야기 내용의 배치를 플롯이라고 한다. 플롯은 넓게 보면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재료를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따라 이야기는 전혀 다른 콘텐츠가 된다. 위 얘기는 플롯의 힘을 보여준다.

위 이야기로 예시된 플롯의 힘은 이 얘기를 다음과 같이 시간 순으로 펼쳐놓은 스토리와 대조하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 도베르만과 옷장에 숨은 도둑

어느날 한 도둑이 어느 집에 들어갔다. 하필 그 집 주인 아주머니는 도베르만을 기르고 있었다.

도베르만은 침입한 도둑을 보더니 바로 달려들었다. 도둑은 공격하는 도베르만을 손으로 저지하려고 했고, 도베르만은 도둑의 손을 물어뜯었다. 도둑의 손가락 두 개가 잘렸고, 손가락 두 개는 도베르만의 목에 걸렸다.

이 때 아주머니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도둑은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옷장에 몸을 숨겼다. 손가락이 목에 걸린 도베르만은 숨 쉬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도베르만을 집에서 가까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수의사는 자세히 검사해봐야 한다며 도베르만을 입원시키고 집에 가 있으라고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가 병원을 나선 뒤 수의사는 도베르만을 진찰하고 목구멍에 걸린 손가락 두 개를 발견해 빼냈다. 수의사는 ‘그 손가락은 아마 아주머니 집에 침입한 누군가의 것’이라고 추리한다. 그는 또 ‘그 손가락의 주인이 아직도 그 집에 있고 그 집의 어딘가에 숨어 있으리라’고 추정한다.

수의사는 곧바로 아주머니 집으로 전화를 걸어 “당장 집 밖으로 나가세요!”라고 외쳤다. 영문을 모르는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수의사는 아주머니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제 말대로 하시고 당장 옆집에 가 계세요. 곧 갈게요.”라고 말했다.

수의사는 이어 아주머니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아주머니가 집 밖으로 나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경찰차 넉 대가 도착했다. 경찰들은 권총을 뽑아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도 못한 채 겁에 질려 이 장면을 바라봤다.

경찰은 곧 피가 흐르는 손을 움켜쥐고 공포에 질려 옷장에 숨어 있던 도둑을 잡아냈다.

곧 수의사가 도착했다. 그는 아주머니를 보더니 상황을 설명했다.(끝)

사건을 전개된 순서에 따라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독자의 호기심을 전혀 자극하지 않는다. 독자는 이미 도둑이 집에 들었고 도베르만이 도둑의 손가락 두 개를 물어뜯어 삼키려다 목이 막혔음을, 그리고 도둑이 옷장에 숨어 있음을 안다. 아주머니는 영문을 모른 채 수의사의 말에 따라 움직인다.

플롯에 따라 지어진 소설적인 이야기가 시작하면서부터 던지는 의문을 이 이야기는 제기하지 않는다. 독자는 도베르만이 왜 숨을 잘 쉬지 못하는지 궁금하지 않다. 수의사가 왜 아주머니에게 당장 집 밖으로 나가라고 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다. 경찰차가 출동한 이유도 안다.

독자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몰입하기보다는 이야기의 허구적인 측면에 더 주목할지 모른다. 도베르만이 도독 손가락을 물어뜯어내는 동안 둘이 몸싸움을 벌이며 집이 난장판은 아니더라도 어질러졌을 게다. 또 피가 적지 않게 떨어졌을 게다. 도베르만의 주둥이는 피범벅이 됐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그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까. 도베르만은 옷장에 숨은 도둑을 어찌하지는 못하지만 그르렁거리면서 옷장 문을 발로 긁어대고 있었을 게다. 귀가한 아주머니를 보고서는 소리나 행동으로 누군가가 침입해 옷장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아주머니는 특이한 상황과 도베르만의 행동보다는 개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데만 주목한다. 이 또한 이상한 설정이다. 도베르만을 본 수의사가 바로 진찰하지 않고 아주머니부터 귀가시킨 일도 납득되지 않는다. 숨을 잘 쉬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입을 벌려 목구멍을 들여다보는 건 수의사가 아니라 일반인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진찰 아닌가.

사나운 도베르만과 아주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옷장에 그대로 숨어 있는다는 설정도 자연스럽지 않다.

두 이야기는 플롯을 잘 짜는 화자(話者)는 필요하면 사건을 시간 순서로 들려주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런 화자는 또 사건의 전모 중 일부를 선택적으로 공개하고 일부를 일부러 가림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극적인 효과를 키운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문학평론가 미하일 바흐찐은 “스토리는 플롯의 기초가 되는 사건”이고 “플롯은 스토리를 지연, 제동, 이탈시키거나 우회시켜 낯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저술가가 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에 따르면 몇몇 신문은 사실이라며 이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나 앞에서처럼 플롯을 풀어놓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는 그럴듯하지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아 사실일 가능성이 낮음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교묘하게 생략하고 배치된 새로운 이야기는 이런 점을 따질 겨를이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있다. 플롯은 이처럼 허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정도로 힘이 세다.

플롯이 힘을 발휘하는 영역은 소설뿐이 아니다. 수필이나 칼럼의 흡인력도 플롯에서 나온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smitte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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