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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끝끝내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 하나
기사입력 :[ 2015-09-25 13:05 ]


‘사도’, 그래서 영조는 왜 사도를 죽였다는 것인가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사도세자는 왜 죽었을까?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였다는 사실자체가 엽기적인 데다 유교를 근간으로 삼는 조선의 왕이 삼강오륜의 기본 강령인 부자유친을 박살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임오화변은 당대에도 굉장한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지만, 후대에도 상당한 의문을 남긴 사건이다. 일단 시기가 참 절묘하다. 조선후기 르네상스로 불리는 영·정조 시대의 연결고리에서 빚어진 참극이니, 자발적 근대화의 기회를 놓쳐버린 아쉬움이 투사되는 것이다.

◆ 미치광이 혹은 당쟁의 희생자

임오화변에 관한 가장 상세한 기록인 <한중록>에 따르면 사도세자의 죽음은 영조의 성격이상과 사도세자의 정신질환으로 인해 빚어진 사건이다. 그러나 후일 정조가 쓴 사도세자 행장에는 상당히 다른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임오화변은 현재 권력에 의해 차기 권력이 제거된 사건이니, 당시 권력 지형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쟁사에 입각해 해석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이미 1960년대 말에 학계에서 논의되었지만,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1980년대까지 사도세자에 대한 대중들의 심리는 불쌍하거나 두려운 것이었다. 1950년대 가요 중에는 “금이야 옥이야 태자로 봉한 몸이 뒤주 안에 죽는구나~ 불쌍한 사도세자~”라며 그의 처지와 고통을 노래한 <사도세자>란 곡이 있었다. 왕이 되려다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는 마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처럼 강력한 원한을 지닌 존재로 생각되어 민간신앙에서는 신으로 모셔지기도 하였다. 1980년대 TV사극 <안국동 마님>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 <하늘아 하늘아> 등은 사도세자가 광기와 부자갈등에 의해 죽었다는 <한중록>의 기술을 따르며, 혜경궁의 한(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0년대에 들어 반전된다. 이인화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장르인 역사추리소설 <영원한 제국>을 빅히트 시키며, ‘금등지사’를 언급한다. ‘금등지사’는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후회하며 썼다는 문서로, 임오화변이 신하들에 의해 주도된 정치적 사건이었음을 암시한다. 이인화는 ‘금등지사’를 지렛대삼아 사도세자를 신원하고 개혁을 단행하려던 정조가 노론세력에 의해 가로막히는 사건을 소설적으로 구성하면서, 놓쳐버린 자생적 근대의 꿈을 이야기하였다.

이덕일은 대중역사서 <사도세자의 고백>을 통해, 임오화변은 광기나 부자갈등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덕일은 <한중록>이 사건이 일어난 지 수 십 년 만에 사도세자를 추숭하는 분위기 속에서 쓰인 책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덕일은 사건에 책임이 있는 자신의 친정이 몰락할 것을 두려워 한 혜경궁이 사건의 본질은 광기와 부자불화에 있을 뿐 친정가문과는 무관함을 주장하기 위해 <한중록>을 썼으며, 혜경궁은 남편보다 친정가문을 중시한 노회한 정치인이라고 본다. 이덕일의 견해는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대중문화에는 큰 영향을 미쳤다. 즉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양이거나, 집권세력인 노론에 맞서 소론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 개혁을 시도하려다 노론에 의해 척살된 미완의 개혁군주로 격상되고, 혜경궁은 권력지향적인 인물이라는 시각이 대중문화에 반영되었다. 드라마 <비밀의 문>이나 영화 <역린> 등은 이러한 시각의 반영물이다.



◆ <한중록> 혹은 <권력과 인간>으로 회귀

영화 <사도>는 이러한 흐름에 선을 긋는다. 임오화변은 광기와 부자갈등에 의해 빚어진 사건이 맞으며, 단지 미쳐서 죽은 게 아니라 왕을 죽이려 한 반역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음을 영화는 분명히 한다. 또한 임오화변을 주도한 것은 신하들이 아니라 영조였으며, 신하들은 오히려 말리려 하였지만 왕의 진노를 막지 못했다고 그린다. <사도>는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라는 영조의 일성으로 시작해, 혜경궁의 회갑연으로 끝난다. 에필로그처럼 붙은 회갑연은 영화가 <한중록>을 원본으로 삼는다는 강한 표식이다. <한중록>은 혜경궁의 회갑연 이후 집필되었으며, 1편의 마지막도 회갑연으로 마무리 된다.

요컨대 <사도>는 1990년대 이후 대중문화를 휩쓸던 이덕일의 관점을 폐기하고 <한중록>의 가치를 복원시킨다. 이는 <권력과 인간>을 통해 이덕일을 강하게 비판한 정병설의 입장을 따른 것이다. 정병설은 영조가 사건 직전에 쓴 <폐서자반교>를 근거로 사도세자는 무고한 사람들을 여럿 죽인 광인이며, 종국에는 영조를 죽이려한 반역죄를 저질러 죽을 수밖에 없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그는 <한중록>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집필된 책이라 할지라도 다른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여전히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다. 오히려 정조가 즉위한 후 사도세자에 대한 역사왜곡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정조 즉위 직전에 <승정원일기>의 관련 대목이 삭제되었고, 정조가 쓴 사도세자 행장에는 사도세자에 대한 미화가 반영되었다고 본다.



영화 <사도>는 정치적 지형을 떠나 부자갈등에 집중한다. 영화는 영조의 천출 콤플렉스, 어린 사도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하는 과정, 공부에 대한 강요, 대리청정의 과정에 빚어진 갈등 등을 사료에 따라 꼼꼼히 보여준다. 영화는 사도가 뚱뚱하고 식탐이 많은 인물이었다는 것만 제외하고 대체로 <권력과 인간>이 밝히는 내용들에 충실히 따른다. 영화는 사료에 근거한 에피소드들을 열거하며, 관객들이 사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열어 두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아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부자간에 빚어진 갈등이 단편적으로 이해되긴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아들을 죽일 만한 일이었는지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감독 자신도 사건에 대해 명쾌한 이해나 해석을 얻지 못한 채 영화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영화는 판단을 유보한 채 사료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현하며 영조와 사도의 입장을 이해시키려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하지만, 결국 영조의 입장으로 기운다. 이는 중립적 재현이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결과다. 영화가 조명하는 8일 동안 사도는 뒤주에서 죽어가며, 자신을 변호할 목소리를 잃는다. 처음에 사도는 “그것이 모두 내 잘못이란 말이오?” “내가 죄가 있으면 의금부에 넘기라”고 소리치며 대등하게 맞서지만 이내 침묵 당한다. 영화는 7일 째 영조와 사도간의 마지막 대화를 길게 담는다. 이 시퀀스는 배우들이 가장 공들여 찍은 장면이자 관객의 정서가 고조되는 장면이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마침내 부자간의 화해가 이루어진 것 같은 착시를 안긴다. 그러나 이는 영조의 일방적인 판타지다. 사도는 죽어가느라 말을 할 수 없었고, 영조 혼자 상상 속에서 자기 위안과 변명으로 빚은 ‘꿈의 대화’를 나누며 마치 화해가 이루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 사도를 죽이고 사태를 봉합하는 영조

이는 역사해석에 있어서 빠지기 쉬운 오류를 그대로 보여준다. 즉 사료에 입각하여 아무런 해석자의 주관을 섞지 않고 역사를 바라본다는 입장은 결국 살아남은 자, 강한 자, 이긴 자들의 자기변명을 충실히 옮기는 작업에 이용된다. 역사를 해석할 때, 해석자의 통찰을 통해 사료의 행간을 읽고 사건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없다면 결국 강자의 입장을 사실의 이름으로 옹호하며 재현하는 결과를 낳는다.

직관을 실어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하는 능력은 역사가에게도 필요하지만, 역사창작물을 만드는 작가에게 더욱 요구되는 능력이다. 이준익 감독은 객관적인 사료의 재현으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입장을 모두 보여준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재해석의 역할을 방기하는데, 그 결과 영화는 승자인 영조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영화는 결국 아들을 죽인 아버지의 회한과 자기변명을 옮기는 작업이 된 셈이다.



영화는 영조가 어쩔 수 없이 사도를 죽였으며, 아들을 죽이면서도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부는 영조가 사건을 사도 일개인의 죽음으로 봉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조가 사도에게 국법을 적용해 반역죄로 죽이지 않고 가족법을 적용해 형률에도 없는 뒤주에 가둬 죽인 것은 정조와 혜경궁의 신분을 유지시키기 위함이었다. 영조는 사도를 죽이기 전 먼저 폐서인으로 만들었지만, 죽인 후 ‘애달프게 생각한다’는 뜻의 시호와 더불어 세자의 지위를 복원시킨다. 이것 역시 사도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영화는 이러한 영조의 입장을 설득하는데 후반부를 길게 할애한다.

영화 <사도>는 결국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영화 속 영조는 현대적인 대화체를 구사한다. 이는 이준익 감독의 다른 사극에서도 보았던 특징이지만, 송강호 특유의 생활감 넘치는 억양과 만나면서 기이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너 왜 웃니?” “다 너 잘되라고..” “내가 네 나이 땐...” “네가 국방에 대해 뭘 알어?” 등은 사극이나 현대극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각자 부모로부터 무수히 듣던 말이 아닌가. <사도>는 임오화변의 정치성을 탈각하고, 가정사로 축소시키며 현재의 부모-자식 관계에 대한 유비를 수행한다. 즉 영조는 현재의 50대 부모세대를, 사도는 현재의 2-30대 자식세대를 유비한다.



◆ 세대갈등을 유비하다

영조는 천출에 경종 독살설이라는 정통성 시비를 안은 채 어렵게 왕이 되었다. 그러나 사도는 두 살도 되기 전에 세자가 되었다. 초 엘리트 조기교육에 내몰린 사도는 열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난다. 영조는 쓴 소리를 해댄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사도는 점점 주눅이 든다. 특히 다섯 번의 양위파동과 15세 때 시작된 대리청정은 사도를 이중구속의 상태에 몰아넣는다. 실질권력은 하나도 주지 않으면서 허울뿐인 대리청정을 시켜놓고, 무능하다고 조롱하는 영조로 인해 사도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점점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든다. 둘의 관계는 현재의 50대 부모세대와 2-30대 자식세대의 어긋난 관계를 연상시킨다.

50대 부모세대 중에는 공부를 통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꽤 많다. 그들은 천출로 왕이 되어 자신보다 좋은 조건에 놓인 세자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영조의 마음을 공유한다. 그들은 또한 민주화세대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지만, 집값을 올리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에 편승함으로써 중간계급의 위치를 보장받아 왔다. 이것은 노론의 도움으로 왕이 된 후 겉으로는 탕평을 내세우면서도 노론세력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며 공존해온 영조의 정치적 입장과 궤를 같이 한다.



문제는 이러한 부모세대로 인해 자식세대가 압살 당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영화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못한다. 이는 이준익 감독 자신이 부모세대로부터 거리두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영화는 현재의 세대 갈등을 유비하면서 50대 부모세대의 회한을 실어 나른다. 예컨대 영화의 교훈은 이런 것이다. "자식 너무 갈구지마라. 물론 아비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돈 들여 키워놨더니 취직도 못하고 만날 굴 파고 앉아서 뭐하는지 알 수도 없는 자식새끼들이 한심하겠지만,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자식들은 점점 폐인이 되고, 그러다 진짜 칼부림 나는 수도 있으니 자식 죽일 생각 아니면 막말과 꼰대 질을 삼가라" 정도의 명절용 덕담이 된다.

그러나 사도의 입장에서 영화를 곱씹어 보면 전혀 다른 교훈이 도출된다. 사도세자는 왜 죽었는가? 그가 미쳐서이든 정치적인 이유에서이든 정말로 죽게 된 원인은 ‘아버지를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달리 말하면, 그가 죽은 이유는 ‘아버지를 죽이려다 못 죽였기 때문’이다. 그가 칼을 빼들고 영조의 침전까지 갔지만 죽이지 못했을 때, 그는 이미 죽음과 마주친 것이다. 그 순간 그에게는 딱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아버지를 죽이든지, 아버지에게 죽든지.

가령 이방원은 왕자의 난으로 실권을 장악한 뒤 이성계를 상왕으로 추대하였다. 사도세자는 이방원처럼 아버지를 상징적으로 죽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칼까지 빼들고 아버지를 죽이지 못하면, 곧바로 내가 죽는다. 기억하자.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이 있은 뒤 며칠 만에 광주학살이 시작되었다. <암살>의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나선 딸은 영웅이 되고, <사도>의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아들은 뒤주 속에서 죽는다. 청산하지 못하면 역청산 당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사도>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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